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점(漸)
【傳】 漸은 序卦에 艮者는 止也니 物不可以終止라 故受之以漸하니 漸者는 進也라 하니라 止必有進하니 屈伸消息之理也라 止之所生도 亦進也요 所反도 亦進也니 漸所以次艮也라 進以序爲漸이니 今人이 以緩進爲漸하니 進以序하여 不越次하니 所以緩也라 爲卦 上巽下艮하여 山上有木하니 木之高而因山은 其高[一有而字]有因也니 其高有因이면 乃其進有序也니 所以爲漸也라.
점괘(漸卦)는 〈서괘전(序卦傳)〉에 “간(艮)은 그침이니, 사물은 끝내 그칠 수만은 없다. 그러므로 점괘(漸卦)로 받았으니, 점(漸)은 나아감이다.” 하였다. 그치면 반드시 나아감이 있으니, 굴신(屈伸)과 소식(消息)의 이치이다. 그침이 낳는 것도 역시 나아감이요, 반대되는 것도 역시 나아감이니, 점괘(漸卦)가 이 때문에 간괘(艮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나아감을 순서대로 하는 것이 점(漸)이니, 지금 사람들이 느리게 나아감을 점진(漸進)이라 하니, 나아감을 순서대로 하여 차례를 넘지 않으니, 이 때문에 느린 것이다. 괘(卦)됨이 위는 손(巽)이고 아래는 간(艮)이어서 산(山) 위에 나무가 있으니, 나무가 높으나 산(山)을 따름은 그 높음이 인함이 있는 것이니, 높음이 인함이 있으면 바로 나아감에 차례가 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점(漸)이라 한 것이다.
漸은 女歸吉하니 利貞이니라.
점(漸)은 여자의 시집감이 길(吉)하니, 이로움은 정(貞)하기 때문이다.
【본의】 정(貞)함이 이롭다.
【傳】 以卦才로 兼漸義而言也라 乾坤之變이 爲巽艮이요 巽艮重而爲漸이라 在漸體而言하면 中二爻交也니 由二爻之交然後에 男女各得正位라 初終二爻는 雖不當位나 亦陽上陰下하니 得尊卑之正이요 男女各得其正은 亦得位也니 與歸妹正相對라 女之歸能如是之正이면 則吉也라 天下之事에 進必以[一作有]漸者 莫如女歸라 臣之進於朝와 人之進於事에 固當有序하니 不以其序[一作漸]하면 則陵節犯義하여 凶咎隨之라 然以義之輕重과 廉恥之道로 女之從人이 最爲大也라 故以女歸爲義요 且男女는 萬事之先也일새라[一有利貞字] 諸卦多有利貞而所施或不同하니 有涉不正之疑而爲之戒者하며 有其事必貞이라야 乃得其宜者하며 有言所以利者 以其有貞也라 所謂涉不正之疑而爲之戒者는 損之九二是也니 處陰居說이라 故戒以宜貞也요 有其事必貞이라야 乃得宜者는 大畜是也니 言所畜利於貞也요 有言所以利者以其有貞者는 漸是也니 言女歸之所以吉은 利於如此貞正也니 蓋其固有요 非設戒也라 漸之義 宜能亨이로되 而不云亨者는 蓋亨者는 通達之義요 非漸進之義也일새라.
