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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례헌

51. ()

 

序卦主器者莫若長子故受之以震이라 하니라 鼎者器也震爲長男이라 故取主器之義而繼鼎之後長子傳國家繼位號者也故爲主器之主하니 序卦取其一義之大者하여 爲相繼之義하니라 震之爲卦一陽生於二陰之下하니 動而上者也故爲震이라 動也어늘 不曰動者震有動而奮發震驚之義일새라 乾坤之交一索而成震하니 生物之長也故爲長男이라 其象則爲雷其義則爲動이니 雷有震奮之象이요 動爲驚懼之義.

진괘(震卦)서괘전(序卦傳)기물(器物)을 주관하는 이는 장자(長子)만한 이가 없다. 그러므로 진괘(震卦)로 받았다.” 하였다. ()은 기물(器物)이니, ()은 장남(長男)이 되므로 기물(器物)을 주장하는 뜻을 취하여 정괘(鼎卦)의 뒤를 이었다. 장자(長子)는 국가(國家)를 전하고 직위(職位)와 칭호(稱號)를 계승하는 이이다. 그러므로 기물을 주관하는 주인이 되었으니, 서괘전(序卦傳)에는 한 뜻의 큰 것만을 취하여 서로 잇는 뜻으로 삼은 것이다. ()의 괘()됨은 한 양()이 두 음()의 아래에 생겼으니, 동하여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이라 하였으니, ()은 동함이다. 그런데 동()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진()은 동하고 분발하며 진경(震驚)하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의 사귐이 한번 찾아 진()을 이루니, 생성된 사물의 우두머리이다. 그러므로 장남(長男)이 되었다. 그 상()은 우레가 되고 그 뜻은 동함이 되니, 우레는 진분(震奮)의 상()이 있고 동()은 놀라고 두려워하는 뜻이 된다.

 

하니,

()은 형통(亨通)하니,

陽生於下而上進하니 有亨之義하고 又震爲動이요 爲恐懼爲有主하니 震而奮發하고 動而進하고 懼而修하고 有主而保大皆可以致亨이라 故震則有亨이라.

()이 아래에서 생겨 위로 나아가니 형()의 뜻이 있고, 또 진()은 동함이 되고 공구(恐懼)가 되고 주인(主人)이 있음이 되니, 진동(震動)하여 분발(奮發)하고 동하여 나아가고 두려워하여 닦고 주인(主人)이 있어 큼을 보존함은 모두 형통(亨通)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에 형통(亨通)함이 있는 것이다.

 

震來虩虩이면 笑言啞啞이리니,

진동(震動)이 올 때에 돌아보고 돌아보면 웃고 말함이 즐거우리니

當震動之來하면 則恐懼不敢自寧하고 旋顧周慮[一作周旋顧慮]하여 然也虩虩顧慮不安之貌蠅虎謂之虩者以其周環顧慮하여 不自寧也일새라 處震如是則能保其安裕故笑言啞啞하니 啞啞言笑和適之貌.

진동(震動)이 옴을 당하면 공구(恐懼)하여 감히 스스로 편안히 여기지 말고 돌아보고 두루 생각하여 그래야 한다. 혁혁(虩虩)은 돌아보고 생각하여 편안히 여기지 않는 모양이니, 승호(蠅虎)를 혁()이라 이르는 것은 두루 돌아보고 생각하여 스스로 편안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에 대처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그 편안함과 넉넉함을 보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웃고 말하기를 액액(啞啞)히 하는 것이니, 액액(啞啞)은 말하고 웃음을 화하고 알맞게 하는 모양이다.

 

震驚百里不喪匕鬯하나니라.

진동(震動)이 백리(百里)를 놀라게 함에 숟가락과 울창주(鬱鬯酒)를 잃지 않는다.

言震動之大而處之之道하니라 動之大者 莫若雷하니 震爲雷故以雷言하니라 雷之震動驚及百里之遠이면 人无不懼而自失하니 雷聲所及百里也唯宗廟祭祀執匕鬯者則不致於喪失하니 人之致其誠敬莫如祭祀匕以載鼎實하여 升之於俎하고 鬯以灌地而[一无而字]降神하나니 方其酌稞以求神하고 薦牲而祈享하여 盡其誠敬之心이면 則雖雷震[一作霆]之威라도 不能使之懼而失守故臨大震懼하여 能安而不自失者唯誠敬而已處震之道也卦才无取故但言處震之道하니라.

