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손(巽)
【傳】 巽은 序卦에 旅而无所容이라 故受之以巽하니 巽者는 入也라 하니라 覊旅親寡에 非巽順이면 何所取容이리오 苟能巽順이면 雖旅困之中이라도 何往而不能入이리오 巽所以次旅也라 爲卦 一陰이 在二陽之下하여 巽順於陽하니 所以爲巽也라.
손괘(巽卦)는 〈서괘전(序卦傳)〉에 “나그네가 되어 용납될 곳이 없으므로 손괘(巽卦)로 받았으니, 손(巽)은 들어감이다.” 하였다. 나그네가 되어 친한 사람이 적을 때에 손순(巽順)이 아니면 어찌 용납될 수 있겠는가. 만일 손순(巽順)하면 비록 나그네로 곤궁한 가운데라도 어디를 간들 들어가지 못하겠는가. 손괘(巽卦)가 이 때문에 여괘(旅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됨이 하나의 음(陰)이 두 양(陽)의 아래에 있어 양(陽)에게 손순(巽順)하니, 손(巽)이 되는 것이다.
巽은 小亨하니 利有攸往하며 利見大人하니라.
손(巽)은 조금 형통(亨通)하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우며 대인(大人)을 봄이 이롭다.
【傳】 卦之才可以小亨하니 利有攸往이요 利見大人也라 巽與兌는 皆剛中正이요 巽說[一作兌] 이 義亦相類로되 而兌則亨이어늘 巽乃小亨者는 兌는 陽之爲也요 巽은 陰之爲也며 兌는 柔在外하니 用柔也요 巽은 柔在內하니 性柔也니 巽之亨이 所以小也라.
괘(卦)의 재질이 조금 형통(亨通)할 수 있으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고 대인(大人)을 봄이 이로운 것이다. 손(巽)과 태(兌)는 모두 강(剛)이 중정(中正)하고 공손(恭巽)함과 기뻐함은 뜻이 또한 서로 유사하나, 태(兌)는 형통(亨通)한데 손(巽)은 마침내 조금 형통(亨通)한 것은 태(兌)는 양(陽)이 하고 손(巽)은 음(陰)이 하며, 태(兌)는 유(柔)가 밖에 있으니 유순함을 쓰는 것이고 손(巽)은 유(柔)가 안에 있으니 성질이 유약함이니, 손(巽)의 형통(亨通)함이 이 때문에 작은 것이다.
【本義】 巽은 入也라 一陰이 伏於二陽之下하니 其性이 能巽以入也요 其象이 爲風하니 亦取入義라 陰爲主라 故其占爲小亨이요 以陰從陽이라 故又利有所往이라 然必知所從이라야 乃得其正이라 故又曰 利見大人也라 하니라.
손(巽)은 들어감이다. 한 음(陰)이 두 양(陽)의 아래에 엎드려 있으니 성질이 공손(恭巽)하여 들어감이요, 상(象)은 바람이 되니 또한 들어가는 뜻을 취한 것이다. 음(陰)이 주체가 되기 때문에 그 점(占)이 조금 형통(亨通)함이 되고, 음(陰)으로 양(陽)을 따르기 때문에 또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운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따를 바를 알아야 바름을 얻기 때문에 또 ‘대인(大人)을 봄이 이롭다’고 한 것이다.
彖曰 重巽으로 以申命하나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거듭된 손(巽)으로 명령(命令)을 거듭하니,
【傳】 重巽者는 上下皆巽也라 上順道以出命하고 下奉命而順從하여 上下皆順하니 重巽之象也요 又重爲重複之義라 君子體重巽之義하여 以申復其命令하나니 申은 重復也니 丁寧之謂也라.
중손(重巽)은 위아래가 모두 손(巽)인 것이다. 위는 도(道)를 순히 하여 명령을 내고 아래는 명령을 받들어 순종하여 상하(上下)가 모두 순하니, 거듭 손순(巽順)한 상(象)이요 또 중(重)은 중복의 뜻이 된다. 군자(君子)가 중손(重巽)의 뜻을 체행(體行)하여 명령을 거듭하고 반복하니, 신(申)은 중복함이니, 정녕(丁寧)함을 이른다.