괘재(卦才)로 점(漸)의 뜻을 겸하여 말하였다. 건(乾)·곤(坤)의 변함이 손(巽)과 간(艮)이 되고, 손(巽)과 간(艮)이 겹쳐서 점(漸)이 되었다. 점(漸)의 체(體)에 있어 말하면 가운데의 두 효(爻)가 사귀었으니, 두 효(爻)가 사귐으로 말미암은 뒤에 남(男)·여(女)가 각기 정위(正位)를 얻었다. 초(初)와 종(終) 두 효(爻)는 비록 자리에 마땅하지 않으나 또한 양(陽)이 위에 있고 음(陰)이 아래에 있으니, 존비(尊卑)의 바름을 얻은 것이요, 남(男)·여(女)가 각각 바름을 얻음은 또한 자리를 얻은 것이니, 귀매괘(歸妹卦)와 정반대이다. 여자의 시집감이 이와 같이 바르면 길(吉)하다. 천하(天下)의 일에 나아가기를 반드시 점진(漸進)으로써 함은 여자가 시집가는 것과 같은 것이 없다. 신하(臣下)가 조정(朝廷)에 나아감과 사람이 일에 나아감도 진실로 마땅히 순서가 있으니, 순서를 따르지 않으면 절도(節度)를 능멸하고 의(義)를 범하여 흉구(凶咎)가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의(義)의 경중(輕重)과 염치(廉恥)의 도리로는 여자가 사람을 따름이 가장 큰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여자(女子)의 시집감으로 뜻을 삼았으며, 또 남(男)·여(女)는 만사(萬事)의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여러 괘(卦)에 ‘이정(利貞)’이 많이 있는데 놓은 것이 혹 같지 않으니, 부정(不正)한 의심에 걸려 경계한 경우가 있으며, 일이 반드시 정(貞)하여야 마땅함을 얻는 경우가 있으며, 이로운 까닭은 정(貞)이 있기 때문임을 말한 경우가 있다. 이른바 부정(不正)한 의심에 걸려 경계했다는 것은 손괘(損卦)의 구이효(九二爻)가 이것이니 음(陰)에 처하고 열(說)에 있으므로 마땅히 정(貞)하라고 경계한 것이요, 일이 반드시 정(貞)하여야 마땅함을 얻는다는 것은 대축괘(大畜卦)가 이것이니 쌓는 바가 정(貞)함이 이로움을 말한 것이요, 이로운 까닭은 정(貞)이 있기 때문임을 말했다는 것은 점괘(漸卦)가 이것이니 여귀(女歸)가 길(吉)한 이유는 이와 같이 정정(貞正)함이 이로움을 말한 것이니, 이는 고유한 것이요 경계를 베푼 것이 아니다. 점(漸)의 뜻은 마땅히 형통할 것이나 형통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형통함은 통달(通達)의 뜻이요, 점진(漸進)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本義】 漸은 漸進也라 爲卦止於下而巽於上하니 爲不遽進之義요 有女歸之象焉하며 又自二至五에 位皆得正이라 故其占이 爲女歸吉而又戒以利貞也라.
점(漸)은 점진(漸進)함이다 괘(卦)됨이 아래에 그치고 위에 공손하니 갑자기 나아가지 않는 뜻이 되고, 여자가 시집가는 상(象)이 있으며, 또 이효(二爻)로부터 오효(五爻)에 이르기까지 자리가 모두 정(正)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여귀(女歸)의 길(吉)함이 되고 또 이정(利貞)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彖曰 漸之進也는 女歸의 吉也라.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점(漸)의 나아감은 여자가 시집감에 길(吉)한 것이다.
【傳】 如漸之義而進이면 乃女歸之吉也니 謂正而有漸也라 女歸爲大耳요 他進亦然이니라.
점(漸)의 뜻과 같이 하여 나아가면 여귀(女歸)의 길(吉)함이니, 바르고 점점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여자의 시집감이 가장 큰 것이 될 뿐이요, 다른 나아감도 그러하다.
【本義】 之字는 疑衍이어나 或是漸字라.
지자(之字)는 의심컨대 연문(衍文)이거나 혹 점자(漸字)인 듯하다.
進得位하니 往有功也요,
나아가 자리를 얻으니 가면 공(功)이 있을 것이요,
【傳】 漸進之時而陰陽各得正位하니 進而有功也라 四復由上進而得正位하고 三離下而爲上하여 遂得正位하니 亦爲進得位之義라.
점진(漸進)의 때에 음(陰)·양(陽)이 각각 정위(正位)를 얻었으니, 나아가면 공(功)이 있을 것이다. 사(四)가 다시 위로 말미암아 나아가서 정위(正位)를 얻고, 삼(三)이 아래를 떠나 위가 되어서 마침내 정위(正位)를 얻었으니, 이 역시 나아가 자리를 얻은 뜻이 된다.
進以正하니 可以正邦也니,
나아가기를 정도(正道)로써 하니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으니,
【傳】 以正道而進이면 可以正邦國하여 至於天下也라 凡進於事, 進於德, 進於位가 莫不皆當以正也니라.
정도(正道)로써 나아가면 방국(邦國)을 바로잡아 천하(天下)에까지 이를 수 있다. 무릇 일에 나아가고 덕(德)에 나아가고 지위에 나아감이 모두 정도(正道)로써 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本義】 以卦變으로 釋利貞之意라 蓋此卦之變이 自渙而來하여 九進居三하고 自旅而來하여 九進居五하니 皆爲得位之正이라.
괘변(卦變)으로써 이정(利貞)의 뜻을 해석하였다. 이 괘(卦)의 변(變)은 환괘(渙卦)[ ]로부터 와서 구(九)가 나아가 삼(三)에 거하고, 여괘(旅卦)[ ]로부터 와서 구(九)가 나아가 오(五)에 거했으니, 모두 자리의 바름을 얻음이 된다.
其位는 剛得中也라.
그 자리는 강(剛)이 중(中)을 얻었다.
