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여(旅)
【傳】 旅는 序卦에 豊은 大也니 窮大者는 必失其居라 故受之以旅라 하니라 豊盛이 至於窮極이면 則必失其所安이니 旅所以次豊也라 爲卦 離上艮下하니 山은 止而不遷하고 火는 行而不居하여 違去(爲)[而]不處之象이라 故爲旅也요 又麗(리)乎外는 亦旅之象이라
여괘(旅卦)는 〈서괘전(序卦傳)〉에 “풍(豊)은 큼이니, 큼을 궁극히 한 이는 반드시 거처를 잃는다. 그러므로 여괘(旅卦)로써 받았다.” 하였다. 풍성함이 궁극함에 이르면 반드시 편안한 바를 잃으니, 여괘(旅卦)가 이 때문에 풍괘(豊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됨이 이(離)가 위에 있고 간(艮)이 아래에 있으니, 산(山)은 멈추어 움직이지 않고 화(火)는 행하여 머물지 아니하여 떠나가서 거처하지 않는 상(象)이다. 그러므로 여(旅)가 되었고, 또 밖에 걸려 있음은 또한 여(旅)[나그네]의 상(象)이다.
旅는 小亨하고 旅貞하여 吉하니라.
여(旅)는 조금 형통(亨通)하고 여(旅)의 도(道)가 정정(貞正)하여 길(吉)하다.
【本義】 小亨하니 旅貞하면,
【본의】 조금 형통(亨通)하니 여(旅)가 바르면,
【傳】 以卦才言也니 如卦之才면 可以小亨이요 得旅之貞正而吉也라.
괘재(卦才)로 말하였으니, 괘(卦)의 재질과 같으면 조금 형통(亨通)할 수 있고 여(旅)의 정정(貞正)함을 얻어 길(吉)하다.
【本義】 旅는 覊旅也라 山止於下하고 火炎於上하니 爲去其所止而不處之象이라 故爲旅라 以六五得中於外而順乎上下之二陽하고 艮止而離麗於明이라 故其占이 可以小亨이요 而能守其旅之貞則吉이라 旅非常居니 若可苟者나 然道无不在라 故自有其正하니 不可須臾離也라.
여(旅)는 나그네로 붙여있는 것이다. 산(山)이 아래에 멈추고 화(火)가 위에 타오르니, 머물던 곳을 떠나 거처하지 않는 상(象)이 된다. 그러므로 여(旅)라 한다. 육오(六五)가 밖에서 중(中)을 얻고 상하(上下)의 두 양(陽)에게 순하며, 간(艮)은 멈추고 이(離)는 밝음에 걸려 있다. 그러므로 점(占)이 조금 형통(亨通)할 수 있고 여(旅)의 정도(貞道)를 지키면 길(吉)한 것이다. 여(旅)는 일정한 거처가 있는 것이 아니니, 구차할 듯하나, 도(道)는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스스로 정도(正道)가 있는 것이니, 도(道)는 잠시라도 떠나서는 안 된다.
彖曰 旅小亨은 柔得中乎外而順乎剛하고 止而麗(리)乎明이라 是以小亨旅貞吉也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여(旅)가 조금 형통(亨通)함은 유(柔)가 밖에서 중(中)을 얻고 강(剛)에게 순하며, 멈추고 밝음에 걸려 있다. 이 때문에 조금 형통(亨通)하고 여(旅)의 도(道)가 바루어 길(吉)한 것이니,
【傳】 六上居五는 柔得中乎外也요 麗乎上下之剛은 順乎剛也요 下艮止, 上離麗는 止而麗於明也라 柔順而得在外之中하고 所止能麗於明하니 是以小亨이요 得旅之貞正而吉也라 旅困之時에 非陽剛中正이 有助於下면 不能致大亨也라 所謂得在外之中은 中非一揆니 旅有旅之中也라 止麗於明이면 則不失時宜하리니 然後에 得[一作能]處旅之道라.
