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간(艮)
【傳】 艮은 序卦에 震者는 動也니 物不可以終動하여 止之라 故受之以艮하니 艮者는 止也라 하니라 動靜相因하여 動則有靜하고 靜則有動하여 物无常動之理하니 艮所以次震也라 艮者는 止也어늘 不曰止者는 艮은 山之象이니 有安重堅實之意하여 非止義可盡也일새라 乾坤之交가 三索而成艮하여 一陽이 居二陰之上하니 陽은 動而上進之物이니 旣至於上이면 則止矣요 陰者는 靜也니 上止而下靜이라 故爲艮也라 然則與畜止之義何異오 曰 畜止者는 制畜之義니 力止之也요 艮止者는 安止之義니 止其所也라.
간괘(艮卦)는 〈서괘전(序卦傳)〉에 “진(震)은 동함이니, 사물은 끝내 동할 수 없어 멈춘다. 그러므로 간괘(艮卦)로 받았으니, 간(艮)은 멈춤이다.” 하였다. 동(動)과 정(靜)은 서로 인하여 동(動)하면 정(靜)이 있고 정(靜)하면 동(動)이 있어 사물이 항상 동(動)하는 이치가 없으니, 간괘(艮卦)가 이 때문에 진괘(震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간(艮)은 그침인데, 지(止)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간(艮)은 산(山)의 상(象)이니 안중(安重)하고 견실(堅實)한 뜻이 있어 지(止)의 뜻으로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乾)·곤(坤)의 사귐이 세 번 찾아 간(艮)을 이루어 하나의 양(陽)이 두 음(陰)의 위에 있으니, 양(陽)은 동(動)하여 위로 나아가는 물건이니 이미 위에 이르면 그치며, 음(陰)은 정(靜)이니 위는 그치고 아래는 정(靜)하다. 그러므로 간(艮)이라 한 것이다. 그렇다면 축지(畜止)의 뜻과 무엇이 다른가? 축지(畜止)는 억제하고 저지하는 뜻이니 힘으로 제지함이요, 간지(艮止)는 그침을 편안히 여기는 뜻이니 그 곳에 그치는 것이다.
艮其背면 不獲其身하며 行其庭하여도 不見其人하여 无咎리라.
그 등에 그치면 몸을 보지 못하며 뜰에 가면서도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으리라.
【傳】 人之所以不能安其止者는 動於欲也니 欲牽於前而求其止면 不可得也라 故艮之道는 當艮其背라 所見者在前而背乃背之하니 是所不見也니 止於所不見이면 則无欲以亂其心하여 而止乃安하리라 不獲其身은 不見其身也니 謂忘我也라 无我則止矣어니와 不能无我면 无可止之道라 行其庭不見其人은 庭除之間은 至近也니 在背則雖至近이나 不見하니 謂不交於物也라 外物不接하고 內欲不萌하여 如是而止면 乃得止之道하니 於止에 爲无咎也라.
사람이 그침을 편안히 여기지 못하는 까닭은 욕심에 동하기 때문이니, 욕심 이 앞에서 끄는데 그침을 구하면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간(艮)의 도(道)는 마땅히 등에 그쳐야 하는 것이다. 보는 것이 앞에 있는데 등은 마침내 등지고 있으니, 이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지 않는 곳에 그치면 욕심으로써 마음을 어지럽힘이 없어 그침이 이에 편안할 것이다. ‘불획기신(不獲其身)’은 몸을 보지 못함이니, 자아(自我)를 잊음을 이른다. 자아(自我)가 없으면 그칠 수 있으나 자아가 없지 못하면 그칠 수 있는 도(道)가 없다. 뜰에 가면서도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정제(庭除)의 사이는 지극히 가까우니, 등에 있으면 비록 지극히 가까우나 보지 못하니, 외물(外物)과 사귀지 않음을 이른다. 외물(外物)이 접하지 않고 안에 욕심이 싹트지 않아 이와 같이 그치면 그침의 도(道)를 얻으니, 그침에 있어 허물이 없음이 된다.