진동(震動)이 큰데 이에 대처하는 도()를 말하였다. 진동(震動)이 큰 것은 우레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은 우레가 되므로 우레로써 말하였다. 우레가 진동(震動)함에 놀람이 백리(百里) 멀리까지 미치면 사람이 두려워하여 스스로 잃지 않는 이가 없으니, 우레소리는 백리(百里)에까지 미친다. 오직 종묘(宗廟)의 제사(祭祀)에 숟가락과 울창주(鬱鬯酒)를 잡은 이는 상실(喪失)함에 이르지 않으니, 사람이 정성과 공경을 지극히 함은 제사(祭祀) 만한 것이 없다. 숟가락으로 솥에 담겨진 것을 꺼내서 도마에 올리고 울창주(鬱鬯酒)를 땅에 부어 강신(降神)을 하니, 술을 부어 강신(降神)하여 신()을 구하고 희생(犧牲)을 올려 흠향하기를 기원(祈願)해서 정성과 공경의 마음을 다하면 비록 우레가 진동(震動)하는 위엄이라도 두려워하여 지킴을 잃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큰 진동(震動)과 두려움을 당하여 능히 편안하고 스스로 잃지 않는 것은 오직 정성과 공경뿐이니, 이는 진()에 대처하는 도()이다. ()의 재질이 취할 것이 없으므로 다만 진()에 대처하는 도()를 말하였다.

本義動也一陽始生於二陰之下하여 震而動也其象爲雷其屬爲長子하니 震有亨道震來當震之來時也虩虩恐懼驚顧之貌震驚百里以雷言이라 所以擧鼎實이요 以秬黍酒和鬱金이니 所以灌地降神者也不喪匕鬯以長子言也此卦之占爲能恐懼則致福而不失其所主之重이니라.

()은 동함이니, 하나의 양()이 처음으로 두 음()의 아래에서 생겨서 진동(震動)하여 움직인다. 그 상()은 우레가 되고 그 등속은 장자(長子)가 되니, ()에는 형통(亨通)할 도()가 있다. 진래(震來)는 진동(震動)이 올 때를 당한 것이다. 혁혁(虩虩)은 두려워하고 놀라 돌아보는 모양이다. 진동(震動)이 백리(百里)를 놀라게 한다는 것은 우레로써 말한 것이다. ()는 솥에 담겨진 것을 드는 것이요, ()은 검은 기장 술을 울금(鬱金)에 섞어 만든 것이니, 땅에 부어 강신(降神)하는 것이다. 숟가락과 울창주(鬱鬯酒)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장자(長子)로써 말한 것이다. 이 괘()의 점()은 능히 공구(恐懼)하면 복을 이루고 주장하는 바의 중()함을 잃지 않음이 된다.

 

彖曰 震하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은 형통(亨通)하니,

本義震有亨道하니 不待言也

()에는 형통(亨通)할 도()가 있으니, 굳이 말할 것이 없다.

 

震來虩虩 恐致福也笑言啞啞後有則也.

진동(震動)이 옴에 돌아보고 두려워함은 두려워하여 복()을 이룸이요, 웃고 말함이 즐거움은 두려워한 뒤에야 법칙(法則)이 있는 것이다.

自有亨之[一无之字]하니 非由卦才震來而能恐懼하여 自修自愼이면 則可反致福吉也笑言啞啞言自若也[一作啞啞笑言自若也]由能恐懼而後自處有法則也有則이면 則安而不懼矣處震之道也.

()은 스스로 형통(亨通)할 뜻이 있으니, ()의 재질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진동(震動)이 옴에 능히 두려워하여 스스로 닦고 스스로 삼가면 도리어 복()과 길()함을 이루게 된다. ‘소언액액(笑言啞啞)’은 태연자약(泰然自若)함을 말한 것이니, 두려워한 뒤에야 자처(自處)함에 법칙(法則)이 있는 것이다. 법칙(法則)이 있으면 편안하여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니, ()에 대처하는 도()이다.