【傳】 上云進得位往有功也는 統言陰陽得位라 是以進而有功이요 復云其位剛得中也는 所謂位者는 五以剛陽中正으로 得尊位也라 諸爻之得正도 亦可謂之得位矣나 然未若五之得尊位라 故特言之하니라.
위에 ‘진득위왕유공(進得位往有功)’이라고 말한 것은 음(陰)·양(陽)이 자리를 얻었기 때문에 나아가 공(功)이 있음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요, 다시 ‘기위강득중야(其位剛得中也)’라고 말한 것은 이른바 위(位)는 오(五)가 양강중정(陽剛中正)으로 존위(尊位)를 얻은 것이다. 여러 효(爻)가 정위(正位)를 얻은 것도 득위(得位)라고 할 수 있으나 오(五)가 존위(尊位)를 얻은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특별히 말한 것이다.
【本義】 以卦體言이니 謂九五也라.
괘체(卦體)로 말하였으니, 구오(九五)를 이른다.
止而巽할새 動不窮也라.
그치고 공손하므로 동함이 곤궁하지 않은 것이다.”
【傳】 內艮止하고 外巽順하니 止爲安靜之象이요 巽爲和順之義라 人之進也를 若以欲心之動이면 則躁而不得其漸이라 故有困窮이어니와 在漸之義엔 內止靜而外巽順이라 故其進動이 不有[一作至]困窮也라.
안은 간지(艮止)이고 밖은 손순(巽順)하니, 지(止)는 안정(安靜)한 상(象)이 되고 손(巽)은 화순(和順)한 뜻이 된다. 사람이 나아가기를 만일 욕심의 동함으로써 하면 조급하여 점점함을 얻지 못하므로 곤궁(困窮)함이 있으나, 점(漸)의 뜻에 있어서는 안은 멈추어 고요하고 밖은 손순(巽順)하다. 그러므로 그 나아가 동함이 곤궁함이 없는 것이다.
【本義】 以卦德으로 言漸進之義라.
괘덕(卦德)으로 점진(漸進)의 뜻을 말하였다.
象曰 山上有木이 漸이니 君子以하여 居賢德하여 善俗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산(山) 위에 나무가 있음이 점(漸)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현덕(賢德)에 머물러 풍속(風俗)을 선(善)하게 한다.”
【本義】 居賢德하며,
【본의】 현덕(賢德)에 머물며,
【傳】 山上有木하여 其高有因이 漸之義也라 君子觀漸之象하여 以居賢善之德하여 化美於風俗하나니라 人之進於賢德에 必有其漸하여 習而後能安이요 非可陵節而遽至也라 在己且然이어든 敎化之於人에 不以漸이면 其能入乎아 移風易俗은 非一朝一夕所能成이라 故善俗을 必以漸也라.
산(山) 위에 나무가 있어 그 높음이 따름이 있는 것이니, 이것이 점(漸)의 뜻이다. 군자(君子)가 점(漸)의 상(象)을 관찰하여 현선(賢善)의 덕(德)에 머물러 풍속(風俗)을 교화해서 아름답게 한다. 사람이 현덕(賢德)에 나아감에 반드시 점점함이 있어 익힌 뒤에 편안한 것이요, 절차를 능멸하여 대번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있어서도 그러한데 남을 교화시킴에 점진(漸進)으로써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있겠는가. 풍속(風俗)을 바꿈은 하루아침 하루저녁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풍속(風俗)을 선(善)하게 함은 반드시 점진(漸進)으로써 하여야 하는 것이다.
【本義】 二者를 皆當以漸而進이라 疑賢字衍이어나 或善下有脫字라.
두 가지를 모두 마땅히 점점하여 나아가야 한다. 의심컨대 현자(賢字)가 연문(衍文)이거나 혹 선자(善字) 아래에 탈자(脫字)가 있는 듯하다.
初六은 鴻漸于干이니 小子厲하여 有言이나 无咎니라.
초육(初六)은 기러기가 물가에 점진(漸進)함이니, 소자(小子)는 위태롭게 여겨 말이 있으나 허물이 없다.
【傳】 漸諸爻皆取鴻象하니 鴻之爲物이 至有時而群有序하니 不失其時序는 乃爲漸也라 干은 水湄라 水鳥止於水之湄하니 水至近也니 其進이 可謂漸矣라 行而以時는 乃所謂漸이니 漸[一无漸字]進不失이면 漸得其宜矣라 六居初는 至下也요 陰之才는 至弱也어늘 而上無應援하니 以此而進은 常情之所憂也라 君子則深識遠照하여 知義理之所安과 時事之所宜하여 處之不疑어니와 小人幼子는 唯能見已然之事하고 從衆人之[一有所字]知(智)하여 非能燭理也라 故危懼而有言하니 蓋不知在下所以有進也요 用柔所以不躁也요 无應所以能漸也니 於義自无咎也라 若漸之初而用剛急進이면 則失漸之義하니 不能進而有咎 必矣니라.