【本義】 釋卦義也라 巽順而入하여 必究乎下는 命令之象이라 重巽故로 爲申命也라.
괘(卦)의 뜻을 해석하였다. 손순(巽順)하여 들어가서 반드시 아래에 이름은 명령의 상(象)이다. 거듭된 손(巽)이므로 명령을 거듭함이 되는 것이다.
剛이 巽乎中正而志行하며 柔皆順乎剛이라 是以小亨하니,
강(剛)이 중정(中正)에 손순(巽順)하고 뜻이 행해지며, 유(柔)가 모두 강(剛)에게 순종한다. 이 때문에 조금 형통(亨通)하니,
【傳】 以卦才言也라 陽剛居巽而得中正하니 巽順於中正之道也요 陽性上하니 其志在以中正之道上行也라 又上下之柔가 皆巽順於剛하니 其才如是라 雖內柔나 可以小亨也라.
괘(卦)의 재질로 말하였다. 양강(陽剛)이 손(巽)에 거하고 중정(中正)을 얻었으니 중정(中正)의 도(道)에 손순(巽順)한 것이요, 양(陽)의 성질은 위로 올라가니 그 뜻이 중정(中正)한 도(道)로써 위로 행함에 있는 것이다. 또 상하(上下)의 유(柔)가 다 강(剛)에게 손순(巽順)하니, 그 재질이 이와 같으므로, 비록 안이 유약하나 조금 형통(亨通)할 수 있는 것이다.
利有攸往하며 利見大人하니라.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우며 대인(大人)을 봄이 이롭다.”
【傳】 巽順之道는 无往不能入이라 故利有攸往이라 巽順이 雖善道나 必知所從이니 能巽順於陽剛中正之大人이면 則爲利라 故利見大人也라 如五二之陽剛中正은 大人也니 巽順을 不於大人이면 未必不爲過也라.
손순(巽順)의 도(道)는 가는 곳마다 들어가지 못함이 없으므로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운 것이다. 손순(巽順)함이 비록 좋은 도(道)이나 반드시 따를 바를 알아야 하니, 양강중정(陽剛中正)한 대인(大人)에게 손순(巽順)하면 이롭다. 그러므로 대인(大人)을 봄이 이로운 것이다. 오이(五二)와 같은 양강중정(陽剛中正)은 대인(大人)이니, 손순(巽順)함을 대인(大人)에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허물이 되지 않지는 않을 것이다.
【本義】 以卦體로 釋卦辭라 剛巽乎中正而志行은 指九五요 柔는 謂初四라.
괘체(卦體)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강(剛)이 중정(中正)에게 손순(巽順)하여 뜻이 행해짐은 구오(九五)를 가리킨 것이요, 유(柔)는 초(初)와 사(四)를 이른다.
象曰 隨風이 巽이니 君子以하여 申命行事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따르는 바람이 손(巽)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명령을 거듭하고 정사(政事)를 행한다.”
【傳】 兩風相重[一作從]은 隨風也니 隨는 相繼之義라 君子觀重巽相繼以順之象하여 而以申命令하고 行政事하나니라 隨與重은 上下皆順也라 上順下而出之하고 下順上而從之하여 上下皆順은 重巽之義也라 命令政事順理면 則合民心而民順從矣리라.
두 바람이 서로 거듭함은 따르는 바람이니, 수(隨)는 서로 잇는 뜻이다. 군자(君子)가 중손(重巽)이 서로 이어 순종하는 상(象)을 보고서 명령을 거듭하고 정사(政事)를 행한다. 따름과 거듭함은 상하(上下)가 모두 순한 것이다. 위는 아래를 순히 하여 명령을 내고 아래는 위를 순히 하여 따라서 상하(上下)가 모두 순함은 중손(重巽)의 뜻이다. 명령과 정사(政事)가 이치에 순하면 민심(民心)에 합(合)하여 백성들이 순종할 것이다.
【本義】 隨는 相繼之義라.
수(隨)는 서로 잇는 뜻이다.
初六은 進退니 利武人之貞이니라.
초육(初六)은 나아가고 물러감이니, 무인(武人)의 정(貞)함이 이롭다.