本義恐致福恐懼以致福也法也.

공치복(恐致福)’은 두려워하여 복()을 이루는 것이다. ()은 법()이다.

 

震驚百里驚遠而懼邇也,

진동이 백리(百里)를 놀라게 한다는 것은 멀리 있는 이를 놀라게 하고 가까이 있는 이를 두렵게 함이니,

雷之震及於百里하여 遠者驚하고 邇者懼하니 言其威遠大也.

우레의 진동(震動)이 백리(百里)에 미쳐서 멀리 있는 이가 놀라고 가까이 있는 이가 두려워하니, 그 위엄이 멀고 큼을 말한 것이다.

 

(不喪匕鬯) 出可以守宗廟社稷하여 以爲祭主也리라.

숟가락과 울창주(鬱鬯酒)를 잃지 않음은 나옴에 종묘(宗廟) 사직(社稷)을 지켜서 제사(祭祀)의 주인(主人)이 되리라.”

본의나와서,

彖文脫不喪匕鬯一句하니라 卦辭云 不喪匕鬯本謂誠敬之至하여 威懼不能使之自失이어늘 以長子宜如是라 하니 [一有以字]承上文用長子之義하여 通解之하니라 謂其誠敬能不喪匕鬯이면 則君出而可以守宗廟社稷하여 爲祭主也長子如是而後可以守世祀, 承國家也.

단전(彖傳)의 글에는 불상비창(不喪匕鬯)’ 한 구()가 빠져 있다. 괘사(卦辭)숟가락과 울창주(鬱鬯酒)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본래 정성과 공경이 지극하여 위엄과 두려움이 스스로 잃게 하지 못함을 말한 것인데, 단전(彖傳)에는 장자(長子)는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니, 상문(上文)을 이어 장자(長子)의 뜻을 써서 통틀어 해석한 것이다. 정성과 공경이 숟가락과 울창주(鬱鬯酒)를 잃지 않으면 군주(君主)가 나옴에 종묘(宗廟) 사직(社稷)을 지켜서 제주(祭主)가 될 수 있으니, 장자(長子)가 이와 같이 한 뒤에야 대대로 이어오는 제사(祭祀)를 지키고 국가(國家)를 계승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本義程子以爲邇也下脫不喪匕鬯四字라 하시니 今從之하노라 謂繼世而主祭也或云 出卽 字之誤라 하니라.

정자(程子)이야(邇也) 아래에 불상비창(不喪匕鬯)’ 네 자()가 빠졌다.” 하였으니, 이제 그 말씀을 따른다. ()은 대()를 이어 제사(祭祀)를 주관함을 이른다. 혹자는 이르기를 ()은 바로 창자(鬯字)의 오자(誤字)이다.” 한다.

 

象曰 洊雷震이니 君子以하여 恐懼修省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우레가 거듭된 것이 진()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공구(恐懼)하여 닦고 살피느니라.”

重襲也上下皆震이라 故爲洊雷하니 雷重仍이면 則威益盛이라 君子觀洊雷威震之象하여 以恐懼하여 自修飭循省也君子畏天之威하여 則修正其身하여 思省其過咎而改之하나니 不唯雷震이요 凡遇驚懼之事皆當如是니라.

()은 거듭함이니, 위아래가 모두 진()이므로 천뢰(洊雷)라 하였으니, 우레가 거듭 이어지면 위엄이 더욱 성하다. 군자(君子)가 우레가 거듭되어 위엄이 있고 진동(震動)하는 상()을 관찰하고서 공구(恐懼)하여 스스로 닦고 따라서 살핀다. 군자(君子)는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몸을 닦고 바루어서 그 허물을 생각하고 살펴 고치니, 다만 우레의 진동(震動)만이 아니요, 무릇 놀라고 두려운 일을 만남에 모두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한다.

 

初九震來虩虩이라야 笑言啞啞이리니 하니라.

초구(初九)는 진동(震動)이 올 때에 돌아보고 두려워해야 뒤에 웃고 말함이 즐거우리니, ()하다.

