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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례헌

내일 비가 온단다. 그래서 문화원에서 사군자를 마치고 활빈당님의 전화를 받고는 내 마음은 바쁘다. 별채 앞에 실어다 놓은 석분을 잔디 위에 깔아 덮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가 오기 전에 말이다. 그래서 불야불야 벗어부치고 재종형 댁에 가서 손수레를 빌려다 작업을 시작. 활빈당님께서 도착하시기 한 시간 전이니까 그 시간에 작업을 얼른 마치고 따라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반소매 셔츠를 올해 처음 꺼내 입고 작업을 시작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마음이 바쁘니 몸도 따라 바쁘나 보다. 부지런히 하는데도 역부족인가 보다. 어느새 부회장님이 내 앞에 나타나 웃고 계신다.

나는 손을 놓으며 얼른 출발하자고 한다. 그런데 우리 부회장님 무슨 말이냐고. 얼른 깔아 버리고 가자며 손수 덤비신다. 나는 염치 좋게도 못이기는 척 따라 한다. 다 깔고 나니 부회장님 뒷마무리까지 해야 한다시며 석분 위에 물까지 뿌리신다. 감사 만 번. 꾸벅.

예의 그 육중한 갤로퍼를 타고는 출발. 신흥의 유리공장에 들러 일을 마치고 북하면 사무소 앞 부회장님 수퍼 앞에서 회원 한 분과 다시 출발. 목적지는 화순 동이나물밭. 갤로퍼는 달리는데 그 새 빗방울이 듣는다. 우리 부회장님 또 유머 등장.

이게 누구 죄야?

나는 뭔소린가 하고 부회장님 눈치를 살핀다. 말인즉슨 하느님을 믿는 사람 죄란다. 그럼 난데. 하느님과 통하지 못해서 비를 막지 못한 죄란다. 말 되나?

그래도 우리는 요지부동으로 전진 오로지 전진. 담양을 지나니 어느새 내 죄가 사해졌는지 비는 그쳐 있다. 하느님께 감사.

활빈당님 이리 꾸불 저리 꾸불 잘도 돌아다니신다. 이길인가? 한 번 가보지 뭐? 길은 다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 다행히도 제 길을 찾으신 모양이다. 주저없이 갤로퍼를 몰아대시는 폼이 당당하다.

얼마를 달리자 우리 갤로퍼는 산길로 접어들자 덜컹거리기 시작한다.

이 녀석은 이러고도 또 가자면 또 가요. (갤로퍼 칭찬 겸 자랑이시다)

목적지에서 차를 내리니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 쓰레기를 버렸나 보다. 아니 퍼다 놓았다. 짐차로 한 차는 되겠다. 세상에 자기 좋자고 차로 실어서 이 깊은 산속에 가져다 버리다니........... 온갖 폐기물이 다 있다.

우리 일행은 숲속으로 들어선다. 낙엽 속에 발길을 재촉하다가 부회장님 한 말씀하신다.

지난 번에 이 깽깽이풀 하나밖에는 찾아내지를 못했습니다. 더는 없더라구요.

그 깽깽이풀은 이미 꽃잎이 반이나 져 있어 볼품이 없었다. 발길을 계속 옮기는 우리 일행. 여기저기에 족도리풀이 보인다. 어렵사리 꽃이 핀 족도리풀을 찾아내고 한 컷 찰칵. 날씨는 흐린데다가 이 녀석은 꽃을 땅쪽으로 가깝게 피우고 있으니 찰칵에는 영 아니올시다다. 잎이 족도리를 닮아서인가, 아니면 꽃이............

연초록 삿갓 아래 피어난 모습이여
진자홍 꽃잎꽃잎 뭘 안에  담았길래
저리도 당 당당하게 족도리를 펼치나

계속 산비탈을 더듬어가는 우리 눈에 고비가 들어온다.  이 고비나물은 참도 맛있단다. 꺾어 두었다가 말려서 나물을 해 먹는거란다. 여기저기 숱하게도 솟아올라와 있다.

고사리도 아닌 것이 곱기는 왜 곱았나
夷齊의 위국충절 껴안아 저리두고
물성이 곱았다 하여 진면목을 보이네

가는 발길에 곳곳이 앵초들인데 아직은 제철이 아닌가 보다. 꽃대는 보이는데 꽃이 드물다. 한참을 더듬는데 앵초 한 군락이 우리 일행을 반갑다 반긴다. 꽃은 군락을 이룰 때 제멋이라 했것다.

