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풍(豊)
【傳】 豊은 序卦에 得其所歸者는 必大라 故受之以豊이라 하니라 物所歸聚면 必成其大라 故歸妹之後에 受之以豊也니 豊은 盛大之義라 爲卦 震上離下하니 震은 動也요 離는 明也라 以明而動하고 動而能[一无能字]明은 皆致豊之道니 明足以照하고 動足以亨然後에 能致豊大也라.
풍괘(豊卦)는 〈서괘전(序卦傳)〉에 “돌아갈 곳을 얻은 이는 반드시 커진다. 그러므로 풍괘(豊卦)로 받았다.” 하였다. 사물이 돌아가 모이면 반드시 그 큼을 이룬다. 그러므로 귀매괘(歸妹卦)의 뒤에 풍괘(豊卦)로써 받은 것이니, 풍(豊)은 성대한 뜻이다. 괘(卦)됨이 진(震)이 위에 있고 이(離)가 아래에 있으니, 진(震)은 동(動)함이요 이(離)는 밝음이다. 밝음으로써 동하고 동하되 밝음은 모두 풍성(豊盛)함을 이루는 도(道)이니, 밝음이 비출 수 있고, 동함이 형통(亨通)할 수 있은 뒤에 풍대(豊大)함을 이룬다.
豊은 亨하니 王이라야 假(격)之하나니 勿憂인댄 宜日中이니라.
풍(豊)은 형통(亨通)하니, 왕(王)이어야 이를 수 있으니, 근심하지 않으려 할진댄 해가 중천(中天)에 있어 비추듯이 하여야 한다.
【本義】 王이 假之하여 勿憂요,
【본의】 왕(王)이 이에 이르러 근심하지 말고,
【傳】 豊爲盛大하니 其義自亨이라 極天下之光大者는 唯王者能至之니 假은 至也라 天位之尊하고 四海之富하고 群生之衆하고 王道之大하여 極豊之道는 其唯王者乎인저 豊之時엔 人民之繁庶하고 事物之殷盛하니 治之豈易周리오 爲可憂[一作患]慮라 宜如日中之盛明廣照하여 无所不及然後에 无憂也니라.
풍(豊)은 성대함이 되니, 그 뜻이 저절로 형통(亨通)하다. 천하(天下)의 광대(光大)함을 지극히 하는 이는 오직 왕자(王者)만이 이를 수 있으니, 격(假)은 이름이다. 천위(天位)가 높고 사해(四海)가 부유하고 군생(群生)이 많고 왕도(王道)가 커서 풍성(豊盛)한 도(道)를 지극히 함은 오직 왕자(王者)일 것이다. 풍성(豊盛)의 때에는 인민(人民)이 많고 사물(事物)이 번성하니, 다스림에 어찌 두루하기가 쉽겠는가. 우려할 만하다. 마땅히 해가 중천(中天)에 있어 성하게 밝고 널리 비추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듯이 한 뒤에야 근심이 없을 것이다.
【本義】 豊은 大也니 以明而動은 盛大之勢也라 故其占有亨道焉이라 然王者至此면 盛極當衰하니 則又有憂道焉이라 聖人이 以爲徒憂无益이니 但能守常하여 不至於過盛則可矣라 故戒以勿憂요 宜日中也라.
풍(豊)은 큼이니, 밝음으로써 동함은 성대한 세(勢)이다. 그러므로 그 점(占)에 형통(亨通)할 도(道)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왕자(王者)가 이에 이르면 성함이 지극하여 마땅히 쇠할 것이니, 또 근심할 도(道)가 있다. 성인(聖人)이 ‘한갓 근심함은 유익함이 없으니, 다만 상도(常道)를 지켜 지나치게 성함에 이르지 않으면 가(可)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근심하지 말고 해가 중천(中天)에 있어 비추는 것과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彖曰 豊은 大也니 明以動이라 故로 豊이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풍(豊)은 큼이니, 밝고 동한다. 그러므로 풍성(豊盛)한 것이니,
【傳】 豊者는 盛大之義라 離明而震動하니 明動相資하여 而成豊大也라.
풍(豊)은 성대한 뜻이다. 이(離)는 밝고 진(震)은 동(動)하니, 명(明)과 동(動)이 서로 의뢰하여 성대함을 이룬 것이다.
【本義】 以卦德으로 釋卦名義라.
괘덕(卦德)으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王假之는 尙大也요,
‘왕격지(王假之)’는 숭상함이 큰 것이요,
【傳】 王者는 有四海之廣과 兆民之衆하여 極天下之大也라 故豊大之道는 唯王者能致之라 所有旣大면 其保之治之之道 亦當大也라 故王者之所尙이 至大也라.
왕자(王者)는 사해(四海)의 넓음과 조민(兆民)의 많음을 소유하여 천하(天下)의 큼을 지극히 한다. 그러므로 풍대(豊大)의 도(道)는 오직 왕자(王者)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소유한 바가 이미 크면 보존하고 다스리는 방도도 마땅히 커야 한다. 그러므로 왕자(王者)의 숭상하는 바가 지극히 큰 것이다.
勿憂宜日中은 宜照天下也라.
‘물우의일중(勿憂宜日中)’은 천하(天下)에 비춤이 마땅하다.