初九成震之主하니 致震者也在卦之下하니 處震之初也知震之來하고 當震之始하여 若能以爲恐懼而周旋顧慮하여 虩虩然不敢寧止하면 則終必保其安吉이라 [一作然]後笑言啞啞也.

초구(初九)는 진()의 주체가 되었으니 진동(震動)을 이루게 한 것이고, ()의 아래에 있으니 진()의 초기에 처한 것이다. 진동(震動)이 옴을 알고 진()의 초기를 당하여 만일 공구(恐懼)하고 주선(周旋)하여 고려(顧慮)해서 돌아보고 두려워하여 감히 편안히 여기고 그치지 않으면 끝내 반드시 편안함과 길함을 보존할 것이다. 그러므로 뒤에 웃고 말함이 즐거운 것이다.

本義成震之主하고 處震之初故其占如此하니라.

()의 주체가 되고 진()의 초기에 처하였다. 그러므로 그 점()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震來虩虩恐致福也笑言啞啞後有則也.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진동(震動)이 옴에 혁혁(虩虩)함은 두려워하여 복()을 이룸이요, 웃고 말함이 액액(啞啞)함은 두려워한 뒤에 법칙(法則)이 있는 것이다.”

震來而能恐懼周顧則无患矣能因恐懼而反致福也因恐懼而自修省하여 不敢違於法度하니 由震而後有法則이라 故能保其安吉하여 而笑言啞啞也.

진동(震動)이 옴에 공구(恐懼)하고 두루 돌아보면 화()가 없을 것이니, 이는 공구(恐懼)로 인하여 도리어 복()을 이루는 것이며, 공구(恐懼)로 인하여 스스로 닦고 살펴서 감히 법도(法度)를 어기지 않으니, 이는 진동(震動)으로 말미암은 뒤에 법칙(法則)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안함과 길()함을 보존하여 웃고 말함이 액액(啞啞)한 것이다.

 

六二震來厲億喪貝하여 躋于九陵이니 勿逐하면 七日得하리라.

육이(六二)는 진동(震動)의 옴이 맹렬하다. 화패(貨貝)를 잃을 것을 억측(億測)하여 높은 언덕에 오르니, 쫓아가지 않으면 7일에 얻으리라.

本義震來하여 億喪貝하고 躋于九陵이니 勿逐이라도,

본의진동(震動)이 옴에 위태롭게 여겨 화패(貨貝)를 잃고 높은 언덕에 오름이니, 쫓아가지 않아도,

六二居中得正하니 善處震者也로되 而乘初九之剛하니 震之主震剛動而上奮이면 孰能禦之리오 猛也, 危也彼來旣猛이면 則己處危矣度也所有之資也升也九陵陵之高也往追也以震來之厲度不能當而必喪其所有하여 則升至高以避之也言其重하니 岡陵之重高之至也重之多也如九天九地也勿逐七日得二之所貴者中正也遇震懼之來雖量勢巽避하나 當守其中正하여 无自失也億之必喪也故遠避以自守하고 過則復其常矣是勿逐而自得也卽物也以己卽物이면 失其守矣故戒勿逐이라 避遠自守處震之大方也如二者當危懼而善處者也卦位有六하니 七乃更始事旣終하고 時旣易也不失其守하면 雖一時不能禦其來然時過事已則復其常이라 故云七日得이라 하니라.