【傳】 六以陰柔로 居卑巽而不中하고 處最下而承剛하니 過於卑巽者也라 陰柔之人이 卑巽太過하면 則志意恐畏而不安하여 或進或退하여 不知所從하나니 其所利在武人之貞이라 若能用武人剛貞之志하면 則爲宜也니 勉爲剛貞이면 則无過卑恐畏之失矣리라.
육(六)이 음유(陰柔)로 비손(卑巽)에 거하고 중(中)하지 못하며 가장 낮은 곳에 처하고 강(剛)을 받들고 있으니, 지나치게 비손(卑巽)한 이이다. 음유(陰柔)의 사람이 비손(卑巽)함이 너무 지나치면 마음에 두려워하여 편안하지 못해서 혹 나아가고 혹 물러가 따를 바를 모르니, 이로운 바가 무인(武人)의 정(貞)함에 있다. 만일 무인(武人)의 강(剛)하고 정고(貞固)한 뜻을 쓴다면 마땅함이 되니, 힘써서 강함과 정고함을 행하면 지나치게 낮추어 두려워하는 잘못이 없을 것이다.
【本義】 初以陰居下하여 爲巽之主하니 卑巽之過라 故爲進退不果之象이라 若以武人之貞處之면 則有以濟其所不及而得所宜矣리라.
초(初)가 음(陰)으로서 아래에 거하여 손(巽)의 주체가 되었으니, 비손(卑巽)함이 지나치다. 그러므로 진퇴(進退)를 과감히 하지 못하는 상(象)이 된 것이다. 만약 무인(武人)의 정고(貞固)함으로 이에 처하면 미치지 못하는 바를 구제함이 있어 마땅한 바를 얻을 것이다.
象曰 進退는 志疑也요 利武人之貞은 志治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나아가고 물러감은 마음에 의심하기 때문이요, 무인(武人)의 정(貞)함이 이로움은 뜻이 다스려진 것이다.”
【傳】 進退不知所安者는 其志疑懼也니 利用武人之剛貞以立其志하면 則其志治也라 治는 謂修立也라.
나아가고 물러가서 편안함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의심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무인(武人)의 강함과 정고함을 써서 그 뜻을 세운다면 뜻이 다스려질 것이다. 치(治)는 닦고 세움을 이른다.
九二는 巽在牀下니 用史巫紛若하면 吉하고 无咎리라.
구이(九二)는 공손(恭巽)함이 상(牀) 아래에 있으니, 사관(史官)과 무당을 쓰기를 많이 하면 길(吉)하고 허물이 없으리라.
【傳】 二居巽時하여 以陽處陰而在下하니 過於巽者也라 牀은 人之所安이니 巽在牀下하면 是過於巽이니 過所安矣라 人之過於卑巽은 非恐怯則諂說(열)이니 皆非正也라 二實剛中이니 雖巽體而居柔하여 爲過於巽이나 非有邪心也라 恭巽之過는 雖非正禮나 可以遠恥辱, 絶怨咎니 亦吉道也라 史巫者는 通誠意於神明者也요 紛若은 多也라 苟至誠安於謙巽하여 能使通其誠意者多하면 則吉而无咎하리니 謂其誠足以動人也라 人不察其誠意면 則以過巽爲諂矣리라.
이(二)가 손(巽)의 때에 거하여 양(陽)으로서 음위(陰位)에 처하고 아래에 있으니, 손순(巽順)함을 지나치게 하는 것이다. 상(牀)은 사람이 편안히 여기는 곳이니, 공손(恭巽)함이 상(牀) 아래에 있다면 공손(恭巽)함이 지나친 것이니, 편안한 바를 넘은 것이다. 사람이 비손(卑巽)함을 지나치게 하는 것은 두려워함이 아니면 아첨하여 기쁘게 하는 것이니, 모두 정도(正道)가 아니다. 이(二)는 실로 강중(剛中)이니, 비록 손체(巽體)로서 유(柔)에 거하여 비손(卑巽)함을 지나치게 함이 되나 사심(邪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치게 공손(恭巽)함은 비록 정례(正禮)가 아니나 치욕(恥辱)을 멀리하고 원망(怨望)과 허물을 끊을 수 있으니, 또한 길(吉)한 방도이다. 사무(史巫)는 성의(誠意)를 신명(神明)에게 통하는 이이며, 분약(紛若)은 많음이다. 만일 지성(至誠)으로 겸손(謙巽)함을 편안히 여겨 성의(誠意)를 통하는 이가 많게 한다면 길(吉)하고 허물이 없으리니, 정성이 남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사람들이 그 성의(誠意)를 살피지 못하면 지나치게 겸손(謙巽)함을 아첨한다고 이를 것이다.