【傳】 所有旣廣하고 所治旣衆이면 當憂慮其不能周及이니 宜如日中之盛明이 普照天下하여 无所不至하면 則可勿憂矣라 如是然後에 能保其豊大하리니 保有豊大는 豈小才小知(智)之所能也리오
소유함이 이미 넓고 다스리는 바가 이미 많으면 마땅히 두루 미치지 못함을 우려해야 할 것이니, 해가 중천(中天)에 있어 성하게 밝음이 널리 천하(天下)를 비추어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이 한다면 근심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한 뒤에야 풍대(豊大)함을 보유할 것이니, 풍대(豊大)함을 보유함은 어찌 작은 재주와 작은 지혜로 할 수 있겠는가.
【本義】 釋卦辭라.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日中則昃하며 月盈則食하나니 天地盈虛도 與時消息이온 而況於人乎며 況於鬼神乎여.
해는 중천(中天)에 있으면 기울고 달은 차면 먹히니, 천지(天地)의 성쇠(盛衰)도 때에 따라 진퇴(進退)하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며 하물며 귀신에 있어서랴.”
【傳】 旣言豊盛之至하고 復言其難常하여 以爲誡也라 日中盛極이면 則當昃昳이요 月旣盈滿이면 則有虧缺하나니 天地之盈虛도 尙與時消息이어든 況人與鬼神乎아 盈虛는 謂盛衰요 消息은 謂進退니 天地之運도 亦隨時進退也라 鬼神은 謂造化之迹이니 於萬物盛衰에 可見其消息也라 於豊盛之時而爲此誡는 欲其守中하여 不至過盛이니 處豊之道 豈易也哉리오.
이미 풍성(豊盛)의 지극함을 말하고 다시 그 항상하기 어려움을 말하여 경계한 것이다. 해는 중천(中天)에 있어 성함이 지극하면 마땅히 기울고, 달은 차면 이지러짐이 있으니, 천지(天地)의 영허(盈虛)도 오히려 때에 따라 소식(消息)하는데 하물며 사람과 귀신에게 있어서랴. 영허(盈虛)는 성쇠(盛衰)를 이르고 소식(消息)은 진퇴(進退)를 이르니, 천지(天地)의 운행(運行)도 때에 따라 진퇴(進退)한다. 귀신(鬼神)은 조화(造化)의 자취를 이르니, 만물(萬物)의 성쇠(盛衰)에서 사라지고 불어남을 볼 수 있다. 풍성(豊盛)한 때에 이러한 경계를 한 것은 중(中)을 지켜서 지나치게 성함에 이르지 않고자 함이니, 풍(豊)에 대처하는 도(道)가 어찌 쉽겠는가.
【本義】 此又發明卦辭外意하니 言不可過中也라.
이는 또 괘사(卦辭) 밖에 있는 뜻을 발명한 것이니, 중(中)을 넘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象曰 雷電皆至 豊이니 君子以하여 折獄致刑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우레와 번개가 모두 이름이 풍(豊)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옥사(獄事)를 결단(決斷)하고 형벌(刑罰)을 가(加)한다.”
【傳】 雷電皆至는 明震竝行也니 二體相合이라 故云皆至라 明動相資하여 成豊之象하니 離는 明也니 照察之象이요 震은 動也니 威斷之象이라 折獄者는 必照其情實이니 唯明克允이요 致刑者는 以威於[一作其]姦惡이니 唯斷乃成이라 故君子觀雷電明動之象하여 以折獄致刑也라 噬嗑에 言先王飭法하고 豊에 言君子折獄하니 以明在上而麗(리)於威震은 王者之事라 故爲制刑立法이요 以明在下而麗於威震은 君子之用이라 故爲折獄致刑이라 旅는 明在上而云君子者는 旅取愼用刑與不留獄이니 君子皆當然也라.
우레와 번개가 모두 이름은 밝음과 진동함이 병행하는 것이니, 두 체(體)가 서로 합했으므로 개지(皆至)라고 말한 것이다. 명(明)과 동(動)이 서로 자뢰(資賴)하여 풍(豊)의 상(象)을 이루었으니, 이(離)는 밝음이니 비추어 살피는 상(象)이요, 진(震)은 동함이니 위엄으로 결단(決斷)하는 상(象)이다. 옥사(獄事)를 결단(決斷)하는 이는 반드시 그 실정을 비추어야 하니, 오직 밝아야 믿을 수 있고 형(刑)을 가하는 이는 간악(姦惡)한 이에게 위엄을 보이는 것이니, 오직 결단하여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우레와 번개가 밝고 동하는 상(象)을 보아 옥사(獄事)를 결단하고 형(刑)을 가하는 것이다. 서합괘(噬嗑卦)에는 선왕(先王)이 법(法)을 삼감을 말하였고 풍괘(豊卦)에는 군자(君子)가 옥사(獄事)를 결단함을 말하였으니, 밝음으로 위에 있으면서 위진(威震)에 걸려 있음은 왕자(王者)의 일이므로 형벌(刑罰)을 만들고 법(法)을 세움이 되고, 밝음으로 아래에 있으면서 위진(威震)에 걸려 있음은 군자(君子)의 쓰임이므로 옥사(獄事)를 결단하고 형(刑)을 가(加)함이 된다. 여괘(旅卦)는 밝음이 위에 있는데도 군자(君子)라고 말한 것은 여(旅)는 형(刑)을 쓰기를 신중히 함과 옥사(獄事)를 지체하지 않음을 취한 것이니, 군자(君子)가 모두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다.