육이(六二)는 중()에 거하고 정()을 얻었으니 진()에 잘 대처하는 것이나 초구(初九)의 강()을 탔으니, ()는 진()의 주체이다. 진강(震剛)이 동하여 위로 분발하면 누가 이것을 막겠는가. ()는 사나움이요 위태로움이니, 제가 옴이 이미 맹렬하면 자신이 위태로움에 처하게 된다. ()은 억탁(億度)이요, ()는 가지고 있는 물자(物資)이다. ()는 오름이요, 구릉(九陵)은 높은 언덕이요, ()은 가서 쫓음이다. 진동(震動)의 옴이 위태로움에 능히 감당하지 못하여 반드시 소유한 것을 상실할 것을 헤아리고서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가 피하는 것이다. ()는 거듭함을 말하니, 강릉(岡陵)이 거듭함은 높음이 지극한 것이다. ()는 거듭함이 많은 것이니, 구천(九天)과 구지(九地)와 같다. ‘물축칠일득(勿逐七日得)’은 이()가 귀히 여기는 것은 중정(中正)이니, 진구(震懼)의 옴을 만남에 비록 형세를 헤아려 공손히 피하나 마땅히 중정(中正)함을 지켜 스스로 잃지 말아야 하니, 억측(億測)해 봄에 반드시 상실할 것이므로 멀리 피하여 스스로 지키고, 지나가면 평상(平常)으로 돌아오는 것이니, 이는 쫓지 않아도 스스로 얻는 것이다. ()은 물건에 나아감이니, 자기로써 물건에 나아가면 그 지킴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쫓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다. 멀리 피하고 스스로 지킴은 진()에 대처하는 큰 방법이니, ()와 같은 것은 위구(危懼)를 당하여 잘 대처하는 것이다. ()의 자리가 여섯이 있으니, 일곱은 바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니, 일이 끝나고 때가 이미 바뀐 것이다. 그 지킴을 잃지 않으면 비록 일시적으로는 그 옴을 막지 못하나 때가 지나고 일이 끝나면 평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7일에 얻는다고 말한 것이다.

本義六二乘初九之剛이라 故當震之來而危厲也億字未詳이라 又當喪其貨貝하고 而升於九陵之上이나 然柔順中正하여 足以自守故不求而自獲也此爻占具象中하니 但九陵七日之象則未詳耳.

육이(六二)는 초구(初九)의 강()함을 탔으므로 진동(震動)이 옴을 당하여 위태롭게 여기는 것이다. 억자(億字)는 미상(未詳)이다. 또 마땅히 그 화패(貨貝)를 상실하고 구릉(九陵)의 위로 올라갈 것이나 유순(柔順)하고 중정(中正)하여 족히 스스로 지킬 수 있다. 그러므로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얻는 것이다. 이 효()는 점()이 상() 가운데에 갖춰져 있는데 다만 구릉(九陵)7일의 상()은 미상(未詳)이다.

 

象曰 震來厲乘剛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진래려(震來厲)’는 강()함을 탔기 때문이다.”

當震而乘剛이라 是以彼厲而己危하니 震剛之來其可禦乎.

()을 당하여 강()을 타고 있다. 이 때문에 제가 위태로워 자신이 위태로우니, 진강(震剛)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六三震蘇蘇震行하면 无眚하리라.

육삼(六三)은 진동(震動)하여 신기(神氣)가 흩어지니, 진동(震動)함을 인하여 가면 허물이 없으리라.

蘇蘇神氣緩散自失之狀이라 三以陰居陽하여 不正하니 處不正이면 於平時에도 且不能安이어든 況處震乎故其震懼而蘇蘇然이라 若因震懼而能行하여 去不正而就正이면 則可以无過過也三行則至四하니 正也以就正爲善이라 故二勿逐則自得이요 能行則无眚이라 以不[一有中字]正而處震懼有眚可知니라.

소소(蘇蘇)는 신기(神氣)가 느슨하고 흩어져 자실(自失)하는 모양이다. ()이 음()으로서 양위(陽位)에 거하여 부정(不正)하니, 부정(不正)함에 처하면 평시에도 편안할 수 없는데 하물며 진()에 처함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진구(震懼)하여 소소연(蘇蘇然)한 것이니, 만약 진구(震懼)함으로 인하여 가서 부정(不正)함을 떠나 정()함으로 나아가면 허물이 없으리라. ()은 허물이다. ()이 가면 사()에 이르니, ()는 정위(正位)이니, 동함은 바름에 나아감을 선()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이()는 쫓아가지 않으면 스스로 얻고 삼()은 가면 허물이 없는 것이다. 부정(不正)함으로 진구(震懼)에 처하면 허물이 있음을 알 만하다.

本義蘇蘇緩散自失之狀이라 以陰居陽하여 當震時而居不正하니 是以如此占者若因懼而能行하여 以去其不正이면 則可以无眚矣리라.