【本義】 二以陽處陰而居下하여 有不安之意나 然當巽之時하여 不厭其卑하고 而二又居中하니 不至已甚이라 故其占이 爲能過於巽而丁寧煩悉其辭하여 以自道達이면 則可以吉而无咎요 亦竭誠意以祭祀之吉占也라.
이(二)가 양(陽)으로서 음위(陰位)에 처하고 아래에 거하여 불안한 뜻이 있으나 손(巽)의 때를 당하여 낮춤을 싫어하지 않고 이(二)가 또 중(中)에 거하였으니, 너무 심함에 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공손(恭巽)함을 지나치게 하여 말을 정녕(丁寧)히 하고 번거롭게 다하여 스스로 자신의 성의를 말하면 길(吉)하고 허물이 없을 것이요, 역시 성의(誠意)를 다하여 제사(祭祀)하는 길점(吉占)이 된다.
象曰 紛若之吉은 得中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분약(紛若)의 길(吉)함은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다.”
【傳】 二以居柔在下하여 爲過巽之象이로되 而能使通其誠意者衆多紛然은 由得中也라 陽居中은 爲中實之象이니 中旣誠實이면 則[一无則字]人自當信之라 以誠意則非諂畏也니 所以吉而无咎라.
이(二)가 유(柔)에 거하고 아래에 있어 지나치게 비손(卑巽)한 상(象)이 되나, 성의(誠意)를 통하는 이가 많아 분분(紛紛)함은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다. 양(陽)이 중(中)에 거함은 중실(中實)의 상(象)이 되니, 중심(中心)이 이미 성실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믿을 것이다. 성의(誠意)로써 하면 아첨함과 두려워함이 아니니, 이 때문에 길(吉)하고 허물이 없는 것이다.
九三은 頻巽이니 吝하니라.
구삼(九三)은 자주 공손(恭巽)하니 부끄럽다.
【傳】 三以陽處剛하여 不得其中하고 又在下體之上하니 以剛亢之質而居巽順之時하여 非能巽者요 勉而爲之라 故屢失也라 居巽之時하여 處下而上臨之以巽하고 又四以柔巽相親하며 所乘者剛이요 而上復有重剛하니 雖欲不巽이나 得乎아 故頻失而頻巽은 是可吝也라.
삼(三)이 양(陽)으로서 강(剛)에 처하여 중(中)을 얻지 못하고 또 하체(下體)의 위에 있으니, 강(剛)하고 높은 체하는 재질로 손순(巽順)의 때에 거하여 공손(恭巽)할 수 있는 이가 아니요 억지로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러 번 잃는 것이다. 손(巽)의 때에 거하여 아래에 처하였는데, 위에서 겸손(謙巽)함으로써 임하고 또 사(四)가 유손(柔巽)으로 서로 친하며, 타고 있는 것이 강(剛)이고 위에 다시 중강(重剛)이 있으니, 비록 공손(恭巽)하지 않고자 하나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여러 번 잃고 여러 번 공손(恭巽)함은 부끄러울 만한 것이다.
【本義】 過剛不中하여 居下之上하니 非能巽者요 勉爲屢失하니 吝之道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지나치게 강(剛)하고 중(中)하지 못하면서 하체(下體)의 위에 거하였으니, 공손(恭巽)히 할 수 있는 자가 아니요 억지로 하여 여러 번 잃는 것이니, 부끄러운 길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頻巽之吝은 志窮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자주 공손(恭巽)함의 부끄러움은 뜻이 곤궁한 것이다.”
【傳】 三之才質이 本非能巽이로되 而上臨之以巽하고 承重剛而履剛하여 勢不得行其志라 故頻失而頻巽하니 是其志窮困이니 可吝之甚也라.