【本義】 取其威照並行之象이라.
위엄과 비춤이 병행(並行)하는 상(象)을 취한 것이다.
初九는 遇其配主호되 雖旬이나 无咎하니 往하면 有尙이리라.
초구(初九)는 배주(配主)를 만나되 비록 똑같은 양(陽)이나 허물이 없으니, 그대로 가면 가상(嘉尙)한 일이 있으리라.
【傳】 雷電皆至는 成豊之象이요 明動相資는 致豊之道라 非明이면 无以照요 非動이면 无以行[一作亨]이니 相須猶形影하고 相資猶表裏라 初[一无初字]九는 明之初요 九[一无九字]四는 動之初니 宜相須以成其用이라 故雖旬而相應이라 位則相應하고 用則相資라 故初謂四爲配主하니 己所配也라 配雖匹稱이나 然就之者也니 如配天以配君子라 故로 初於四云配요 四於初云夷也라 雖旬无咎는 旬은 均也니 天下之相應者는 常非均敵이니 如陰之應陽, 柔之從剛, 下之附上이니 敵則安肯相從이리오 唯豊之初四는 其用則相資하고 其應則相成이라 故雖均是陽剛이나 相從而无過咎也라 蓋非[一有剛字]明則動无所之요 非動則明无所用이니 相資而成用이라 同舟則胡越一心이요 共難則仇怨協力은 事勢使然也라 往而相從이면 則能成其豊이라 故云有尙하니 有可嘉尙也라 在他卦면 則不相下而離隙矣리라.
우레와 번개가 모두 이름은 풍(豊)을 이룬 상(象)이요, 명(明)과 동(動)이 서로 자뢰(資賴)함은 풍(豊)을 이루는 도(道)이다. 밝음이 아니면 비출 수 없고 동함이 아니면 행할 수 없으니, 서로 필요로 함이 형체(形體)와 그림자와 같고 서로 의뢰(依賴)함이 표리(表裏)와 같다. 초구(初九)는 밝음의 처음이고 구사(九四)는 동함의 처음이니, 마땅히 서로 필요로 하여 그 쓰임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비록 대등하나 서로 응(應)하는 것이다. 자리가 서로 응(應)하고 쓰임이 서로 의뢰(依賴)한다. 그러므로 초(初)가 사(四)를 일러 배주(配主)라 하였으니, 자기가 짝하는 것이다. 배(配)는 비록 짝을 칭하나 나아가는 이이니, 하늘에 짝하여 군자를 짝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초(初)는 사(四)에 대하여 배(配)라 이르고, 사(四)는 초(初)에 대하여 대등하다라 이른 것이다. ‘수순무구(雖旬无咎)’는 순(旬)은 균등함이니, 천하(天下)에 서로 응(應)하는 것은 항상 균적(均敵)이 아니다. 예컨대 음(陰)이 양(陽)에 응(應)하고 유(柔)가 강(剛)을 따르고 아래가 위에 붙는 것과 같으니, 균적(均敵)하다면 어찌 즐겨 서로 따르겠는가. 오직 풍괘(豊卦)의 초구(初九)와 구사(九四)는 그 쓰임이 서로 의뢰(依賴)하고 그 응(應)이 서로 이루어준다. 그러므로 비록 똑같이 양강(陽剛)이나 서로 따라 허물이 없는 것이다. 밝음이 아니면 동함이 갈 곳이 없고 동함이 아니면 밝음이 소용이 없으니, 서로 자뢰(資賴)하여 씀을 이룬다. 배를 함께 타면 북쪽에 있는 오랑캐와 남쪽에 있는 월(越)나라가 한 마음이 되고, 난리를 함께 하면 원수가 협력함은 사세(事勢)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가서 서로 따르면 풍성(豊盛)함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가상한 일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가상할 만한 일이 있는 것이다. 다른 괘(卦)에 있다면 서로 낮추지 못하여 헤어지고 틈이 있을 것이다.
【本義】 配主는 謂四요 旬은 均也니 謂皆陽也라 當豊之時하여 明動相資라 故初九之遇九四에 雖皆陽剛이나 而其占如此也라.
배주(配主)는 사(四)를 이르고 순(旬)은 균등함이니, 모두 양(陽)을 이른 것이다. 풍(豊)의 때를 당하여 명(明)과 동(動)이 서로 자뢰(資賴)하므로 초구(初九)가 구사(九四)를 만남에 비록 모두 양강(陽剛)이나 그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雖旬无咎니 過旬이면 災也리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비록 똑같은 양(陽)이나 허물이 없으니, 대등함을 지나면 재앙이 있으리라.”
【傳】 聖人은 因時而處宜하고 隨事而順理하나니 夫勢均則不相下者는 常理也나 然有雖敵而相資者는 則相求也니 初四是也니 所以雖旬而无咎也라 與人同而力均者는 在乎降己以相求하고 協力[一作心]以從事하니 若懷先[一作先懷]己之私하여 有加上之意하면 則患當至矣라 故曰過旬災也라 하니라 均而先己면 是過旬也니 一求勝이면 則不能同矣니라.