소소(蘇蘇)는 느슨하고 흩어져 자실(自失)하는 모양이다. ()으로 양위(陽位)에 거하여 진()의 때를 당해서 부정(不正)함에 처했으니, 이 때문에 이와 같은 것이다. 점치는 이가 만일 두려움으로 인하여 능히 가서 부정(不正)함을 떠나면 허물이 없으리라.

 

象曰 震蘇蘇位不當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진소소(震蘇蘇)’는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其恐懼自失蘇蘇然由其所處不當故也不中不正하니 其能安乎.

공구(恐懼)하여 자실(自失)해서 소소연(蘇蘇然)함은 처한 바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 지 못하고 정()하지 못하니, 편안할 수 있겠는가.

 

九四遂泥.

구사(九四)는 진동(震動)함이 마침내 빠져 있다.

九四居震動之時하여 不中不正하니 處柔失剛健之道居四无中正之德이니 陷溺於重陰之間하여 不能自震奮者也故云遂泥라 하니 滯溺也以不正之陽으로 而上下重陰이니 安能免於泥乎无反之意處震懼則莫能守也欲震動이면 則莫能奮也震道亡矣豈復能光亨也리오.

구사(九四)는 진동(震動)의 때에 거하여 중()하지 못하고 정()하지 못하니, 유위(柔位)에 처함은 강건(剛健)의 도()를 잃은 것이요, ()에 거함은 중정(中正)의 덕()이 없는 것이니, 중음(重陰)의 사이에 빠져서 스스로 진분(震奮)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니(遂泥)’라 말한 것이다. ()는 침체하고 빠지는 것이다. 부정(不正)한 양()으로서 상하(上下)가 거듭 음()이니, 어찌 진흙에 빠짐을 면하겠는가. ()는 돌아옴이 없는 뜻이다. 진구(震懼)에 처하면 지킬 수 없고 진동(震動)하고자 하면 분발할 수 없으니, ()의 도()가 없어진 것이다. 어찌 빛나고 형통(亨通)하겠는가.

本義以剛處柔하여 不中不正이요 陷於二陰之間하여 不能自震也遂者无反之意滯溺也.

()으로서 유위(柔位)에 처하여 중정(中正)하지 못하고 두 음()의 사이에 빠져있어 스스로 진분(震奮)하지 못한다. ()는 돌아옴이 없는 뜻이다. ()는 침체하고 빠짐이다.

 

象曰 震遂泥未光也로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진수니(震遂泥)’는 광대(光大)하지 못하다.”

陽者剛物이요 震者動義以剛處動하면 本有光亨之道로되 乃失其剛正而陷於重陰하여 以致遂泥하니 豈能光也리오 云未光見陽剛本能震也로되 以失德故泥耳.

()은 강물(剛物)이요 진()은 동()하는 뜻이니, ()으로서 동()에 처하면 본래 빛나고 형통(亨通)하는 길이 있으나 곧 강정(剛正)함을 잃고 중음(重陰)에 빠져서 수니(遂泥)를 이루었으니, 어찌 광대하겠는가. 미광(未光)이라고 말한 것은 양강(陽剛)은 본래 진분(震奮)할 수가 있으나 덕()을 잃었기 때문에 빠져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六五往來厲하니 하여 无喪有事니라.

육오(六五)는 진()이 오고감이 위태로우니, 억측(億測)하여 하고 있는 일을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

本義往來厲하나 億无喪하고 有事로다.

본의 진동함에 오고감이 위태로우나 잃음이 없고 일함이 있다.

六五雖以陰居陽하여 不當位하여 爲不正이나 然以柔居剛하고 又得中하니 乃有中德者也不失中이면 則不違於正矣所以中爲貴也諸卦二五雖不當位多以中爲美하고 三四雖當位或以不中爲過하니 中常重於正也일새니 蓋中則不違於正이요 正不必中也天下之理莫善於中하니 於九二, 六五可見이라 五之動上往則柔不可居動之極이요 下來則犯剛하니 往來皆危也當君位하여 爲動之主하니 隨宜應變하여 在中而已故當億度()하여 无喪失其所有之事而已所有之事謂中德이라 苟不失中이면 雖有危라도[一有終字] 不至於凶也億度謂圖慮求不失中也五所以危由非剛陽而无助若以剛陽有助하여 爲動之主則能亨矣리라 往來皆危時則甚難[一有艱]이니 但期於不失中則可自守어니와 以柔主動이면 固不能致亨濟也.