점(漸)의 여러 효(爻)가 모두 기러기의 상(象)을 취했으니, 기러기란 물건은 오는 것이 때가 있고 무리에 질서가 있으니, 때와 질서를 잃지 않는 것은 점(漸)이 된다. 간(干)은 물가이다. 수조(水鳥)가 물가에 멈추니, 물에서 지극히 가까우니, 그 나아감이 점점하다고 이를 만하다. 가기를 때에 따라 함이 이른바 점(漸)이란 것이니, 점진(漸進)하여 잃지 않으면 점점함이 그 마땅함을 얻게 된다. 육(六)이 초(初)에 거함은 지극히 낮은 것이요, 음(陰)의 재질은 지극히 약한데 위에 응원(應援)이 없으니, 이러한 처지로 나아감은 상정(常情)에 걱정하는 바이다. 군자(君子)는 깊이 알고 멀리 비추어 의리(義理)에 편안한 바와 시사(時事)에 마땅한 바를 알아서 대처하여 의심하지 않으나, 소인(小人)과 유자(幼子)는 오직 이연(已然)의 일만 보고 중인(衆人)의 지혜를 따를 뿐이어서 능히 이치를 밝게 살피는 이가 아니다. 그러므로 위태롭게 여기고 두려워하여 말이 있는 것이니, 아랫자리에 있음은 나아감이 있는 것이요 유(柔)를 씀은 조급하지 않은 것이요 응(應)이 없음은 능히 점진(漸進)하는 것이어서 의(義)에 스스로 허물이 없음을 알지 못한다. 만일 점(漸)의 초기에 강(剛)을 쓰고 급진하면 점(漸)의 뜻을 잃으니, 나아가지 못하고 허물이 있음이 틀림없다.
【本義】 鴻之行有序而進有漸이라 干은 水涯也니 始進於下하여 未得所安而上復无應이라 故其象如此요 而其占則爲小子厲하여 雖有言이나 而於義則无咎也라.
기러기의 날아감은 질서가 있고 나아감은 점진(漸進)함이 있다. 간(干)은 물가이니, 처음 아래에서 나아가 편안한 바를 얻지 못하였고 위에 다시 응(應)이 없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고, 그 점(占)은 소자(小子)가 위태롭게 여겨 비록 말이 있으나 의리(義理)에는 허물이 없는 것이다.
象曰 小子之厲나 義无咎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소자(小子)는 위태롭게 여기나 의리(義理)에는 허물이 없다.”
【傳】 雖小子以爲危厲나 在義理에 實无咎也라.
비록 소자(小子)는 위태롭게 여기나 의리(義理)에 있어서는 실제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六二는 鴻漸于磐이라 飮食이 衎衎하니 吉하니라.
육이(六二)는 기러기가 반석(磐石)에 점진(漸進)한다. 음식(飮食)을 먹음이 즐겁고 즐거우니, 길(吉)하다.
【傳】 二居中得正하여 上應於五하니 進之安裕者也로되 但居漸故로 進不速이라 磐은 石之安平者니 江河之濱所有니 象進之安이요 自干之磐은 又漸進也라 二與九五之君으로 以中正之道相應하여 其進之安固平易 莫加焉이라 故其飮食和樂衎衎然하니 吉可知也라.
이(二)는 중(中)에 거하고 정(正)을 얻어서 위로 오(五)와 응(應)하니, 나아가기를 편안하고 여유롭게 하는 것이나 다만 점(漸)의 때에 처했으므로 나아가기를 빨리하지 않는 것이다. 반(磐)은 돌이 편안하고 평평한 것으로 강하(江河)의 물가에 있는 것이니, 나아가기를 편안히 함을 상징한 것이요, 물가로부터 반석(磐石)에 감은 또 점진(漸進)이다. 이(二)는 구오(九五)의 군주와 더불어 중정(中正)한 도로 서로 응(應)하여 그 나아감이 안고(安固)하고 평이(平易)함이 더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음식을 먹음이 화락하여 즐거운 것이니, 길(吉)함을 알 수 있다.
【本義】 磐은 大石也니 漸遠於水하여 進於干而益安矣라 衎衎은 和樂意라 六二柔順中正하여 進以其漸而上有九五之應이라 故其象如此요 而占則吉也라.