성인(聖人)은 때에 따라 마땅하게 대처하고 일에 따라 이치를 따르니, 세(勢)가 균등하면 서로 낮추지 못하는 것이 떳떳한 이치이나 비록 대등하더라도 서로 의뢰(依賴)할 경우에는 서로 구함이 있으니, 초구(初九)와 구사(九四)가 이것이니, 이 때문에 비록 대등하더라도 허물이 없는 것이다. 남과 함께 일하면서 힘이 균등한 경우에는 자기 몸을 낮추어 서로 구하고 협력하여 종사(從事)함에 있으니, 만약 자신을 먼저 하려는 사사로운 마음을 품어서 올라타려는 뜻이 있으면 환난(患難)이 마땅히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대등함을 지나면 재앙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대등하면서 자신을 먼저 하면 이는 과순(過旬)이니, 한번이라도 이기기를 구하면 함께 하지 못할 것이다.
【本義】 戒占者不可求勝其配하니 亦爻辭外意라.
점치는 이에게 짝을 이기기를 구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니, 이 또한 효사(爻辭) 밖에 있는 뜻이다.
六二는 豊其篰라 日中見斗니 往하면 得疑疾하리니 有孚發若하면 吉하리라.
육이(六二)는 떼적을 많이 하였다. 대낮에도 북두성을 보니, 가면 의심과 미움을 얻으리니, 정성을 두어 감발(感發)하면 길(吉)하리라.
【傳】 明動相資라야 乃能成豊이라 二爲明之主요 又得中正하니 可謂明者也로되 而五在正應之地하여 陰柔不正하니 非能動者라 二五雖皆陰이나 而在明動相資之時하고 居相應之地하여 五[一作乃]才不足[一有耳字]하니 旣其應之才[一无才字] 不足資면 則獨明不能成豊이요 旣不能成豊이면 則喪其明功이라 故로 爲豊其篰라 日中見斗는 二는 至明之才로되 以所應이 不足與하여 而不能成其豊하여 喪其明功하니 无明功이면 則爲昏暗이라 故云見斗라 하니 斗는 昏見者也라 篰는 周匝之義니 用障蔽之物하여 掩晦於明者也라 斗는 屬陰而主運平하니 象五以陰柔而當君位라 日中盛明之時에 乃見斗는 猶豊大之時에 乃[一作而]遇柔弱之主라 斗以昏見하니 言見斗면 則是明喪[一作喪明]而暗矣라 二雖至明中正之才나 所遇乃柔暗不正之君이라 旣不能下求於己하니 若往求之면 則反得疑猜忌疾하리니 暗主如是也라 然則如之何而可오 夫君子之事上也에 不得其心이면 則盡其至誠하여 以感發其志意而已라 苟誠意能動이면 則雖昏蒙可開也요 雖柔弱可輔也요 雖不正可正也라 古人之事庸君常主而克行其道者는 己之誠意[一无意字]上達하여 而君見信之篤耳니 管仲之相桓公과 孔明之輔後主是也라 若能以誠信으로 發其志意하면 則得行其道하리니 乃爲吉也라.
명(明)과 동(動)이 서로 자뢰(資賴)하여야 풍(豊)을 이룰 수 있다. 이(二)는 밝음의 주체이고 또 중정(中正)을 얻었으니, 밝은 이라고 이를 만하나 오(五)가 정응(正應)의 자리에 있어 음유(陰柔)로 바르지 못하니, 동(動)할 수 있는 이가 아니다. 이효(二爻)와 오효(五爻)가 비록 모두 음(陰)이나 명(明)과 동(動)이 서로 자뢰하는 때에 있고 서로 응(應)하는 처지에 있는데 오(五)의 재주가 부족하니, 이미 응(應)의 재주가 의뢰할 수 없다면 홀로 밝음은 풍(豊)을 이루지 못하고, 이미 풍(豊)을 이루지 못하면 밝은 공(功)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떼적을 많이 함이 되는 것이다. 대낮에 북두성을 본다는 것은 이(二)는 지극히 밝은 재주이나 응하는 바가 더불 수 없어서 풍(豊)을 이루지 못하여 밝은 공(功)을 상실하였으니, 밝은 공(功)이 없으면 혼암(昏暗)이 된다. 그러므로 북두성을 본다고 말하였으니, 두(斗)는 어두울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 부(篰)는 두루 가리는 뜻이니, 장폐(障蔽)하는 물건을 사용하여 밝음을 가리워 어둡게 하는 것이다. 두(斗)는 음(陰)에 속하고 운행하여 사시(四時)를 고르게 함을 주장하니, 오(五)가 음유(陰柔)로서 군주(君主)의 지위에 당함을 형상하였다. 해가 중천에 있어 성하게 밝은 때에 북두성을 봄은 마치 풍대(豊大)한 때에 유약한 군주(君主)를 만남과 같은 것이다. 북두성은 어두울 때에 나타나니, 북두성을 본다고 말했으면 밝음을 상실하여 어두워진 것이다. 이(二)가 비록 지극히 밝고 중정(中正)한 재질이나 만난 바가 바로 유암(柔暗)하고 바르지 못한 군주(君主)라서 이미 아래로 자기를 구하지 못하니, 만일 가서 구하면 도리어 의심과 시기와 미움을 얻으리니, 혼암(昏暗)한 군주(君主)는 이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하여야 하는가? 군자(君子)가 윗사람을 섬길 때에 그 마음을 얻지 못하면 지성(至誠)을 다하여 윗사람의 의지(意志)를 감발(感發)시킬 뿐이다. 진실로 성의(誠意)로 감동시킨다면 비록 혼몽(昏蒙)하더라도 깨우칠 수 있고 비록 유약(柔弱)하더라도 보필할 수 있고 비록 바르지 않더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 고인(古人) 중에 용렬한 군주(君主)와 보통의 군주(君主)를 섬기면서도 능히 그 도를 행한 이는 자신의 성의(誠意)가 위에 도달되어 군주(君主)가 신임하기를 돈독히 했기 때문이니, 관중(管仲)이 환공(桓公)을 도운 것과 공명(孔明)이 후주(後主)를 보필(輔弼)함이 이것이다. 만일 성신(誠信)으로써 군주(君主)의 의지(意志)를 감발(感發)시킨다면 도(道)를 행할 수 있을 것이니, 바로 길(吉)함이 되는 것이다.