육(六)이 위로 오(五)에 거함은 유(柔)가 밖에서 중(中)을 얻은 것이요, 상하(上下)의 강(剛)에 걸려 있음은 강(剛)에게 순함이요, 아래의 간(艮)은 멈추고 위의 이(離)는 걸림은 멈추고 밝음에 걸려 있는 것이다. 유순(柔順)하면서 밖에 있는 중(中)을 얻고 멈춘 바가 밝음에 걸려 있으니, 이 때문에 조금 형통(亨通)하고 여(旅)의 정정(貞正)함을 얻어 길(吉)한 것이다. 나그네로 곤궁할 때에 양강중정(陽剛中正)이 아래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크게 형통(亨通)함을 이룰 수 없다. 이른바 밖에 있는 중(中)을 얻었다는 것은 중(中)은 한 가지 법(法)이 아니니, 나그네에게는 나그네의 중(中)이 있는 것이다. 멈춤이 밝음에 걸려 있으면 때의 마땅함을 잃지 않으니, 그런 뒤에야 나그네에 처하는 도(道)를 얻게 된다.
【本義】 以卦體卦德으로 釋卦辭라.
괘체(卦體)와 괘덕(卦德)으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旅之時義 大矣哉라.
여(旅)의 때와 의(義)가 크다.
【傳】 天下之事 當隨時各適其宜로되 而旅爲難處라 故로 稱其時義之大하니라.
천하의 일은 때에 따라 각각 그 마땅함에 맞게 하여야 하는데, 여(旅)는 대처하기가 어려우므로 그 때와 의(義)가 크다고 말한 것이다.
【本義】 旅之時爲難處라.
여(旅)의 때는 처하기 어려움이 된다.
象曰 山上有火旅니 君子以하여 明愼用刑하며 而不留獄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산(山) 위에 불이 있음이 여(旅)이니, 군자가 이로써 형(刑)을 씀을 밝게 하고 삼가며 옥사(獄事)를 지체하지 않는다.”
【傳】 火之在高에 明无不照하니 君子觀明照之象하여 則以明愼用刑하나니 明不可恃라 故戒於愼이요 明而止亦愼象이라 觀火行不處之象하면 則不留獄하나니 獄者는 不得已而設이니 民有罪而入이면 豈可留滯淹久也리오.
불이 높은 곳에 있음에 밝음이 비추지 않음이 없으니, 군자가 밝게 비추는 상(象)을 보고서 형(刑)을 씀을 밝게 하고 삼가니, 밝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삼가라고 경계한 것이요, 밝고 멈춤은 또한 삼가는 상(象)이다. 불이 번져가고 머물지 않는 상(象)을 관찰하면 옥사(獄事)를 지체하지 않으니, 옥(獄)은 부득이(不得已)하여 만든 것이니, 백성들이 죄(罪)가 있어 들어오면 어찌 지체하여 오랫동안 머물게 하겠는가.
【本義】 愼刑如山이요 不留如火라.
형(刑)을 삼가기를 산(山)과 같이 하고 지체하지 않기를 불과 같이 하는 것이다.
初六은 旅瑣瑣니 斯其所取災니라.
초육(初六)은 나그네가 자질구레함이니, 이 때문에 재앙을 취하게 된다.
【傳】 六以陰柔로 在旅之時하여 處於卑下하니 是柔弱之人이 處旅困而在卑賤이니 所存汚下者也라 志卑之人이 旣處旅困이면 鄙猥瑣細하여 无所不至하리니 乃其所以致悔辱, 取災咎也라 瑣瑣는 猥細之狀이라 當旅困之時하여 才質如是하니 上雖有援이나 无能爲也라 四는 陽性而離體니 亦非就下者也요 又在旅하니 與他卦爲大臣之位者異矣니라.