【本義】 艮은 止也니 一陽이 止於二陰之上하니 陽自下升하여 極上而止也라 其象이 爲山하니 取坤地而隆其上之狀이요 亦止於極而不進之意也라 其占則必能止于背而不有其身하고 行其庭而不見其人이라야 乃无咎也라 蓋身은 動物也로되 唯背爲止하니 艮其背면 則止於所當止也니 止於所當止면 則不隨身而動矣니 是不有其身也라 如是則雖行於庭除有人之地라도 而亦不見其人矣리라 蓋艮其背而不獲其身者는 止而止也요 行其庭而不見其人者는 行而止也니 動靜이 各止其所而皆主夫靜焉하니 所以得无咎也라.
간(艮)은 그침이니, 하나의 양(陽)이 두 음(陰) 위에 그쳤으니, 양(陽)이 아래로부터 올라가 위에 지극하여 그친 것이다. 그 상(象)이 산(山)이 되니, 곤(坤)의 땅에 그 위가 높이 솟은 상(象)을 취하였고, 또한 극(極)에 멈추어 나아가지 않는 뜻이다. 그 점(占)은 반드시 등에 그쳐 몸을 두지 않고 뜰에 가면서도 사람을 보지 않아야 허물이 없을 것이다. 몸은 동하는 물건이나 오직 등은 그침이 되니, 등에 그치면 마땅히 그칠 곳에 그친 것이니, 마땅히 그칠 곳에 그치면 몸을 따라 동하지 않으니, 이것이 몸을 두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으면 비록 정제(庭除)의 사람이 있는 곳에 가더라도 또한 사람을 보지 못할 것이다. 등에 그쳐 몸을 두지 않음은 멈춰 있으면서 그침이요, 뜰에 가면서도 사람을 보지 못함은 가면서 그침이니, 동(動)과 정(靜)이 각각 제자리에 그쳐 모두 정(靜)을 주장하니, 이 때문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彖曰 艮은 止也니 時止則止하고 時行則行하여 動靜不失其時하니 其道光明이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간(艮)은 그침이니, 때가 그쳐야 할 경우에는 그치고 때가 가야 할 경우에는 가서 동(動)과 정(靜)이 때를 잃지 않으니 그 도(道)가 광명(光明)하니,
【傳】 艮爲止하니 止之道는 唯其時니 行止動靜을 不以時則妄也라 不失其時면 則順理而合義하니 在物爲理요 處物爲義라 動靜合理義면 不失其時也니 乃其道之光明也라 君子所貴乎時하니 仲尼行止久速이 是也라 艮體篤實하여 有光明之義하니라.
간(艮)은 그침이 되니 그침의 도(道)는 오직 때에 맞아야 하니, 가고 멈춤과 동(動)하고 정(靜)함을 때에 맞게 하지 않으면 망령된 것이다. 때를 잃지 않으면 이치(理致)에 순하여 의(義)에 합하니, 사물에 있으면 이(理)라 하고 사물에 대처하면 의(義)라 한다. 동(動)과 정(靜)이 이(理)와 의(義)에 합하면 때를 잃지 않은 것이니, 이는 그 도(道)가 광명(光明)한 것이다. 군자(君子)는 때를 귀히 여기니, 중니(仲尼)의 ‘행지구속(行止久速)’이 이것이다. 간(艮)의 체(體)는 독실(篤實)하여 광명(光明)한 뜻이 있다.
【本義】 此는 釋卦名이라 艮之義則止也나 然行止各有其時라 故時止而止는 止也요 時行而行도 亦止也라 艮體篤實이라 故又有光明之義라 大畜도 於艮에 亦以輝光言之하니라.
이는 괘명(卦名)을 해석한 것이다. 간(艮)의 뜻은 멈춤이나, 가고 멈춤이 각각 때가 있다. 그러므로 때가 그쳐야 할 경우에 그치는 것도 그침이요, 때가 가야 할 경우에 가는 것도 또한 그침이다. 간(艮)의 체(體)는 독실(篤實)하므로 또 광명(光明)한 뜻이 있다. 대축괘(大畜卦)도 간(艮)에서 역시 휘광(輝光)으로 말하였다.
艮其止는 止其所也일새라.
그칠 곳에 그침은 제자리에 멈추기 때문이다.
【傳】 艮其止는 謂止之而止也니 止之而能止者는 由止得其所也니 止而不得其所면 則无可止之理라 夫子曰 於止에 知其所止라 하시니 謂當止之所也라 夫有物이면 必有則이니 父止於慈하고 子止於孝하고 君止於仁하고 臣止於敬하여 萬物庶事가 莫不各有其所하니 得其所則安이요 失其所則悖라 聖人이 所以能使天下順治는 非能爲物作則也요 唯止之各於其所而已니라.