반(磐)은 큰 돌이니, 점점 물에서 멀어져 물가에서 나아가 더욱 편안한 것이다. 간간(衎衎)은 화락(和樂)한 뜻이다. 육이(六二)가 유순(柔順)하고 중정(中正)하여 나아가기를 점점하고 위에 구오(九五)의 응(應)이 있으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고 점(占)이 길(吉)한 것이다.
象曰 飮食衎衎은 不素飽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음식간간(飮食衎衎)’은 헛되이 배부른 것이 아니다.”
【傳】 爻辭는 以其進之安平이라 故取飮食和樂爲言하니 夫子恐後人之未喩하사 又釋之云 中正君子 遇中正之主하여 漸進于上하여 將行其道以及天下하니 所謂飮食衎衎은 謂其得志和樂이요 不謂空飽飮[一无飮字]食而已라 素는 空也라.
효사(爻辭)는 나아감이 평안(平安)하기 때문에 음식(飮食)의 화락(和樂)함을 취하여 말하였는데, 부자(夫子)는 후인(後人)들이 깨닫지 못할까 저어하여 다시 해석하기를 “중정(中正)한 군자(君子)가 중정(中正)한 군주(君主)를 만나서 위로 점진(漸進)하여 장차 그 도를 행해서 천하(天下)에 미치니, 이른바 ‘음식간간(飮食衎衎)’은 그 뜻을 얻어 화락함을 이른 것이요, 공연히 음식을 배불리 먹을 뿐임을 말한 것이 아니다.” 하셨다. 소(素)는 공(空)이다.
【本義】 素飽는 如詩言素飡(餐)이니 得之以道면 則不爲徒飽而處之安矣리라.
소포(素飽)는 《시경(詩經)》의 소찬(素飡)이란 말과 같으니, 얻기를 도(道)에 맞게 하면 헛되이 배부름이 되지 아니하여 처함이 편안할 것이다.
九三은 鴻漸于陸이니 夫征이면 不復하고 婦孕이라도 不育하여 凶하니 利禦寇하니라.
구삼(九三)은 기러기가 육지로 점진(漸進)함이니, 남자는 가면 돌아오지 않고 부인(婦人)은 잉태(孕胎)하더라도 생육(生育)하지 못하여 흉하니, 적을 막음이 이롭다.
【本義】 婦孕이면,
【본의】 부인(婦人)은 잉태(孕胎)하면,
【傳】 平高曰陸이니 平原也라 三在下卦之上하니 進至於陸也라 陽은 上進者也로되 居漸之時하여 志將漸進而上无應援하니 當守正以俟時하고 安處平地하면 則[一无則字]得漸之道어니와 若或不能自守하여 欲有所牽하고 志有所就하면 則失漸之道라 四陰이 在上而密比하니 陽所說也요 三陽이 在下而相親하니 陰所從也라 二爻相比而无應하니 相比則相親而易合이요 无應則无適而相求라 故爲之戒라 夫는 陽也니 夫는 謂三이라 三若不守正하고 而與四合이면 是知征而不知復이라 征은 行也요 復은 反也니 不復은 謂不反顧義理라 婦는 謂四니 若以不正而合이면 則雖孕而不育이니 蓋非其道也니 如是則凶也라 三之所利는 在於禦寇하니 非理[一作禮]而至者寇也라 守正以閑邪는 所謂禦寇也니 不能禦寇면 則自失而凶矣리라.
평평하고 높음을 육(陸)이라 하니, 평원(平原)이다. 삼(三)은 하괘(下卦)의 위에 있으니, 나아가 육지에 이른 것이다. 양(陽)은 위로 나아가는 것이나 점(漸)의 때에 거하여 뜻이 장차 점진(漸進)하려 하고 위에 응원(應援)이 없으니, 마땅히 정도(正道)를 지켜 때를 기다리고 평지에 편안히 처하면 점(漸)의 도를 얻을 것이나 만일 혹 스스로 지키지 못하여 욕심에 끌리는 바가 있고 뜻에 나아가는 바가 있으면 점(漸)의 도를 잃는다. 사(四)인 음(陰)이 위에 있어 매우 가까우니 양(陽)이 좋아하는 바이며, 삼(三)인 양(陽)이 아래에 있어 서로 친하니 음(陰)이 따르는 바이다. 두 효(爻)가 서로 가깝고 응(應)이 없으니, 서로 가까우면 서로 친하여 합하기 쉽고 응(應)이 없으면 갈 곳이 없어 서로 구한다. 그러므로 경계한 것이다. 부(夫)는 양(陽)이니, 부(夫)는 구삼(九三)을 이른다. 삼(三)이 만약 정도(正道)를 지키지 않고 육사(六四)와 합하면 이는 갈 줄만 알고 돌아올 줄을 모르는 것이다. 정(征)은 감이요 복(復)은 돌아옴이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의리(義理)를 돌아보지 않음을 이른다. 부(婦)는 육사(六四)를 이르니, 만일 부정하게 합하면 비록 잉태(孕胎)하더라도 생육(生育)하지 못하니, 그 도(道)가 아니기 때문이니 이와 같으면 흉하다. 삼(三)의 이로운 바는 적을 막음에 있으니, 도리가 아니면서 오는 것이 적이다. 정도(正道)를 지켜 사(邪)를 막음은 이른바 적을 막는다는 것이니, 적을 막지 못하면 스스로 잃어 흉할 것이다.