육(六)이 음유(陰柔)로서 여(旅)의 때에 있으면서 비하(卑下)한 곳에 처했으니, 이는 유약한 사람이 나그네의 곤궁함에 처하고 비천한 자리에 있는 것이니, 간직한 바가 더럽고 낮은 것이다. 뜻이 낮은 사람이 이미 나그네의 곤궁함에 처하면 야비하고 추잡스러우며 자질구레하여 이르지 않는 바가 없으리니, 이는 뉘우침과 모욕을 부르고 재앙과 허물을 취하는 소이(所以)이다. 쇄쇄(瑣瑣)는 야비하고 추잡스러우며 자질구레한 모양이다. 나그네의 곤궁할 때를 당하여 재질이 이와 같으니, 위에 비록 응원(應援)이 있으나 할 수가 없다. 사(四)는 양성(陽性)이고 이체(離體)이니 역시 아래로 내려오는 이가 아니며, 또 여(旅)에 있으니 다른 괘(卦)에서 대신(大臣)의 지위가 된 것과는 다르다.
【本義】 當旅之時하여 以陰柔居下位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여(旅)의 때를 당하여 음유(陰柔)로서 낮은 지위에 거하였으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旅瑣瑣는 志窮하여 災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나그네가 쇄쇄(瑣瑣)함은 뜻이 궁하여 재앙이 있는 것이다.”
【傳】 志意窮迫하여 益自取災也라 災眚은 對言則有分이요 獨言則謂災患耳라.
의지(意志)가 궁박(窮迫)하여 더욱 스스로 재앙을 취하는 것이다. 재생(災眚)은 상대하여 말하면 분별(分別)이 있고 하나로 말하면 재환(災患)을 이른다.
六二는 旅卽次하여 懷其資하고 得童僕貞이로다.
육이(六二)는 나그네가 머무는 곳에 나아가 물자(物資)를 간직하고 어린 종과 큰 종의 정(貞)[충직함]을 얻도다.
【傳】 二有柔順中正之德하니 柔順則衆與之요 中正則處不失當이라 故能保其所有하고 童僕亦盡其忠信이라 雖不若五有文明之德, 上下之助나 亦處旅之善者也라 次舍는 旅所安也요 財貨는 旅所資也요 童僕은 旅所賴也라 得就次舍하여 懷畜其資財하고 又得童僕之貞良은 旅之善也라 柔弱在下者는 童也요 强壯處外者는 僕也니 二柔順中正이라 故得內外之心이라 在旅에 所親比者는 童僕也라 不云吉者는 旅寓之際에 得免於災厲면 則已善矣일새라.
이(二)는 유순(柔順)하고 중정(中正)한 덕(德)이 있으니, 유순(柔順)하면 사람들이 도와주고 중정(中正)하면 처함이 마땅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소유함을 보존하고 동복(童僕)들 또한 충신(忠信)을 다하는 것이다. 비록 문명(文明)의 덕(德)과 상하(上下)의 도움이 있는 오(五)만은 못하나 역시 여(旅)에 대처하기를 잘하는 것이다. 차사(次舍)는 나그네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요, 재화(財貨)는 나그네가 이용하는 것이요, 동복(童僕)은 나그네가 의뢰하는 바이다. 머무는 집에 나아가 물자(物資)와 재물(財物)을 간직하고 또 동복(童僕)의 정량(貞良)함을 얻음은 나그네의 좋음이다. 유약(柔弱)하고 아래에 있는 것은 동(童)이요, 강장(强壯)하고 밖에 있는 것은 복(僕)이니, 이(二)가 유순(柔順)하고 중정(中正)하므로 내외(內外)의 인심(人心)을 얻은 것이다. 나그네에게 있어 가까이 하는 이는 동복(童僕)이다. 길(吉)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나그네로 부쳐있을 때에는 재앙과 위태로움만 면할 수 있으면 이미 좋기 때문이다.
【本義】 卽次則安하고 懷資則裕하고 得其童僕之貞信則无欺而有賴하니 旅之最吉者也라 二有柔順中正之德이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머무는 곳에 나아가면 편안하고 물자(物資)를 간직하면 여유가 있고 동복(童僕)의 정신(貞信)함을 얻으면 속이지 않아 의뢰함이 있으니, 나그네로서 가장 길(吉)한 것이다. 이(二)는 유순(柔順)하고 중정(中正)한 덕(德)이 있으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得童僕貞은 終无尤也리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동복(童僕)의 정(貞)을 얻음은 끝내 허물이 없으리라.”