‘간기지(艮其止)’는 멈추어야 할 때에 멈춤을 이르니, 멈춰야 할 때에 능히 멈추는 것은 멈춤이 제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니, 멈춤에 제자리를 얻지 못하면 멈출 수 있는 이치가 없다. 부자(夫子)가 말씀하기를 “멈춤에 멈출 곳을 안다.” 하였으니, 마땅히 멈추어야 할 곳을 이른다. 사물(事物)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法則)이 있으니, 아버지는 사랑에 머물고, 자식은 효(孝)에 머물고, 군주(君主)는 인(仁)에 머물고, 신하(臣下)는 경(敬)에 머물러서 만물(萬物)과 모든 일이 각각 제자리가 있으니, 제자리를 얻으면 편안하고 제자리를 잃으면 어그러진다. 성인(聖人)이 천하(天下)가 순히 다스려지게 하는 것은 일을 만들고 법칙(法則)을 만들기 때문이 아니요, 오직 멈춤이 각각 제자리에 하기 때문이다.
上下敵應하여 不相與也일새,
상(上)·하(下)가 적(敵)으로 응(應)하여 서로 더불지 않기 때문이니,
【傳】 以卦才言也라 上下二體가 以敵相應하여 无相與之義하니 陰陽相應이면 則情通而相與어늘 乃以其敵이라 故로 不相與也라 不相與則相背하니 爲[一作與]艮其背는 止之義[一有同字]也라.
괘재(卦才)로써 말한 것이다. 상(上)·하(下)의 두 체(體)가 적(敵)으로 서로 응(應)하여 서로 더부는 의(義)가 없으니, 음(陰)·양(陽)이 서로 응(應)하면 정(情)이 통하여 서로 더부나 마침내 적(敵)이기 때문에 서로 더불지 않는 것이다. 서로 더불지 않으면 서로 등지니, 등에 그침은 그치는 뜻이다.
是以不獲其身行其庭不見其人无咎也라.
이 때문에 몸을 보지 못하며 뜰에 가면서도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는 것이다.”
【傳】 相背故로 不獲其身, 不見其人이라 是以能止하니 能止則无咎也라.
서로 등지기 때문에 몸을 보지 못하고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치니, 그치면 허물이 없다.
【本義】 此는 釋卦辭라 易背爲止는 以明背卽止也니 背者는 止之所也라 以卦體言하면 內外之卦가 陰陽敵應而不相與也하니 不相與하면 則內不見己하고 外不見人而无咎矣라 晁氏云 艮其止는 當依卦辭하여 作背라 하니라.
이는 괘사(卦辭)를 해석한 것이다. 배(背)를 바꾸어 지(止)라 한 것은 배(背)가 곧 지(止)임을 밝힌 것이니, 등은 곧 그쳐 있는 곳이다. 괘체(卦體)로써 말하면 내(內)·외(外)의 괘(卦)가 음(陰)·양(陽)이 적(敵)으로 응(應)하여 서로 더불지 않으니, 서로 더불지 않으면 안으로는 자기를 보지 못하고 밖으로는 남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다. 조씨(晁氏)는 이르기를 “‘간기지(艮其止)’의 지(止)는 마땅히 괘사(卦辭)에 따라 배(背)로 써야 한다.” 하였다.
象曰 兼山이 艮이니 君子以하여 思不出其位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산(山)이 거듭함이 간(艮)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생각함이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傳】 上下皆山이라 故爲兼山이라 此而幷彼 爲兼이니 謂重復[一作複]也니 重艮之象也라 君子觀艮止之象하여 而思安所止하여 不出其位也니 位者는 所處之分也라 萬事各有其所하니 得其所則止而安이라 若當行而止하고 當速而久하여 或過, 或不及이면 皆出其位也니 況踰分非據乎아.
상(上)·하(下)가 모두 산(山)이므로 겸산(兼山)이라 한 것이다. 이것으로 저것을 겸병(兼倂)함이 겸(兼)이니 중복(重復)을 이르니, 간(艮)이 거듭 있는 상(象)이다. 군자(君子)는 간지(艮止)의 상(象)을 관찰하여 생각함이 그칠 곳에 편안하여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으니, 위(位)는 처한 바의 분수이다. 만사(萬事)가 각각 제자리가 있으니, 제자리를 얻으면 멈추어 편안하다. 만약 가야 할 경우에 멈추고 속히 떠나야 할 경우에 오래 머물러서, 혹 과(過)하거나 혹 불급(不及)하면 모두 그 지위를 벗어난 것이니, 하물며 분수를 넘고 점거할 자리가 아님에 있어서랴.