【本義】 六二居豊之時하여 爲離之主하니 至明者也로되 而上應六五之柔暗이라 故爲豊篰見斗之象이라 篰는 障蔽也니 大其障蔽라 故日中而昏也라 往而從之하면 則昏暗之主必反見疑하리니 唯在積其誠意하여 以感發之則吉이니 戒占者宜如是也라 虛中은 有孚之象이라.
육이(六二)가 풍(豊)의 때에 거하여 이(離)의 주체가 되었으니, 지극히 밝은 이이나 위로 육오(六五)의 유암(柔暗)과 응(應)한다. 그러므로 떼적을 많이 하여 북두성을 보는 상(象)이 된 것이다. 부(篰)는 막고 가리움이니, 막고 가리움을 크게 하기 때문에 대낮에도 어두운 것이다. 가서 따르면 혼암(昏暗)한 군주(君主)가 반드시 도리어 의심할 것이니, 오직 성의(誠意)를 쌓아 감발(感發)시키면 길(吉)하니,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허중(虛中)은 유부(有孚)의 상(象)이다.
象曰 有孚發若은 信以發志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정성을 두어 감발(感發)함은 성의(誠意)로 뜻을 감발(感發)시키는 것이다.”
【傳】 有孚發若은 謂以己之孚信으로 感發上之心志也라 苟能發이면 則其吉可知니 雖柔[一作昏]暗이나 有可發之道也라.
‘유부발약(有孚發若)’은 자신의 부신(孚信)으로 윗사람의 심지(心志)를 감발(感發)시킴을 이른다. 만일 감발(感發)시킬 수 있으면 그 길(吉)함을 알 수 있으니, 비록 유암(柔暗)하나 감발(感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九三은 豊其沛(旆)라 日中見沬요 折其右肱이니 无咎니라.
구삼(九三)은 휘장을 많이 하였다. 대낮에도 작은 별을 보고 오른팔이 부러졌으니, 허물할 데가 없다.
【本義】 折其右肱이나.
【본의】 그 오른팔이 부러졌으나 허물이 아니다.
【傳】 沛字는 古本에 有作旆字者하며 王弼以爲幡幔이라 하니 則是旆也라 幡幔은 圍蔽於內者니 豊其沛면 其暗이 更甚於篰也라 三은 明體而反暗於四者는 所應이 陰暗故也라 三은 居明體之上하고 陽剛得正하니 本能明者也로되 豊之道必明動相資而成이어늘 三應於上하니 上은 陰柔요 又无位而處震之終하니 旣終則止矣니 不能動者也라 他卦는 至終則極이나 震은 至終則止矣라 三이 无上之應이면 則不能成豊이라 沬는 星之微小无名數者니[一有是字] 見沬는 暗之甚也라 豊之時而遇上六은 日中而見沬者也라 右肱은 人之所用이어늘 乃折矣면 其无能爲를 可知라 賢智之才 遇明君이면 則能有爲於天下어늘 上无可賴之主하면 則不能有爲하니 如人之折其右肱也라 人之爲 有所失이면 則有所歸咎하여 曰 由是故로 致是라 하나니 若欲動而無右肱하고 欲爲而上无所賴면 則不能而已니 更復何言이리오 无所歸咎也라
패자(沛字)는 고본(古本)에 패자(旆字)로 쓴 것이 있으며, 왕필(王弼)은 휘장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패(旆)인 것이다. 번만(幡幔)은 안을 에워싸 가리는 것이니, 휘장을 많이 한다면 그 어두움이 떼적보다도 더 심한 것이다. 삼(三)은 밝은 체(體)인데 도리어 사(四)보다 어두운 것은 응(應)한 바가 음암(陰暗)이기 때문이다. 삼(三)은 명체(明體)의 위에 거하고 양강(陽剛)으로 정(正)을 얻었으니, 본래는 밝은 것이나 풍(豊)의 도(道)는 반드시 명(明)과 동(動)이 서로 자뢰하여 이루어지는데, 삼(三)이 상육(上六)과 응(應)하니, 상육(上六)은 음유(陰柔)이고 또 지위가 없으면서 진(震)의 종(終)에 처했으니, 이미 종(終)이 되면 멈추니 동(動)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괘(卦)는 종(終)에 이르면 극(極)이 되나 진(震)은 종(終)에 이르면 멈춘다. 삼(三)은 상(上)의 응(應)이 없으면 풍(豊)을 이루지 못한다. 매(沬)는 별이 작아 이름이 없고 수(數)에 들지 않는 것이니, 매(沬)를 봄은 어둠이 심한 것이다. 풍(豊)의 때에 상육(上六)을 만남은 대낮에 작은 별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오른팔은 사람이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이 부러졌다면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어질고 지혜로운 재주가 명군(明君)을 만나면 천하(天下)에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데 위에 의뢰(依賴)할 만한 군주(君主)가 없으면 훌륭한 일을 할 수 없으니, 이는 마치 사람이 오른팔이 부러짐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잘못이 있으면 허물을 돌릴 곳이 있어 말하기를 “이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만일 동(動)하고자 하나 오른팔이 없고 하고자 하나 위에 의뢰(依賴)할 바가 없다면 능하지 못할 뿐이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허물을 돌릴 곳이 없는 것이다.