【傳】 覊旅之人은 所賴者童僕也어늘 旣得童僕之忠貞하니 終无尤悔矣라.
나그네로 부쳐있는 사람은 의뢰하는 이가 동복(童僕)인데 이미 동복(童僕)의 충정(忠貞)함을 얻었으니, 끝내 허물과 뉘우침이 없으리라.
九三은 旅焚其次하고 喪其童僕貞이니 厲하니라.
구삼(九三)은 나그네가 머무는 곳을 불태우고 동복(童僕)의 믿음〔貞〕을 잃었으니, 위태롭다.
【本義】 喪其童僕이니 貞이라도 厲하니라.
【본의】 동복(童僕)을 잃었으니, 정(貞)하더라도 위태롭다.
【傳】 處旅之道는 以柔順謙下爲先이어늘 三이 剛而不中하고 又居下體之上, 與艮之上하여 有自高之象하니 在旅而過剛自高는 致困災之道也라 自高則不順於上이라 故上不與而焚其次하니 失所安也니 上離爲焚象이라 過剛則暴下라 故下離而喪其童僕之貞信하니 謂失其心也니 如此則[一作者]危厲之道也라.
나그네로 처하는 도(道)는 유순(柔順)함과 겸손(謙遜)함을 우선으로 삼는데, 삼(三)은 강(剛)하고 중(中)하지 못하며 또 하체(下體)의 위와 간(艮)의 위에 거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는 상(象)이 있으니, 나그네로 있으면서 지나치게 강(剛)하고 스스로 높은 체함은 곤궁과 재앙을 부르는 도(道)이다. 스스로 높은 체하면 위에 순하지 못하므로 위가 더불지 아니하여 머무는 곳을 불태우니, 편안한 바를 잃은 것이니, 위의 이(離)는 불타는 상(象)이 된다. 지나치게 강(剛)하면 아랫사람들에게 포악하게 하므로 아랫사람들이 이반(離叛)하여 동복(童僕)의 정신(貞信)을 잃는 것이니, 이는 마음을 잃음을 이르니, 이와 같으면 위태로운 도(道)이다.
【本義】 過剛不中하여 居下之上이라 故其象占如此라 喪其童僕이면 則不止於失其心矣라 故貞字連下句爲義니라.
지나치게 강(剛)하고 중(中)하지 못하면서 하괘(下卦)의 위에 거하였으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동복(童僕)을 잃으면 마음을 잃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자(貞字)를 아래 구(句)에 연결하여 뜻을 삼는다.
象曰 旅焚其次하니 亦以傷矣요 以旅與下하니 其義喪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나그네가 머무는 곳을 불태우니 또한 해롭고, 나그네로서 아래를 대하니 의리상 상실할 것이다.”
【傳】 旅焚失其次舍하니 亦以困傷矣요 以旅之時而與下之道如此하니 義當喪也라 在旅而以過剛自高로 待下면 必喪其忠貞이니 謂失其心也라 在旅而失其童僕之心이면 爲可危也라.
나그네가 머무는 집을 불태워 잃었으니 또한 곤궁하고 해로우며, 나그네의 때에 아래를 대하는 도(道)가 이와 같으니 의리상 마땅히 상실할 것이다. 나그네로 있으면서 지나치게 강하고 스스로 높은 체함으로 아랫사람들을 대하면 반드시 충정(忠貞)을 잃을 것이니, 그 마음을 잃음을 이른다. 나그네로 있으면서 동복(童僕)의 마음을 잃는다면 위험스러움이 된다.
【本義】 以旅之時而與下之道如此하니 義當喪也라.
나그네의 때에 아래를 대하는 도(道)가 이와 같으니, 의리상 마땅히 상실하게 된다.
九四는 旅于處하고 得其資斧하나 我心은 不快로다.
구사(九四)는 나그네로 거처하고 노자와 도끼를 얻으나 자신의 마음은 불쾌하도다.