初六은 艮其趾라 无咎하니 利永貞하니라.
초육(初六)은 발꿈치에 멈춤이다. 허물이 없으니, 영정(永貞)함이 이롭다.
【傳】 六在最下하니 趾之象이라 趾는 動之先也니 艮其趾는 止於動之初也라 事止於初면 未至失正이라 故无咎也라 以柔處下하여 當趾之時也하니 行則失其正矣라 故止乃无咎라 陰柔는 患其不能常也, 不能固也라 故方止之初하여 戒以利在常永貞固하니 則不失止[一作正]之道也라.
육(六)은 가장 아래에 있으니, 발꿈치의 상(象)이다. 발꿈치는 동할 때에 먼저 움직이는 것이니, 발꿈치에 멈춤은 동하는 초기에 멈추는 것이다. 일이 초기에 멈추면 정도(正道)를 잃음에 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유(柔)로서 아래에 처하여 발꿈치의 때를 당하니, 가면 정도(正道)를 잃으므로 멈추어야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음유(陰柔)는 항상(恒常)하지 못하고 견고(堅固)하지 못함을 근심한다. 그러므로 멈추는 초기를 당하여 이로움이 상영(常永)하고 정고(貞固)함에 있다고 경계하였으니, 이렇게 하면 멈추는 도를 잃지 않는다.
【本義】 以陰柔로 居艮初하니 爲艮趾之象이라 占者如之則无咎요 而又以其陰柔故로 又戒其利永貞也라.
음유(陰柔)로 간(艮)의 초기에 거하였으니, 간지(艮趾)의 상(象)이 된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요, 또 음유(陰柔)이기 때문에 또 영정(永貞)함이 이롭다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艮其趾는 未失正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발꿈치에 멈춤은 바름을 잃지 않은 것이다.”
【傳】 當止而行은 非正也로되 止之於初라 故未至失正하니 事止於始면 則易而未至於失也라.
마땅히 멈추어야 할 때에 감은 정(正)이 아닌데 초기에 멈추었으므로 정도(正道)를 잃음에 이르지 않은 것이니, 일이 초기에 멈추면 쉽고 잘못함에 이르지 않는다.
六二는 艮其腓니 不拯其隨라 其心不快로다.
육이(六二)는 장딴지에 멈추니 구원하지 못하고 따른다. 그리하여 마음이 불쾌(不快)하도다.
【본의】 그 따름을 구원하지 못한다.
【傳】 六二居中得正하여 得止之道者也로되 上无應援하니 不獲其君矣라 三居下之上하여 成止之主하니 主乎止者也로되 乃剛而失中하여 不得止之宜하고 剛止於上하여 非能降而下求하니 二雖有中正之德이나 不能從也라 二之行止는 係乎所主하여 非得自由라 故爲腓之象이라 股動則腓隨하니 動止在股而不在腓也라 二旣不得以中正之道로 拯救三之不中이면 則必勉而隨之리니 不能拯而唯隨也면 雖咎不在己나 然豈其所欲哉리오 言不聽, 道不行也라 故其心不快하니 不得行其志也라 士之處高位면 則有拯而无隨하고 在下位면 則有當拯, 有當隨하고 有拯之不得而後隨니라.