육오(六五)는 비록 음()으로서 양위(陽位)에 거하여 자리가 마땅하지 않아 부정(不正)함이 되나 유()로서 강위(剛位)에 거하고 또 중()을 얻었으니, 이는 중덕(中德)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을 잃지 않으면 정()에서 떠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중()이 귀한 것이다. 여러 괘()에 이()와 오()는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더라도 중()을 아름답게 여긴 경우가 많고, ()과 사()는 자리가 마땅하더라도 혹 중()하지 못함을 과()라 한 경우가 있으니, ()이 항상 정()보다 중하기 때문이다. ()이면 정()에서 떠나지 않고 정()은 반드시 중()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천하(天下)의 이치가 중()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구이(九二)와 육오(六五)에서 볼 수 있다. ()의 동함은 위로 가면 유()라서 동()의 극()에 거할 수 없고, 아래로 오면 강()을 범하니, 이는 오고감이 모두 위태로운 것이다. 군위(君位)를 당하여 동()의 주체(主體)가 되었으니, 마땅함에 따라 변()에 응()하여 중도(中道)에 있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억탁(億度)하여 소유(所有)하고 있는 일을 상실(喪失)하지 않을 뿐이니, 소유(所有)하고 있는 일이란 중덕(中德)을 이른다. 만일 중()을 잃지 않으면 비록 위태로움이 있더라도 흉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억탁(億度)은 도모하고 생각함을 이르니, ()을 잃지 않음을 구하는 것이다. ()가 위태로운 까닭은 양강(陽剛)이 아니고 도와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니, 만일 양강(陽剛)이 도와줌이 있어 동()의 주체(主體)가 된다면 능히 형통(亨通)할 것이다. 오고감이 모두 위태로우면 때가 매우 어려운 시기이니, 다만 중()을 잃지 않음을 기약(期約)하면 스스로 지킬 수 있으나 유()로서 동()을 주장하면 진실로 형통(亨通)하고 이룸을 이루지 못한다.

本義以六居五而處震時하니 无時而不危也로되 以其得中이라 故无所喪而能有事也占者不失其中이면 則雖危无喪矣리라.

()이 오()에 거하고 진()의 때에 처하였으니, 때마다 위태롭지 않음이 없으나 중()을 얻었기 때문에 상실하는 바가 없고 일함이 있는 것이니, 점치는 이가 중()을 잃지 않으면 비록 위태로우나 잃음은 없을 것이다.

 

象曰 震往來厲危行也其事在中하니 大无喪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진동(震動)이 오고감이 위태로움은 가면 위태로운 것이요, 그 일함이 중()에 있으니 크게 잃음이 없는 것이다.”

往來皆厲하니 行則有危也動皆有危하니 唯在无喪其事而已其事謂中也能不失其中이면 則可自守也大无喪以无喪爲大也.

오고감이 모두 위태로우니, 가면 위태로움이 있는 것이다. 동함에 모두 위태로움이 있으니, 오직 하고 있는 일을 잃지 않음에 있을 뿐이니, 그 일이란 중()을 이른다. ()을 잃지 않으면 스스로 지킬 수 있다. ‘대무상(大无喪)’은 무상(无喪)을 큼으로 여기는 것이다.

 

上六索索하여 視矍矍이니 이면 하니 震不于其躬이요 于其隣이면 无咎리니 婚媾有言이리라.

상육(上六)은 진동(震動)함이 삭삭(索索)하여 보기를 두리번거리는 것이니, 가면 흉하니, 진동(震動)이 자기 몸에 이르렀을 때에 하지 않고 그 이웃에 왔을 때에 미리하면 허물이 없으리니, 혼구(婚媾)는 원망하는 말이 있으리라.