【傳】 四는 陽剛이니 雖不居中이나 而處柔하고 在上體之下하여 有用柔能下之象하니 得旅之宜也라 以剛明之才로 爲五所與하고 爲初所應하니 在旅之善者也라 然四非正位라 故雖得其處止나 不若二之就次舍也라 有剛明之才하여 爲上下所與하니 乃旅而得貨財之資, 器用之利也니 雖在旅爲善이나 然上无剛陽之與하고 下唯陰柔之應이라 故不能伸其才, 行其志하여 其心不快也라 云我者는 據四而言이라.
사(四)는 양강(陽剛)이니, 비록 중(中)에 거하지 못했으나 유(柔)에 처하고 상체(上體)의 아래에 있어 유(柔)를 쓰고 몸을 낮추는 상(象)이 있으니, 나그네의 마땅함을 얻은 것이다. 강명(剛明)한 재질로 오(五)의 상대하는 바가 되고 초(初)의 응(應)하는 바가 되었으니, 나그네로 있으면서 잘 처신하는 이이다. 그러나 사(四)는 정위(正位)가 아니기 때문에 비록 거처할 곳을 얻었으나 머무는 집으로 나아간 이(二)만은 못하다. 강명(剛明)한 재질이 있어 상하(上下)의 상대하는 바가 되었으니, 나그네로서 재화(財貨)의 물자(物資)와 기용(器用)의 이로움을 얻은 것이니, 비록 나그네에 있어서는 좋음이 되나 위에 강양(剛陽)의 도움이 없고 아래에 오직 음유(陰柔)가 응(應)하기 때문에 그 재주를 펴고 그 뜻을 행하지 못하여 그 마음이 불쾌한 것이다. 아(我)라고 말한 것은 사(四)를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本義】 以陽居陰하고 處上之下하여 用柔能下라 故其象占如此라 然非其正位요 又上无剛陽之與하고 下唯陰柔之應이라 故其心이 有所不快也라.
양(陽)으로서 음위(陰位)에 거하고 상괘(上卦)의 아래에 처하여 유(柔)를 쓰고 몸을 낮추기 때문에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다. 그러나 정위(正位)가 아니고 또 위에 강양(剛陽)의 함께함이 없고 아래에 오직 음유(陰柔)가 응(應)하므로 그 마음이 불쾌한 바가 있는 것이다.
象曰 旅于處는 未得位也니 得其資斧하나 心未快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나그네로 거처함은 지위를 얻지 못함이니, 물자(物資)와 도끼를 얻으나 마음이 쾌(快)하지 못하다.”
【傳】 四以近君爲當位로되 在旅엔 五不取君義라 故四爲未得位也라 曰 然則以九居四는 不正이니 爲有咎矣라 하니 曰 以剛居柔는 旅之宜也라 九以剛明之才로 欲得時而行其志라 故雖得資斧하여 於旅爲善이나 其心志未快也라.
사(四)는 군주를 가까이 하였으므로 지위를 담당함이 되나 여(旅)에 있어서는 오(五)가 군주의 뜻을 취하지 않으므로 사(四)가 지위를 얻지 못함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구(九)로서 사(四)에 거함은 정(正)이 아니니, 허물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강(剛)으로서 유(柔)에 거함은 나그네의 마땅함이다. 구(九)가 강명(剛明)한 재질로 때를 얻어 뜻을 행하고자 하기 때문에 비록 물자(物資)와 도끼를 얻어 나그네의 입장에는 좋음이 되나 그 심지(心志)는 쾌(快)하지 못한 것이다.”
六五는 射(석)雉一矢亡이라 終以譽命이리라.
육오(六五)는 꿩을 쏘아 맞추어 한 화살에 잡는다. 끝내 명예와 복록을 얻으리라.
【本義】 射雉니 一矢亡이라도,
【본의】 꿩을 쏘아 맞힘이니, 한 화살이 없어지나,
【傳】 六五有文明柔順之德하고 處得中道而上下與之하니 處旅之至善者也라 人之處旅에 能合文明之道면 可謂善矣라 覊旅之人은 動而或失이면 則困辱隨之하나니 動而无失然後에 爲善이라 離爲雉하니 文明之物이니 射雉는 謂取則於文明之道而必合이라 如射雉에 一矢而亡之하여 發无不中이면 則終能致譽命也니 譽는 令聞也요 命은 福祿也라 五居文明之位하여 有文明之德이라 故動必中文明之道也라 五는 君位나 人君은 无旅하니 旅則失位라 故不取君義하니라.