육이(六二)는 중(中)에 거하고 정(正)을 얻어 멈춤의 도(道)를 얻은 것인데 위에 응원(應援)이 없으니, 군주(君主)에게 신임을 얻지 못한 것이다. 삼(三)은 하체(下體)의 위에 거하여 멈춤의 주체가 되었으니, 멈춤을 주장하는 것이나 강(剛)으로서 중(中)을 잃어 멈춤의 마땅함을 얻지 못하였고, 강(剛)이 위에 멈추어 몸을 낮추어 아래로 구하는 것이 아니니, 이(二)가 비록 중정(中正)한 덕(德)이 있으나 따르지 못한다. 이(二)의 가고 멈춤은 주장하는 바에 매어 있어 자유롭게 할 수 없으므로 장딴지의 상(象)이 된 것이다. 다리가 움직이면 장딴지는 따르기 마련이니, 동하고 멈춤이 다리에 달려있고 장딴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이(二)가 이미 중정(中正)한 도(道)로 삼(三)의 중(中)하지 못함을 구원하지 못하면 반드시 억지로 삼(三)을 따를 것이니, 구원하지 못하고 오직 따른다면 비록 허물이 자신에게 있지 않으나 어찌 원하는 바이겠는가. 말을 따라주지 않고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므로 마음이 불쾌(不快)하니, 그 뜻을 행하지 못한다. 선비가 높은 지위에 처하면 구원함은 있고 따름은 없으며 낮은 지위에 있으면 마땅히 구원해야 할 경우가 있고 마땅히 따라야 할 경우가 있으며 구원할 수 없는 뒤에 따르는 경우가 있다.
【本義】 六二居中得正하니 旣止其腓矣라 三爲限하니 則腓所隨也而過剛不中하여 以止乎上하니 二雖中正이나 而體柔弱하여 不能往而拯之라 是以로 其心不快也라 此爻는 占在象中하니 下爻放此하니라.
육이(六二)는 중(中)에 거하고 정(正)을 얻었으니, 이미 장딴지에 멈춘 것이다. 삼(三)은 한계가 되니, 장딴지는 삼(三)을 따르는데 삼(三)은 지나치게 강(剛)하고 중(中)하지 못하여 위에 멈추어 있으니, 이(二)가 비록 중정(中正)하나 체(體)가 유약(柔弱)하여 가서 구원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마음이 불쾌한 것이다. 이 효(爻)는 점(占)이 상(象) 가운데 있으니, 아래 효(爻)도 이와 같다.
象曰 不拯其隨는 未退聽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구원하지 못하고 따름은 위가 물러나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傳】 所以不拯之而唯隨者는 在上者未能下從也일새라 退聽은 下從也라.
구원하지 못하고 오직 따르는 까닭은 위에 있는 이가 아래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퇴청(退聽)은 아래로 따르는 것이다.
【本義】 三止乎上하여 亦不肯退而聽乎二也라.
삼(三)이 위에 멈추어 또한 물러가 이(二)를 따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九三은 艮其限이라 列其夤이니 厲薰心이로다.
구삼(九三)은 한계(限界)에 멈춤이다. 등뼈를 벌려놓음이니,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우도다.
【傳】 限은 分隔也니 謂上下之際라 三以剛居剛而不中하여 爲成艮之主하니 決止之極也요 已在下體之上而隔上下之限하니 皆爲止義라 故爲艮其限이니 是確乎止而不復能進退者也라 在人身에 如列其夤이니 夤은 膂也니 上下之際也라 列絶其夤이면 則上下不相從屬이니 言止於下之堅也라 止道는 貴乎得宜하니 行止를 不能以時而定於一하여 其堅强如此면 則處世乖戾하여 與物睽絶하리니 其危甚矣라 人之固止一隅하여 而擧世莫與宜者는 則艱蹇忿畏하여 焚撓其中하리니 豈有安裕之理리오 厲薰心은 謂不安之[一作其]勢가 薰爍其中也라.
한(限)은 나누어 막힘이니, 상하(上下)의 즈음을 이른다. 삼(三)은 강(剛)으로서 강위(剛位)에 거하여 중(中)하지 못하면서 간(艮)을 이룬 주체가 되었으니, 결단하여 그침의 지극함이요, 이미 하체(下體)의 위에 있어 상(上)·하(下)의 한계를 막았으니, 모두 멈추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한계(限界)에 멈춤이 되니, 이는 확고히 멈추어 다시는 나아가고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 있으면 마치 그 인(夤)을 벌려놓은 것과 같으니, 인(夤)은 등뼈이니, 상(上)·하(下)의 즈음이다. 등뼈를 벌려 끊어놓으면 상(上)·하(下)가 서로 종속(從屬)하지 못하니, 아래에 멈추기를 굳게 함을 말한 것이다. 멈추는 도(道)는 마땅함을 얻음을 귀하게 여기니, 가고 멈춤을 때에 맞게 하지 못하고 한 가지에 고정되어 그 견강(堅强)함이 이와 같으면 세상에 처함이 괴려(乖戾)하여 남과 반목(反目)하고 끊어질 것이니, 그 위태로움이 심하다. 사람이 한 귀퉁이에 굳게 멈추어서 온 세상과 더불어 마땅하지 못한 것는 어렵고 분노하고 두려워하여 그 마음을 태우고 동요할 것이니, 어찌 안유(安裕)할 이치가 있겠는가. ‘여훈심(厲薰心)’은 불안(不安)한 형세가 그 심중(心中)을 훈삭(薰 )함을 이른다.