삼(三)의 재질은 본래 공손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위에서 임하기를 손순(巽順)함으로써 하고 중강(重剛)을 받들고 강(剛)을 밟고 있어 세(勢)가 그 뜻을 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여러 번 잃고 여러 번 공손(恭巽)하니, 이는 그 뜻이 곤궁한 것이니, 부끄러워할 만함이 심하다.
六四는 悔亡하니 田獲三品이로다.
육사(六四)는 뉘우침이 없어지니, 사냥하여 삼품(三品)의 짐승을 얻도다.
【傳】 陰柔无援하고 而承乘皆剛하니 宜有悔也로되 而四以陰居陰하여 得巽之正하고 在上體之下하니 居上而能下也라 居上之下는 巽於上也요 以巽臨下는 巽於下也니 善處如此라 故得悔亡이라 所以得悔亡은 以如田之獲三品也니 田獲三品이면 及於上下也라 田獵之獲을 分三品하여 一爲乾豆하고 一供賓客與充庖하고 一頒徒御하나니 四能巽於上下之陽하니 如田之獲三品이니 謂遍及上下也라 四之地本有悔로되 以處之至善이라 故悔亡而復有功이라 天下之事苟善處면 則悔或可以爲功也라.
음유(陰柔)로서 응원(應援)이 없고 승(承)과 승(乘)이 모두 강(剛)이니, 마땅히 뉘우침이 있을 것이나 사(四)가 음(陰)으로서 음위(陰位)에 거하여 손(巽)의 바름을 얻고 상체(上體)의 아래에 있으니, 위에 있으면서 능히 몸을 낮춘다. 상체(上體)의 아래에 거함은 위에 공손(恭巽)함이요, 손(巽)으로써 아래에 임함은 아래에 겸손(謙巽)함이니, 잘 처신하기를 이와 같이 하기 때문에 뉘우침이 없어진 것이다. 뉘우침이 없어진 까닭은 사냥하여 삼품(三品)을 얻은 것과 같기 때문이니, 사냥하여 삼품(三品)을 얻으면 상하(上下)에 두루 미친다. 전렵(田獵)하여 잡은 것을 세 등급으로 나누어 하나는 건두(乾豆)를 만들고, 하나는 빈객(賓客)에게 공급하거나 군주(君主)의 푸줏간에 채우며, 하나는 도어(徒御)에게 나누어준다. 사(四)가 상하(上下)의 양(陽)에게 공손(恭巽)하니, 전렵(田獵)에 삼품(三品)을 얻은 것과 같으니, 두루 상하(上下)에 미침을 이른다. 사(四)의 처지는 본래 뉘우침이 있을 것이나 처신하기를 지극히 잘하기 때문에 뉘우침이 없어지고 다시 공(功)이 있는 것이다. 천하(天下)의 일을 만일 잘 처리한다면 뉘우침이 혹 공(功)이 될 수 있는 것이다.
【本義】 陰柔无應하고 承乘皆剛하니 宜有悔也로되 而以陰居陰하고 處上之下라 故得悔亡而又爲卜田之吉占也라 三品者는 一爲乾豆하고 一爲賓客하고 一以充庖라.
음유(陰柔)로 응(應)이 없고 승(承)과 승(乘)이 모두 강(剛)이니, 마땅히 뉘우침이 있을 것이나 음(陰)으로서 음위(陰位)에 거하고 상체(上體)의 아래에 처하였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없어지고 또 사냥을 점치는 길점(吉占)이 되는 것이다. 삼품(三品)은 하나는 건두(乾豆)를 만들고, 하나는 빈객(賓客)의 찬을 만들고, 하나는 군주(君主)의 푸줏간에 채우는 것이다.
象曰 田獲三品은 有功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사냥하여 삼품(三品)을 얻음은 공(功)이 있는 것이다.”
【傳】 巽於上下하여 如田之獲三品而遍及上下하면 成巽之功也라.
상하(上下)에 공손(恭巽)하여 사냥하여 삼품(三品)을 얻어 상하(上下)에 두루 미치듯이 하면 손(巽)의 공(功)을 이룰 것이다.
九五는 貞이면 吉하여 悔亡하여 无不利니 无初有終이라 先庚三日하며 後庚三日이면 吉하리라.