육오(六五)는 문명(文明)하고 유순(柔順)한 덕(德)이 있으며 처함이 중도(中道)를 얻어 상하(上下)가 더부니, 나그네에 처하기를 지극히 잘하는 이이다. 사람이 나그네에 처함에 문명(文明)의 도(道)에 합하면 선(善)하다고 이를 만하다. 나그네로 부쳐있는 사람은 동(動)하여 혹 잘못하면 곤욕이 뒤따르니, 동(動)하여 잘못이 없는 뒤에야 선(善)함이 된다. 이(離)는 꿩이 되어 문명(文明)한 물건이니, 꿩을 쏘아 맞춘다는 것은 문명(文明)한 도(道)에서 법(法)을 취하여 반드시 합함을 이른다. 마치 꿩을 쏘아 맞추어 한 화살에 죽게 하여 발사함에 맞지 않음이 없듯이 한다면 끝내 예명(譽命)을 이룰 것이니, 예(譽)는 훌륭한 명성(名聲)이고 명(命)은 복록(福祿)이다. 오(五)는 문명(文明)한 자리에 거하여 문명(文明)한 덕(德)이 있으므로 동(動)함에 반드시 문명(文明)한 도(道)에 맞는 것이다. 오(五)는 군주(君主)의 자리이나, 인군(人君)은 나그네가 되는 법이 없으니, 나그네가 되면 지위를 잃는다. 그러므로 군주의 뜻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本義】 雉는 文明之物이니 離之象也라 六五柔順文明이요 又得中道하여 爲離之主라 故得此爻者 爲射雉之象이니 雖不无亡矢之費나 而所喪不多하여 終有譽命也라
꿩은 문명(文明)한 물건이니, 이(離)의 상(象)이다. 육오(六五)가 유순(柔順)하고 문명(文明)하며 또 중도(中道)를 얻어 이(離)의 주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효(爻)를 얻은 이는 꿩을 쏘아 맞히는 상(象)이 되니, 비록 화살을 잃는 허비함이 없지 않으나 상실하는 바가 많지 않아 끝내 예명(譽命)이 있는 것이다.
象曰 終以譽命은 上逮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끝내 명예(譽命)을 얻음은 위로 [더불기 때문이다.”
【본의】 위에 미치기 때문이다.
【傳】 有文明柔順之德이면 則上下與之라 逮는 與也니 能順承於上而上與之는 爲上所逮也요 在上而得乎下는 爲下所上[一无上字]逮也라 在旅而上下與之하니 所以致譽命也라 旅者는 困而未得所安之時也니 終以譽命은 終當致譽命也니 已譽命則非旅也라 困而親寡則爲旅니 不必在外也라.
문명(文明)하고 유순(柔順)한 덕(德)이 있으면 상하(上下)가 더분다. 체(逮)는 더붊이니, 윗사람을 순히 받들어 윗사람이 더붊은 윗사람에게 더부는 바가 되는 것이요, 위에 있으면서 아랫사람에게 얻음은 아랫사람에게 위로 더부는 바가 되는 것이다. 나그네로 있으면서 상하(上下)가 더부니, 이 때문에 예명(譽命)을 이룬 것이다. 나그네는 곤궁하여 편안함을 얻지 못하는 때이니, ‘종이예명(終以譽命)’은 끝내 예명(譽命)을 이루는 것이니, 이미 예명(譽命)이 있으면 나그네가 아니다. 곤궁하고 친한 사람이 적으면 나그네가 되니, 반드시 밖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本義】 上逮는 言其譽命聞於上也라.
상체(上逮)는 예명(譽命)이 위에 알려짐을 말한다.
上九는 鳥焚其巢니 旅人이 先笑後號咷라 喪牛于易니 凶하니라.
상구(上九)는 새가 둥지를 불태우니, 나그네가 먼저는 웃고 뒤에는 울부짖는다. 소를 함부로 하여 잃으니, 흉하다.