【本義】 限은 身上下之際니 卽腰胯也요 夤은 膂也라 止于剕則不進而已요 九三은 以過剛不中으로 當限之處而艮其限하니 則不得屈伸하여 而上下判隔이 如列其夤矣라 危厲薰心은 不安之甚也라.
한(限)은 몸의 상(上)·하(下)의 즈음이니 바로 허리이며, 인(夤)은 등뼈이다. 장딴지에 멈추면 나아가지 않을 뿐이요, 구삼(九三)은 과강(過剛)하고 부중(不中)함으로 한계처(限界處)를 당하여 한계(限界)에 멈추니, 굴신(屈伸)하지 못하여 위아래가 나누어 막힌 것이 등뼈를 나열함과 같은 것이다.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움은 불안(不安)함이 심한 것이다.
象曰 艮其限이라 危薰心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한계(限界)에 멈추었다. 그리하여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우는 것이다.”
【傳】 謂其固止하고 不能進退하여 危懼之慮 常薰爍其中心也라.
굳게 멈추고 진퇴(進退)하지 못하여 위구(危懼)의 .생각이 항상 그 심중을 태움을 이른다.
六四는 艮其身이니 无咎니라.
육사(六四)는 몸에 멈춤이니, 허물이 없다.
【傳】 四는 大臣之位니 止天下之當止者也로되 以陰柔而不遇剛陽之君이라 故不能止物이요 唯自止其身이면 則可无咎니 所以能无咎者는 以止於正也일새라 言止其身无咎는 則見其不能止物이니 施於政則有咎矣라 在上位而僅能善其身이면 无取之甚也라.
사(四)는 대신(大臣)의 지위이니, 천하(天下)에 마땅히 멈추어야 할 것을 멈추는 이이나 음유(陰柔)로 강양(剛陽)의 군주(君主)를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남을 멈추게 하지 못하고 오직 스스로 자기 몸을 멈추면 허물이 없을 수 있으니, 허물이 없는 까닭은 바름에 멈췄기 때문이다. 몸에 멈추어 허물이 없다고 말한 것은 남을 멈추게 하지 못함을 나타낸 것이니, 정사(政事)에 시행하면 허물이 있을 것이다. 상위(上位)에 있으면서 겨우 자기 몸만을 선(善)하게 한다면 취할 것이 없음이 심한 것이다.
【本義】 以陰居陰하여 時止而止라 故爲艮其身之象이요 而占得无咎也라.
음(陰)으로서 음위(陰位)에 거하여 때가 멈추어야 할 때에 멈추었다. 그러므로 몸에 멈추는 상(象)이 되고, 점(占)이 허물이 없는 것이다.
象曰 艮其身은 止諸躬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간기신(艮其身)’은 몸에만 멈추는 것이다.”
【傳】 不能爲天下之止요 能止於其身而已니 豈足稱大臣之位也리오.
천하(天下)의 멈춤이 되지 못하고 자기 몸에만 멈출 뿐이니, 어찌 족히 대신(大臣)의 지위에 걸맞겠는가.
六五는 艮其輔라 言有序니 悔亡하리라.
육오(六五)는 광대뼈에 그친다. 말이 질서가 있으니 뉘우침이 없어지리라.
【傳】 五는 君位로 艮之主也니 主天下之止者也로되 而陰柔之才라 不足以當此義故로 止以在上取輔[一有之字]義言之[一无之字]하니라 人之所當愼而止者는 唯言行也니 五在上이라 故以輔言이라 輔는 言之所由出也니 艮於[一作其]輔면 則不妄出而有序也라 言輕發而无序則有悔요 止之於輔則[一作故]悔亡也니 有序는 中節, 有次序也라 輔與頰舌은 皆言所由出而輔在中하니 艮其輔는 謂止於中也라.