【本義】 鴻은 水鳥니 陸은 非所安也라 九三이 過剛不中而无應이라 故其象如此요 而其占은 夫征則不復하고 婦孕則不育하니 凶莫甚焉이라 然以其過剛也라 故利禦寇하니라.
기러기는 수조(水鳥)이니, 육지는 편안한 곳이 아니다. 구삼(九三)이 지나치게 강(剛)하고 중(中)하지 못하며 응(應)이 없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고, 점(占)은 남자는 가면 돌아오지 않고, 부인(婦人)은 잉태(孕胎)하면 생육(生育)하지 못하니, 흉함이 이보다 심함이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강(剛)하기 때문에 적을 막음은 이로운 것이다.
象曰 夫征不復은 離群하여 醜也요 婦孕不育은 失其道也요 利用禦寇는 順相保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남자는 가면 돌아오지 않음은 무리를 떠나 추한 것이요, 부인(婦人)은 잉태(孕胎)하더라도 생육(生育)하지 못함은 그 도를 잃었기 때문이요, 적을 막음에 씀이 이로움은 순함으로 서로 보존(保存)하는 것이다.”
【傳】 夫征不復이면 則失漸之正이니 從欲而失正하여 離叛其群類는 爲可醜也라 卦之諸爻 皆无不善이어늘 若獨失正이면 是離其群類라 婦孕이 不由其道하니 所以不育也라 所利在禦寇는 謂以順道相保라 君子之與小人比也에 自守以正이니 豈唯君子自完其己而已乎아 亦使小人으로 得不陷於非義하니 是는 以順道相保하여 禦止其惡이라 故曰禦寇라 하니라.
남자가 가면 돌아오지 않으니, 그렇다면 점(漸)의 바름을 잃은 것이니, 욕심을 따라 정도(正道)를 잃어서 무리와 유(類)를 이반(離叛)함은 추함이 되는 것이다. 괘(卦)의 여러 효(爻)가 모두 선(善)하지 않음이 없는데, 만일 홀로 정도(正道)를 잃으면 이는 그 무리와 유(類)를 이반(離叛)한 것이다. 부인(婦人)의 잉태(孕胎)가 도를 따르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생육(生育)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로운 바가 적을 막음에 있음은 순한 도로써 서로 보존함을 이른다. 군자(君子)가 소인(小人)과 가까이 있을 때에 스스로 정도(正道)로써 지키니, 어찌 다만 군자(君子)가 스스로 자기 몸만 온전히 할 뿐이겠는가. 또한 소인(小人)이 불의(不義)에 빠지지 않게 하니, 이는 순한 도로써 서로 보존하여 그 악(惡)을 막고 저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을 막는다고 말한 것이다.
六四는 鴻漸于木이니 或得其桷이면 无咎리라.
육사(六四)는 기러기가 나무로 점진(漸進)함이니, 혹 그 평평한 가지를 얻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傳】 當漸之時하여 四以陰柔로 進據剛陽之上하니 陽은 剛而上進하나니 豈能安處陰柔之下리오 故四之處非安地니 如鴻之進[一作漸]于木也라 木은 漸高矣[一无矣字]而有不安之象하니 鴻趾連하여 不能握枝라 故不木棲라 桷은 橫平之柯니 唯平柯之上이라야 乃能安處라 謂四之處本危로되 或能自得安寧之道면 則无咎也니 如鴻之於木에 本不安이로되 或得平柯而處之면 則安也라 四居正而巽順하니 宜无咎者也로되 必以得失言者는 因得失以明其義也라.