【傳】 鳥는 飛騰處高者也라 上九剛不中而處最高하고 又離體니 其亢可知라 故取鳥象하니라 在旅之時에 謙降柔和라야 乃可自保어늘 而過剛自高하니 失其所宜安矣라 巢는 鳥所安止니 焚其巢는 失其所安하여 无所止也니 在離上은 爲焚象이라 陽剛이 自處於至高하여 始快其意라 故先笑요 旣而失安莫與라 故號咷하니 輕易以喪其順德은 所以凶也라 牛는 順物이니 喪牛于易는 謂忽易以失其順也라 離火性上하니 爲躁易之象이라 上承鳥焚其巢라 故更加旅人字하니 不云旅人이면 則是鳥笑哭也라,
새는 날아서 높은 곳에 처하는 것이다. 상구(上九)가 강(剛)하고 중(中)하지 못하면서 가장 높은 자리에 처하고 또 이체(離體)이니, 그 높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새의 상(象)을 취하였다. 나그네의 때에 있어서는 겸손하고 낮추고 유화(柔和)하여야 스스로 보존할 수 있는데, 지나치게 강(剛)하고 스스로 높은 체하니, 마땅하고 편안한 곳을 잃을 것이다. 둥지는 새가 편안히 머무는 곳이니, 둥지를 불태움은 편안한 곳을 잃어서 머물 곳이 없는 것이니, 이(離)의 위에 있음은 불타는 상(象)이 된다. 양강(陽剛)이 스스로 지극히 높은 곳에 처하여 처음에는 그 뜻에 쾌(快)하므로 먼저는 웃는 것이요, 이윽고는 편안함을 잃고 더부는 이가 없으므로 울부짖는 것이니, 가벼이 하고 함부로 하여 순한 덕(德)을 잃음은 흉하게 되는 소이(所以)이다. 소는 순한 물건이니, 소를 함부로 하여 잃는다는 것은 소홀히 하고 함부로 하여 순함을 잃음을 말한다. 이(離)의 화(火)는 성질이 올라가니, 조급하고 함부로 하는 상(象)이 된다. 위로 새가 둥지를 불태운다는 말을 이었으므로 다시 여인(旅人)이라는 글자를 더했으니, 여인(旅人)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이는 새가 웃고 우는 것이 된다.
【本義】 上九過剛하여 處旅之上, 離之極하여 驕而不順하니 凶之道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상구(上九)가 지나치게 강(剛)하여 여(旅)의 위와 이(離)의 극(極)에 처하여 교만하고 순하지 못하니, 흉한 도(道)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以旅在上하니 其義焚也요 喪牛于易하니 終莫之聞也로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나그네로서 위에 있으니 의리상 불타게 되는 것이요, 소를 함부로 하여 잃으니 끝내 들어 알지 못하도다.”
【傳】 以旅在上而以尊高自處하니 豈能保其居리오 其義當有焚巢之事라 方以極剛自高하여 爲得志而笑하고 不知喪其順德於躁易하니 是終莫之聞이니 謂終不自聞知也라 使自覺知면 則不至於極而號咷矣리라 陽剛不中而處極하니 固有高亢躁動之象이요 而火復炎上하니 則又甚焉이라
나그네가 위에 있으면서 존고(尊高)함으로 자처하니, 어찌 그 거처를 보존할 수 있겠는가. 의(義)에 마땅히 둥지를 불태우는 일이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지나치게 강(剛)함으로 스스로 높은 체하여, 뜻을 얻었다 하여 웃고 순한 덕(德)을 조급하고 함부로 함에서 잃는 줄을 모르니, 이는 끝내 듣지 못하는 것이니, 끝내 스스로 들어 알지 못함을 이른다. 가령 스스로 깨달아 안다면 극(極)에 처하여 울부짖는 데에는 이르지 않으리라. 양강(陽剛)으로 중(中)하지 못하면서 극(極)에 처하였으니 진실로 높은 체하고 조급하게 동(動)하는 상(象)이 있으며, 불이 다시 불타 오르니 또 더욱 심한 것이다.

56. 여(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