연분홍 꽃이파리 오형제 사이조이
가지도 다정스레 막내를 에워싸고
설한풍 불어올쎄라 바람막이 피었네

잡목 사이을 헤매다가 우리는 좀 지친다. 보이느니 앙상한 가지들이요, 눈에 들어오는 건 노루귀때기 이파리. 꽃은 이미 세월 속에 멀리멀리 여행을 떠나 버리고 이파리만 떠들썩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우리는 또 언짢은 일을 만나고 만다. 어떤 아저씨가 푸대자루를 들고 야생화를 마구 긁어 담고 있었으니............... 기가 찰 수밖에. 저러다 씨까지 말리고 말겠네. 쓸데없는 걱정이었으면 좋으련만.

개울을 따라 올라가자 습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곳이 바로 오늘의 하이라이트. 동의나물 주산지(?). 그야말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고맙고 사랑스런 샛노란 화반이여
전생에 너 뭘 닮아 이생에 옮겨와서
점점이 황금빛 노을 지상천국 이루나

dongi.gif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발길을 돌릴 줄 모른다. 이리 찰칵, 저리 찰칵. 엎드려 찰칵, 드러누워 찰칵. 무릎꿇고 찰칵, 돌아앉아 찰칵. 옷이 젖어들어와 차갑다. 그래도 그 모습 다 닮은 길 없어 애가 닳는다. 종국엔 그만 지치고 말아 한숨 속에 렌즈를 닫는다.

아희야 내년에는 잘 배워 다시 오면
곱다란 너의 모습 환하게 담아서는
머릿돌 놓는 자리에 동의나물 올릴래

아쉬운 발길을 돌려 산을 내려오는 일행의 눈길은 습지에 무리지어 옹크린 그 녀석들에게서 뗄 줄을 모른다. 산에는 어느덧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우리는 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혹시나 또 뭐가 없나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길은 없고 숲속은 온통 잡목으로 뒤덮여 있다. 이따금 땅위에는 노루귀때기란 녀석의 새싹이 돋아나 있다. 역시 전문가 우리 부회장님. 過猶不及이라 했던가? 그만 그 무지막지한(?) 발길로 노루귀때기를 찾아내시고 말았다. 실례했습니다. 내용인즉슨 촬영에 열중하시다가 그만 그 귀하게 돋아난 노루귀때기를 짓밟아 버리신 거다. 아이구 아까와라. 손으로 올리고 막대기로 지탱해 보고 온갖 짓을 다해서 겨우 찰칵에 성공. 그러고 나니 부회장님 하시는 말씀. 이 노루귀때기는 꽃이 작아 '새기노루귀'라 한단다. 꽃이 앙징맞게도 작기 그지없다.

장성의 온 산을 둘러보면 확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온 산에 밑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여기저기 박혀 있는 산벚꽃의 花舞다. 벚꽃이 제주도에서 태어나 바다를 건너가 사꾸라가 되어 돌아와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하고는 있지만, 이 산들의 윤무를 보면 과연 그들의 고향이 이 땅의 산천임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주위의 산들을 휘둘러보면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 산 벚꽃은 길거리의 그 야단스런 족속과는 다른 성골임을 과시하듯 빙자옥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벚嘆

하늘은 저 새하얀 꽃잎을 만드시어
이 겨레 품안에다 잉덮썩 안기셨는데
어쩌다 남의 꽃되어 눈물지게 하시나 

덜컹거리는 갤로퍼 안에서 나는 또 궁금증이 발동. 부회장님께 묻고 말았다. 어떻게 해서 이곳에 이런 깽깽이며, 족도리며, 앵초며, 동의나물이 있는 줄을 아시냐고.

부회장님 주저없이 답하신다.

행그라인더를 타고 나서 내려오다가 길을 잘못 들어 이곳을 지나게 되고 그렇게 더듬다 보니 횡재(?)를 했노라고. 믿어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은 우연이 만들어내는 건 아닌지? 일본의 누구는 우연스레 찾아낸 것이 노벨상을 받게 되지 않았던가! 우연이여 축복 있으라. 오늘은 우연에 감사.

그렇게 오늘 하루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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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등록일 :
2008.07.10
17:10:22 (*.49.18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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