오(五)는 군주(君主)의 지위로 간(艮)의 주체이니, 천하(天下)의 멈춤을 주관하는 이이나 음유(陰柔)의 재질이라서 이 뜻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다만 위에 있다 하여 보(輔)의 뜻만 취해서 말하였다. 사람이 마땅히 삼가고 그쳐야 할 것은 오직 말과 행실이니, 오(五)는 위에 있으므로 보(輔)로 말하였다. 보(輔)는 말이 말미암아 나오는 곳이니, 보(輔)에 그치면 말을 망령되이 내지 않아 질서가 있게 된다. 말을 가볍게 발하여 질서가 없으면 뉘우침이 있을 것이요 보(輔)에서 그치면 뉘우침이 없어지니, 유서(有序)는 절도(節度)에 맞고 차서(次序)가 있는 것이다. 보(輔)와 볼과 혀는 모두 말이 말미암아 나오는 것인데, 보(輔)는 그 가운데 있으니, ‘간기보(艮其輔)’는 중(中)에 멈춤을 이른다.
【本義】 六五當輔之處라 故其象如此요 而其占悔亡也라 悔는 謂以陰居陽이라.
육오(六五)가 보(輔)에 해당하는 곳이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고, 그 점(占)이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회(悔)는 음(陰)으로서 양위(陽位)에 거함을 이른다.
象曰 艮其輔는 以中으로 正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간기보(艮其輔)’는 중(中)으로서 바르기 때문이다.”
【本義】 以中(正)也라.
【본의】 중(中)하기 때문이다.
【傳】 五之所善者는 中也니 艮其輔는 謂止於中也라 言以得中爲正하니 止之於輔하여 使不失中은 乃得正也라.
오(五)가 좋은 것은 중(中) 때문이니, ‘간기보(艮其輔)’는 중(中)에 그침을 이른다. 말은 중(中)을 얻음을 정(正)으로 삼으니, 보(輔)에 그쳐서 중(中)을 잃지 않게 함은 바로 정(正)을 얻은 것이다.
【本義】 正字는 羨(衍)文이니 叶韻可見이라.
정자(正字)는 연문(羨文)이니, 운(韻)을 맞추어 보면 알 수 있다.
上九는 敦艮이니 吉하니라.
상구(上九)는 멈춤에 독실함이니, 길(吉)하다.
【傳】 九以剛實居上하고 而又成艮之主로 在艮之終하니 止之至堅篤者也라 敦은 篤實也니 居止之極이라 故不過而爲敦이라 人之止는 難於久終이라 故節或移於晩하고 守或失於終하고 事或廢於久하니 人之所同患也라 上[一无上字]九能敦厚於終하니 止道之至善이니 所以吉也라 六爻之德에 唯此爲吉이니라.
구(九)는 강실(剛實)로서 위에 거하고 또 간(艮)을 이룬 주체로 간(艮)의 종(終)에 있으니, 멈추기를 지극히 견고히 하고 독실히 하는 이이다. 돈(敦)은 독실함이니, 멈춤의 극(極)에 거하였으므로 과(過)하지 않고 독실함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멈춤은 오래하고 끝마침을 어렵게 여긴다. 그러므로 절개가 혹 만년(晩年)에 바뀌고 지킴을 혹 종말에 잃고 일은 혹 오램에 폐해지니, 사람이 똑같이 걱정하는 바이다. 상구(上九)는 능히 종(終)에 돈후(敦厚)하니, 그치는 도(道)의 지극히 선(善)한 것이니, 이 때문에 길(吉)한 것이다. 여섯 효(爻)의 덕(德)에 오직 이 효(爻)만이 길(吉)하다.
【本義】 以陽剛으로 居止之極하니 敦厚於止者也라.
양강(陽剛)으로 그침의 극(極)에 거하였으니, 그침에 돈후(敦厚)한 이이다.
象曰 敦艮之吉은 以厚終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돈간(敦艮)의 길(吉)함은 종(終)을 돈후(敦厚)히 하기 때문이다.”
【傳】 天下之事 唯終守之爲難이니 能敦於止하여 有終者也라 上之吉은 以其能厚於終也일새라.
천하(天下)의 일은 오직 끝까지 지킴이 어려우니, 능히 그침에 독실하여 종(終)이 있는 것이다. 상구(上九)가 길(吉)함은 그 종(終)을 독후(篤厚)히 하기 때문이다.

52. 간(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