【本義】 沛는 一作旆하니 謂幡幔也니 其蔽甚於篰矣라 沬는 小星也라 三處明極而應上六하여 雖不可用而非咎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패(沛)는 일본(一本)에는 패(旆)로 되어 있으니, 번만(幡幔)을 이르니, 그 가림이 떼적보다도 심하다. 매(沬)는 작은 별이다. 삼(三)은 밝음의 극에 처했는데 상육(上六)과 응(應)하여 비록 쓸 수 없으나 그의 허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豊其沛라 不可大事也요 折其右肱이라 終不可用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휘장을 많이 하였으니 큰 일을 할 수 없고, 오른팔이 부러졌으니 끝내 쓸 수 없는 것이다.”
【傳】 三應於上이어늘 上(應)[陰]而无位하니 陰柔无勢力而處旣終이면 其可共濟大事乎아 旣无所賴하니 如右肱之折하여 終不可用矣라.
삼(三)은 상(上)에 응(應)하는데 상(上)이 음(陰)으로 지위가 없으니, 음유(陰柔)로 세력이 없고 이미 종(終)에 처했으면 함께 대사(大事)를 이룰 수 있겠는가. 이미 의뢰(依賴)할 바가 없으니, 오른팔이 부러진 것과 같아 끝내 쓸 수 없는 것이다.
九四는 豊其篰라 日中見斗니 遇其夷主하면 吉하리라.
구사(九四)는 떼적을 많이 하여 대낮에도 북두성을 보니, 대등한 상대를 만나면 길(吉)하리라.
【傳】 四雖陽剛으로 爲動之主하고 又得大臣之位나 然以不中正으로 遇陰暗柔弱之主하니 豈能致豊大也리오 故爲豊其篰라 篰는 周圍掩蔽之物이니 周圍則不大요 掩蔽則不明이라 日中見斗는 當盛明之時하여 反昏暗也라 夷主는 其等夷也니 相應故로 謂之主라 初四皆陽而居初하니 是其德同이요 又居相應之地라 故爲夷主라 居大臣之位而得[一作德又有同字]在下之賢하여 同德相輔면 其助豈小也哉아 故吉也라 如四之才로 得在下之賢하여 爲之助면 則能致豊大乎아 曰 在下者上有當位爲之與하고 在上者下有賢才爲之助면 豈无益乎아 故吉也라 然而致天下之豊은 有君而後能也니 五는 陰柔居尊而震體라 无虛中巽順下賢之象하니 下雖多賢이나 亦將何爲리오 蓋非陽剛中正이면 不能致天下之豊也라.
사(四)가 비록 양강(陽剛)으로 동(動)의 주체가 되고 또 대신(大臣)의 지위를 얻었으나 중정(中正)하지 못한 이로서 음암(陰暗)하고 유약(柔弱)한 군주(君主)를 만났으니, 어찌 풍대(豊大)를 이루겠는가. 그러므로 떼적을 많이 함이 된 것이다. 부(篰)는 두루 싸매어 엄폐(掩蔽)하는 물건이니, 두루 싸매면 크지 못하고 엄폐(掩蔽)하면 밝지 못하다. 대낮에 북두성을 본다는 것은 성(盛)하게 밝은 때를 당하여 도리어 어두운 것이다. 이주(夷主)는 대등한 상대이니, 서로 응(應)하기 때문에 주(主)라고 이른 것이다. 초(初)와 사(四)는 모두 양(陽)으로 초(初)에 거했으니 이는 그 덕(德)이 같은 것이요, 또 서로 응(應)하는 자리에 처했으므로 이주(夷主)라 한 것이다. 대신(大臣)의 지위에 거하여 아래에 있는 현자(賢者)를 얻어서 덕(德)을 함께 하여 서로 돕는다면 그 도움이 어찌 작겠는가. 그러므로 길(吉)한 것이다. 사(四)와 같은 재질로 아래에 있는 현자(賢者)를 얻어서 도와준다면 풍대(豊大)함을 이룰 수 있겠는가? 아래에 있는 이는 위에서 지위를 담당한 이가 위하여 더붊이 있고, 위에 있는 이는 아래에서 현재(賢才)가 도와줌이 있다면 어찌 유익함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길(吉)한 것이다. 그러나 천하(天下)의 풍성(豊盛)함을 이룸은 군주(君主)가 있은 뒤에야 가능하니, 오(五)는 음유(陰柔)로 존위(尊位)에 거하고 진(震)의 체(體)라서 마음을 비우고 손순(巽順)하여 현자(賢者)에게 낮추는 상(象)이 없으니, 아래에 비록 현자(賢者)가 많으나 역시 장차 무슨 일을 하겠는가. 양강중정(陽剛中正)이 아니면 천하(天下)의 풍성(豊盛)함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本義】 象與六二同이라 夷는 等夷也니 謂初九也라 其占은 爲當豊而遇暗主하니 下就同德則吉也라.