구오(九五)는 정(貞)하면 길(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져서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 초(初)는 없고 종(終)은 있다. 경(庚)으로 3일을 먼저 하고 경(庚)으로 3일을 뒤에 하면 길(吉)하리라.
【本義】 貞하여 吉하니,
【본의】 정(貞)하여 길(吉)하니,
【傳】 五居尊位하여 爲巽之主하니 命令之所出也라 處得中正하여 盡巽之善이나 然巽者는 柔順之道니 所利在貞하니 非五之不足이요 在巽에 當戒也라 旣貞則吉而悔亡하여 无所不利하리니 貞은 正中也니 處巽出令이 皆以中正爲吉이라 柔巽而不貞이면 則有悔니 安能无所不利也리오 命令之出은 有所變更也니 无初는 始未善也요 有終은 更之使善也니 若已善이면 則何用命也며 何用更也리오 先庚三日, 後庚三日吉은 出命更改[一作故]之道 當如是也라 甲者는 事之端也요 庚者는 變更之始也라 十干에 戊己爲中하니 過中則變이라 故謂之庚이라 事之改更을 當原始要終하여 如先甲後甲之義니 如是則吉也라 解在蠱卦하니라.
오(五)가 존위(尊位)에 거하여 손(巽)의 주체가 되었으니, 명령이 나오는 곳이다. 처함이 중정(中正)을 얻어 손(巽)의 선(善)을 다하였으나 손(巽)은 유순(柔順)한 도(道)이니, 이로운 바가 정(貞)에 있으니, 오(五)가 부족한 것이 아니요 손(巽)에 있기 때문에 마땅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정(貞)하면 길(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져서 이롭지 않은 바가 없을 것이니, 정(貞)은 바로 중도(中道)에 맞는 것이니, 손(巽)에 처하고 명령을 냄이 모두 중정(中正)을 길(吉)함으로 삼는다. 유손(柔巽)하기만 하고 정(貞)하지 못하면 뉘우침이 있으니, 어찌 이롭지 않은 바가 없겠는가. 명령을 냄은 변경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무초(无初)’는 처음에는 선(善)하지 못한 것이요, ‘유종(有終)’은 변경하여 선(善)하게 하는 것이니, 만약 이미 선(善)하다면 어찌 명령할 것이 있으며, 어찌 변경할 것이 있겠는가. ‘선경삼일(先庚三日) 후경삼일길(後庚三日吉)’은 명령을 내어 변경하는 도(道)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는 것이다. 갑(甲)은 일의 시작이고 경(庚)은 변경의 시작이다. 십간(十干)에 무기(戊己)가 중간이니, 중(中)을 넘으면 변한다. 그러므로 경(庚)이라 이른 것이다. 일의 변경은 마땅히 시초를 근원하고 종(終)을 맞추어 선갑후갑(先甲後甲)의 뜻과 같이 하여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길(吉)하다. 해설이 고괘(蠱卦)에 나와 있다.
【本義】 九五剛健中正而居巽體라 故有悔나 以有貞而吉也라 故得亡其悔而无不利하니 有悔는 是无初也요 亡之는 是有終也라 庚은 更也니 事之變也라 先庚三日은 丁也요 後庚三日은 癸也니 丁은 所以丁寧於其變之前이요 癸는 所以揆度(탁)於其變之後니 有所變更而得此占者는 如是則吉也라.
구오(九五)가 강건중정(剛健中正)한데 손체(巽體)에 있기 때문에 뉘우침이 있으나 정(貞)이 있어 길(吉)하다. 그러므로 뉘우침이 없어져서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뉘우침이 있음은 이는 시초가 없는 것이고, 뉘우침이 없어짐은 이는 종(終)이 있는 것이다. 경(庚)은 변경함이니, 일을 변하는 것이다. 경(庚)보다 3일을 먼저 한다는 것은 정(丁)이요, 경(庚)보다 3일을 뒤에 한다는 것은 계(癸)이니, 정(丁)은 변경하기 전에 정녕(丁寧)히 하는 것이요 계(癸)는 변경한 뒤에 헤아리는 것이니, 변경하는 바가 있으면서 이 점(占)을 얻은 이는 이와 같이 하면 길(吉)하다.
象曰 九五之吉은 位正中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구오(九五)의 길(吉)함은 자리가 바로 중도(中道)에 맞기 때문이다.”