점(漸)의 때를 당하여 사(四)가 음유(陰柔)로 강양(剛陽)의 위에 나아가 점거하고 있으니, 양(陽)은 강(剛)하여 위로 나아간다. 어찌 음유(陰柔)의 아래에 편안히 처하겠는가. 그러므로 사(四)의 처지는 편안한 곳이 아니니, 마치 기러기가 나무에 나아간 것과 같은 것이다. 나무는 점점 높아 불안한 상(象)이 있으니, 기러기는 발가락이 연결되어 나뭇가지를 잡지 못하므로 나뭇가지에 깃들지 않는다. 각(桷)은 가로로 된 평평한 가지이니, 오직 평평한 가지의 위라야 편안히 처할 수 있다. 사(四)의 처지가 본래 위태로우나 혹 스스로 안녕(安寧)한 도를 얻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니, 기러기가 나무에 있어 본래 편안하지 않으나 혹 평평한 가지를 얻어 처하면 편안한 것과 같다. 사(四)는 정위(正位)에 거하고 손순(巽順)하니, 마땅히 허물이 없을 이이나 반드시 득실(得失)을 말한 것은 득실(得失)을 인하여 그 뜻을 밝히려고 한 것이다.
【本義】 鴻不木棲하나니 桷은 平柯也니 或得平柯면 則可以安矣라 六四乘剛而順巽이라 故其象如此하니 占者如之면 則无咎也라.
기러기는 나무에 깃들지 않으니, 각(桷)은 평평한 가지인 바, 혹 평평한 가지를 얻으면 편안할 수 있다. 육사(六四)는 강(剛)을 탔으나 순하고 겸손하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으니, 점치는 자가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象曰 或得其桷은 順以巽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혹 평평한 가지를 얻음은 순하고 겸손하기 때문이다.”
【傳】 桷者는 平安之處니 求安之道는 唯順與巽이라 若其義順正하고 其處卑巽이면 何處而不安이리오 如四之順正而巽이라야 乃得桷也라.
각(桷)은 평안(平安)한 곳이니, 편안함을 구하는 도는 오직 순함과 겸손함 뿐이다. 만일 의(義)가 순하고 바르며, 처함이 비손(卑巽)하면 어디에 처한들 편안하지 않겠는가. 사(四)와 같이 순하고 바르고 겸손하여야 이에 평평한 가지를 얻을 것이다.
九五는 鴻漸于陵이니 婦三歲를 不孕하나 終莫之勝이라 吉하리라.
구오(九五)는 기러기가 높은 구릉으로 점진(漸進)함이니, 부인(婦人)이 삼년(三年)동안 잉태(孕胎)하지 못하나 끝내는 이기지 못한다. 길(吉)하리라.
【傳】 陵은 高阜也니 鴻之所止 最高處也니 象君之位라 雖得尊位나 然漸之時엔 其道之行이 固亦非遽라 與二爲正應而中正之德同이어늘 乃隔於三四하니 三比二하고 四比五하여 皆隔其交者也라 未能卽合이라 故三歲不孕이나 然中正之道 有必亨之理하니 不正이 豈能隔害之리오 故終莫之能勝이니 但其合有漸耳요 終得其吉也라 以不正而敵中正은 一時之爲耳니 久면 其能勝乎아.
능(陵)은 높은 언덕으로 기러기가 앉는 곳으로서 가장 높은 곳이니, 군주(君主)의 자리를 상징한 것이다. 비록 존위(尊位)를 얻었으나 점(漸)의 때에는 도(道)를 행함이 진실로 역시 대번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二)와 정응(正應)이 되고 중정(中正)의 덕(德)이 같으나 마침내 삼효(三爻)와 사효(四爻)에 막혀 있으니, 삼(三)은 이(二)와 가깝고 사(四)는 오(五)와 가까워 모두 그 사귐을 막는 것이다. 즉시 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삼년(三年)동안 잉태(孕胎)하지 못하나 중정(中正)의 도는 반드시 형통하는 이치가 있으니, 부정(不正)한 자가 어찌 막고 해치겠는가. 그러므로 끝내는 이기지 못하는 것이니, 다만 합함에 점점함이 있을 뿐이요 끝내는 길(吉)함을 얻을 것이다. 부정(不正)한 자가 중정(中正)한 이를 대적함은 한때에 하는 것일 뿐이니, 오래되면 이길 수 있겠는가.
【本義】 陵은 高阜也라 九五居尊하고 六二正應在下而爲三四所隔이라 然終不能奪其正也라 故其象如此하니 而占者如是則吉也라.
능(陵)은 높은 언덕이다. 구오(九五)가 존위(尊位)에 거하고 육이(六二)가 정응(正應)으로 아래에 있으나 삼효(三爻)와 사효(四爻)에게 막혔다. 그러나 끝내 그 바름을 빼앗지 못하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으니,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길(吉)하다.
象曰 終莫之勝吉은 得所願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끝내는 이기지 못하여 길(吉)함은 소원을 얻는 것이다.”