本義无咎어니와,

본의허물이 없으나,

索索消索()不存之狀이니 謂其志氣如是六以陰柔居震動之極하니 其驚懼之甚하여 志氣殫索也矍矍不安定貌志氣索索이면 則視瞻徊徨이라 以陰柔不中正之質而處震動之極이라 故征則凶也震之及身乃于其躬也不于其躬謂未及身也隣者近於身者也能震懼於未及身之前이면 則不至於極矣故得无咎苟未至於極이면 尙有可改之道하니 震終當變이요 柔不固守故有畏[一作見]隣戒而能變之義하니라 聖人於震終示人知懼能改之義하시니 爲勸深矣로다 婚媾所親也謂同動者有言有怨咎之言也六居震之上하여 始爲衆[一作震]動之首러니 今乃畏隣戒而不敢進하여 與諸處震者異矣故婚媾有言也니라.

삭삭(索索)은 소삭(消索)하여 보존(保存)하지 못하는 모양이니, 지기(志氣)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이 음유(陰柔)로서 진동(震動)의 극()에 거하였으니, 놀라고 두려워함이 심하여 지기(志氣)가 다하고 막힌 것이다. 확확(矍矍)은 안정(安定)하지 못한 모양이니, 지기(志氣)가 삭삭(索索)하면 보기를 두리번거린다. 음유(陰柔)하고 중정(中正)하지 못한 자질로 진동(震動)의 극()에 처하였으므로 가면 흉한 것이다. 진동(震動)이 몸에 미침은 바로 그 몸에 하는 것이니, ‘불우기궁(不于其躬)’은 몸에 미치지 않았을 때를 이른다. 이웃이란 몸에 가까운 이이니, 몸에 아직 미치기 전에 진구(震懼)하면 극()에 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극()에 이르지 않는다면 아직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이 끝나면 마땅히 변하고 유()는 굳게 지키지 못하므로 이웃의 경계함을 두려워하여 능히 변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성인(聖人)이 진()의 마지막에서 사람들에게 두려워할 줄을 알아 고치는 뜻을 보여주셨으니, 권면함이 깊도다. 혼구(婚媾)는 친한 바이니, 함께 동하는 이를 이른다. ‘유언(有言)’은 원망하고 허물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은 진()의 위에 거하여 처음에는 여러 동()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이제 마침내 이웃의 경계함을 두려워하여 감히 나아가지 못해서 여러 진()에 처한 자와 달리한다. 그러므로 혼구(婚媾)들이 원망하는 말이 있는 것이다.

本義以陰柔處震極이라 故爲索索矍矍之象이니 以是而行이면 其凶必矣然能及其震未及其身之時하여 恐懼修省이면 則可以无咎로되 而亦不能免於婚媾之有言하리니 戒占者當如是也.

음유(陰柔)로서 진()의 극()에 처하였으므로 삭삭확확(索索矍矍)의 상()이 되니, 이렇게 하여 행()하면 그 흉()함이 틀림없다. 그러나 진동(震動)이 몸에 이르지 않았을 때에 미쳐 공구(恐懼)하여 닦고 살피면 허물이 없을 수 있으나 혼구(婚媾)의 원망하는 말이 있음을 면치 못하리니,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震索索中未得也일새요 雖凶无咎畏隣戒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진삭삭(震索索)’은 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요, 비록 흉()하나 허물이 없음은 이웃의 경계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본의중심(中心),

所以恐懼自失如此以未得於中道也謂過中也使之得中이면 則不至於索索矣리라 極而復征이면 則凶也若能見隣戒而知懼하여 變於未極之前이면 則无咎也上六動之極이니 震極則[一作之終]有變義也.

공구(恐懼)하여 스스로 잃음이 이와 같은 까닭은 중도(中道)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니, ()을 지남을 이른다. 중도(中道)를 얻게 하면 삭삭(索索)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이 되었는데 다시 가면 흉하니, 만일 이웃의 경계함을 보고 두려워할 줄을 알아 지극하기 전에 변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상육(上六)은 동()의 극()이니, 진동(震動)이 극()에 이르면 변하는 뜻이 있다.

本義謂中心이라.

()은 중심(中心)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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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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