상(象)이 육이(六二)와 같다. 이(夷)는 등이(等夷)이니, 초구(初九)를 이른다. 그 점(占)은 풍(豊)을 당하여 혼암(昏暗)한 군주(君主)를 만났으니, 아래로 덕(德)이 같은 이에게 나아가면 길(吉)하다.
象曰 豊其篰는 位不當也일새요.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떼적을 많이 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요,
【傳】 位不當은 謂以不中正居高位니 所[一作非]以闇而不能致豊[一有乎字]이라.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는 것은 중정(中正)하지 못함으로 고위(高位)에 거함을 이르니, 이 때문에 어두워 풍성(豊盛)함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日中見斗는 幽不明也일새요,
대낮에 북두성을 봄은 어두워 밝지 못하기 때문이요,
【傳】 謂幽暗不能光明하니 君陰柔而臣不中正故也라.
어두워서 광명(光明)하지 못함을 이르니, 군주(君主)는 음유(陰柔)하고 신하(臣下)는 중정(中正)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遇其夷主는 吉行也라.
이주(夷主)를 만남은 길(吉)한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傳】 陽剛相遇는 吉之行也라 下就於初라 故云行하니 下求則爲吉也라.
양강(陽剛)이 서로 만남은 길(吉)한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래로 초(初)에게 나아가기 때문에 행(行)이라고 말했으니, 아래로 구하면 길(吉)하다.
六五는 來章이면 有慶譽하여 吉하리라.
육오(六五)는 아름다움을 오게 하면 경예(慶譽)가 있어 길(吉)하리라.
【傳】 五以陰柔之才로 爲豊之主하니 固不能成其豊大나 若能來致在下章美之才而用之면 則有福慶이요 復(부)得美譽리니 所謂吉也라 六二文明中正하니 章美之才也라 爲五者誠能致之在位而委任之면 可以致豊大之慶, 名譽之美라 故吉也라 章美之才는 主二而言이나 然初與三四皆陽剛之才니 五能用賢則彙征矣리라 二雖陰이나 有文明中正之德하니 大賢之在下者也라 五與二 雖非陰陽正應이나 在明動相資之時하여 有相爲用之義하니 五若能來章이면 則有慶譽而吉也라 然六五无虛己下賢之義하니 聖人이 設此義以爲敎耳시니라.
오(五)가 음유(陰柔)의 재주로 풍(豊)의 주체가 되었으니, 진실로 풍대(豊大)함을 이루지 못하나 만일 아래에 있는 아름다운 재주를 오게 하여 등용하면 복(福)과 경사가 있고 또 아름다운 명예(名譽)를 얻을 것이니, 이른바 길(吉)하다는 것이다. 육이(六二)는 문명(文明)하고 중정(中正)하니, 아름다운 재주이다. 오(五)가 된 자가 진실로 어진 이를 데려다가 지위에 있게 하고 위임하면 풍대(豊大)한 경사(慶事)와 명예(名譽)의 아름다움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길(吉)한 것이다. 장미(章美)의 재주는 이(二)를 주장하여 말했으나 초(初)와 삼효(三爻)·사효(四爻)가 모두 양강(陽剛)의 재주이니, 오(五)가 어진이를 등용하면 떼지어 나올 것이다. 이(二)는 비록 음(陰)이나 문명중정(文明中正)의 덕(德)이 있으니, 대현(大賢)으로 아래에 있는 이이다. 오(五)와 이(二)는 비록 음양(陰陽)의 정응(正應)이 아니나 명(明)과 동(動)이 서로 자뢰하는 때에 있어 서로 쓰임이 되는 뜻이 있으니, 오(五)가 만약 아름다움을 오게 하면 경예(慶譽)가 있어 길(吉)할 것이다. 그러나 육오(六五)가 자신을 겸허하게 하여 어진 이에 낮추는 뜻이 없으니, 성인(聖人)이 이 뜻을 가설하여 가르침을 삼으셨을 뿐이다.
【本義】 質雖柔暗이나 若能來致天下之明이면 則有慶譽而吉矣라 蓋因其柔暗而設此以開之하니 占者能如是면 則如其占矣리라.