【傳】 九五之吉은 以處正中也니 得正中之道면 則吉而其悔亡也라 正中은 謂不過, 无不及[一作无過不及]하여 正得其中也라 處柔巽與出命令은 唯得中爲善이니 失中則悔也라.
구오(九五)가 길(吉)한 것은 처함이 바로 중도(中道)에 맞기 때문이니, 바로 중도(中道)에 맞으면 길(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진다. 정중(正中)은 과(過)하지 않고 불급(不及)함이 없어서 바로 그 중도(中道)를 얻음을 이른다. 유손(柔巽)에 처함과 명령을 냄은 오직 중도(中道)를 얻음이 선(善)하니, 중도(中道)를 잃으면 뉘우치게 된다.
上九는 巽在牀下하여 喪其資斧니 貞에 凶하니라.
구오(九五)는 공손(恭巽)함이 상(牀) 아래에 있어 물자(物資)와 도끼를 잃으니, 정도(正道)에 흉하다.
【本義】 貞이라도 凶하니라.
【본의】 바르더라도 흉(凶)하다.
【傳】 牀은 人所安也니 在牀下는 過所安之義也라 九居巽之極하니 過於巽者[一无者字]也라 資는 所有也요 斧는 以斷也라 陽剛은 本有斷이로되 以過巽而失其剛斷하여 失其所有하니 喪資斧也라 居上而過巽하여 至於自失이면 在正道에 爲凶也라.
상(牀)은 사람이 편안히 여기는 곳이니, 상(牀) 아래에 있음은 편안한 곳을 지난 뜻이다. 구(九)가 손(巽)의 극(極)에 거하였으니, 공손(恭巽)함을 지나치게 하는 것이다. 자(資)는 가지고 있는 것이고, 부(斧)는 결단하는 것이다. 양강(陽剛)은 본래 결단함이 있으나 지나치게 공손(恭巽)하여 강단(剛斷)을 잃어서 가지고 있는 것을 잃으니, 이는 물자(物資)와 도끼를 잃은 것이다. 상(上)에 거하고 지나치게 공손(恭巽)하여 스스로 잃음에 이르면 정도(正道)에 있어 흉함이 된다.
【本義】 巽在牀下는 過於巽者也요 喪其資斧는 失所以斷也니 如是則雖貞亦凶矣라 居巽之極하여 失其陽剛之德이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공손(恭巽)함이 상(牀) 아래에 있음은 공손(恭巽)함을 지나치게 하는 것이요, 그 물자와 도끼를 잃음은 결단함을 잃은 것이니, 이와 같으면 비록 바르더라도 흉(凶)하다. 손(巽)의 극(極)에 처하여 양강(陽剛)의 덕(德)을 잃었기 때문에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巽在牀下는 上窮也요 喪其資斧는 正乎아 凶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공손(恭巽)함이 상(牀) 아래에 있음은 올라가 궁극하기 때문이요, 물자(物資)와 도끼를 잃음은 정도(正道)라 할 수 있겠는가? 흉하다.”
【本義】 正乎凶也라.
【본의】 바로 흉(凶)한 것이다.
【傳】 巽在牀下는 過於巽也요 處卦之上은 巽至於窮極也라 居上而過極於巽하여 至於自失이면 得爲正乎아 乃凶道也라 巽은 本善行이라 故疑之曰得爲正乎아 하고 復斷之曰乃凶也라 하니라.
공손(恭巽)함이 상(牀) 아래에 있음은 공손(恭巽)함이 지나친 것이요, 괘(卦)의 위에 처함은 공손(恭巽)함이 궁극함에 이른 것이다. 상(上)에 거하여 공손(恭巽)함에 지나치게 지극하여 스스로 잃음에 이르면 정도(正道)라 할 수 있겠는가. 이는 흉한 길이다. 손(巽)은 본래 선행(善行)이기 때문에 의심하기를 ‘정도(正道)라 할 수 있겠는가?’ 하였고, 다시 결단하기를 ‘흉하다’ 한 것이다.
【本義】 正乎凶은 言必凶이라.
‘정호흉(正乎凶)’은 반드시 흉함을 말한 것이다.

57. 손(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