【傳】 君臣以中正相交하면 其道當行이니 雖有間其間者나 終豈能勝哉리오 徐必得其所願하리니 乃漸之吉也라.
군(君)·신(臣)이 중정(中正)으로 서로 사귀면 그 도가 마땅히 행해질 것이니, 비록 그 사이를 이간(離間)하는 이가 있으나 끝내는 어찌 이기겠는가. 천천히 반드시 소원(所願)을 얻을 것이니, 점(漸)의 길(吉)함이다.
上九는 鴻漸于(陸)[逵]니 其羽可用爲儀니 吉하니라.
상구(上九)는 기러기가 공중에 점진(漸進)함이니, 그 깃이 의법(儀法)이 될 만하니 길(吉)하다.
【본의】 그 깃이 의식(儀飾)이 될 만하니,
【傳】 安定胡公이 以陸爲逵하니 逵는 雲路也니 謂虛空之中이라 爾雅에 九達을 謂之逵라 하니 逵는 通達无阻蔽之義也라 上九在至高之位하니 又益上進이면 是出乎位之外니 在他時則爲過矣로되 於漸之時에 居巽之極하여 必有其序하니 如鴻之離所止而飛于雲空이요 在人則超逸乎常事之外者也라 進至於是而不失其漸은 賢達之高致也라 故可用爲儀法而吉也라 羽는 鴻之所用進也니 以其進之用으로 況上九進之道也라.
안정호공(安定胡公)이 육(陸)을 규(逵)라 하였으니, 규(逵)는 구름길이니 허공의 가운데를 이른다. 《이아(爾雅)》에 “아홉 군데로 통달함을 규(逵)라 한다.” 하였으니, 규(逵)는 통달하여 막히고 가리움이 없는 뜻이다. 상구(上九)가 지극히 높은 자리에 있으니, 또 더욱 위로 나아가면 이는 지위의 밖으로 벗어난 것이니, 다른 때에 있으면 과(過)함이 되나 점(漸)의 때에는 손(巽)의 극에 거하여 반드시 그 차례가 있을 것이니, 기러기가 앉는 곳을 떠나 구름이 떠있는 공중을 나는 것과 같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상사(常事)의 밖으로 초일(超逸)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곳에 이르러 점진(漸進)함을 잃지 않음은 어진 이와 이치를 통달한 이의 높은 행위이다. 그러므로 의법(儀法)으로 삼을 수 있어 길(吉)한 것이다. 깃은 기러기가 사용하여 나아가는 것이니, 나아갈 때에 씀으로 상구(上九)의 나아가는 도를 비유한 것이다.
【本義】 胡氏程氏皆云 陸當作逵하니 謂雲路也라 하니 今以韻讀之에 良是라 儀는 羽旄旌纛之飾也라 上九至高하여 出乎人位之外나 而其羽毛可用以爲儀飾하니 位雖極高나 而不爲无用之象이라 故其占爲如是則吉也라.
호씨(胡氏)와 정씨(程氏)가 모두 “육(陸)은 마땅히 규(逵)가 되어야 하니 구름길이다.” 하였으니, 이제 운(韻)을 맞추어 읽어봄에 진실로 옳다. 의(儀)는 우모(羽旄)와 정독(旌纛)의 꾸밈이다. 상구(上九)는 지극히 높아 사람의 지위 밖으로 나오나 그 깃털을 사용하여 의식(儀飾)으로 만들 수 있으니, 지위가 비록 지극히 높으나 무용(无用)함이 되지 않는 상(象)이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이와 같이 하면 길(吉)한 것이다.
象曰 其羽可用爲儀吉은 不可亂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기우가용위의길(其羽可用爲儀吉)’은 어지럽힐 수 없기 때문이다.”
【傳】 君子之進이 自下而上하고 由微而著하여 跬步造次라도 莫不有序하니 不失其序면 則无所不得其吉이라 故九雖窮高나 而不失其吉이라 可用爲儀法者는 以其有序而不可亂也일새라.
군자(君子)의 나아감은 아래로부터 올라가고 은미함으로부터 드러나서 반 걸음과 조차(造次)라도 차례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차례를 잃지 않으면 길(吉)함을 얻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구(九)가 비록 궁극(窮極)히 높으나 그 길(吉)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의법(儀法)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차례가 있어 어지럽힐 수 없기 때문이다.
【本義】 漸進愈高而不爲无用이요 其志卓然하니 豈可得而亂哉리오.
점점 나아가 더욱 높으나 무용(无用)함이 되지 않고 그 뜻이 탁연(卓然)하니, 어찌 어지럽힐 수 있겠는가.

53. 점(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