질(質)이 비록 유암(柔暗)이나 만일 천하(天下)의 밝은 이를 오게 하면 경예(慶譽)가 있어 길(吉)할 것이다. 유암(柔暗)으로 인하여 이것을 가설해서 열어 놓으셨으니,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이 점(占)과 같으리라.
象曰 六五之吉은 有慶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육오(六五)의 길(吉)함은 경사(慶事)가 있는 것이다.”
【傳】 其所謂吉者는 可以有慶福及于天下也라 人君雖柔暗이나 若能用賢才면 則可以爲天下之福이니 唯患不能耳라.
이른바 길(吉)하다는 것은 경복(慶福)이 천하(天下)에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인군(人君)이 비록 유약하고 어두우나 만일 현재(賢才)를 등용하면 천하(天下)의 복이 될 수 있으니, 오직 능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上六은 豊其屋하고 篰其家라 闚其戶하니 闃其无人하여 三歲라도 不覿이로소니 凶하니라.
상육(上六)은 집을 크게 짓고 집에 떼적을 쳐놓았다. 그 문을 엿보니, 조용하여 사람이 없어서 3년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하니, 흉하다.
【傳】 六以陰柔之質로 而居豊之極하고 處動之終하니 其滿假躁動이 甚矣라 處豊大之時하여는 宜乎謙屈이어늘 而處極高하고 致豊大之功은 在乎剛健이어늘 而體陰柔하고 當豊大之任은 在乎得時어늘 而不當位하니 如上[一无上字]六者는 處无一當하니 其凶可知라 豊其屋은 處太高也요 篰其家는 居不明也라 以陰柔로 居豊大而在无位之地하니 乃高亢昏暗하여 自絶於人이니 人誰與之리오 故로 闚其戶, 闃其无人也라 至於三歲之久而不知變하니 其凶宜矣라 不覿은 謂尙不見人이니 蓋不變也라 六居卦終하여 有變之義어늘 而不能遷하니 是其才不能也라.
육(六)이 음유(陰柔)의 재질로 풍(豊)의 극(極)에 거하고 동(動)의 종(終)에 처했으니, 자만하고 큰 체하며 조급히 동(動)함이 심하다. 풍대(豊大)한 때에 처해서는 마땅히 겸손하고 굽혀야 하는데 처함이 지극히 높고, 풍대(豊大)한 공(功)을 이룸은 강건(剛健)함에 달려 있는데 체(體)가 음유(陰柔)이고, 풍대(豊大)한 임무를 감당함은 때를 얻음에 달려 있는데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니, 상육(上六)과 같은 이는 처지가 하나도 마땅함이 없는 것이니, 흉함을 알 수 있다. 집을 크게 지었다는 것은 너무 높음에 처한 것이요, 집에 떼적을 쳤다는 것은 밝지 못함에 거한 것이다. 음유(陰柔)로서 풍대(豊大)에 거하고 지위가 없는 자리에 있으니, 이는 바로 고항(高亢)하고 혼암(昏暗)하여 스스로 남과 끊는 것이니, 사람이 누가 그와 친하겠는가. 그러므로 그 문을 엿봄에 조용하여 사람이 없는 것이다. 3년의 오램에 이르도록 변할 줄을 모르니, 그 흉함이 당연하다. 만나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도 사람을 만나지 못함을 이르니, 변하지 않은 것이다. 육(六)이 괘(卦)의 마지막에 거하여 변할 뜻이 있으나, 능히 옮기지 못하니, 이는 재질이 능하지 못한 것이다.
【本義】 以陰柔로 居豊極하고 處動終하니 明極而反暗者也라 故爲豊大其屋而反以自蔽之象이라 无人不覿은 亦言障蔽之深이니 其凶甚矣라.
음유(陰柔)로서 풍(豊)의 극(極)에 거하고 동(動)의 종(終)에 처했으니, 밝음이 지극하여 도리어 어두운 이이다. 그러므로 집을 풍대(豊大)하게 하고 도리어 스스로 가리우는 상(象)이 된다. 사람이 없어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또한 장폐(障蔽)가 깊음을 말한 것이니, 그 흉함이 심하다.
象曰 豊其屋은 天際翔也요 闚其戶 闃其无人은 自藏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집을 크게 지음은 하늘 가에서 비상(飛翔)함이요, 그 문을 엿봄에 조용하여 사람이 없음은 스스로 감추는 것이다.”
【傳】 六이 處豊大之極하여 在上而自高하여 若飛翔於天際하니 謂其高大之甚이라 闚其戶而无人者는 雖居豊大之極이나 而實无位之地니 人以其昏暗自高大라 故皆棄絶之하여 自藏避而弗與親也라.
육(六)이 풍대(豊大)의 극(極)에 처하여 위에 있으면서 스스로 높은 체하여 하늘 가에서 비상(飛翔)하는 듯하니, 고대(高大)함이 심함을 이른 것이다. 그 문을 엿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비록 풍대(豊大)의 극(極)에 거했으나 실제는 지위가 없는 자리이니, 사람이 혼암(昏暗)하면서 스스로 높은 체하고 큰 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버리고 끊어서 스스로 감추고 피하여 더불어 친하지 않은 것이다.
【本義】 藏은 謂障蔽라.
장(藏)은 장폐(障蔽)[가리움]를 이른다.

55. 풍(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