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귀매(歸妹)
【傳】 歸妹는 序卦에 漸者는 進也니 進必有所歸라 故로 受之以歸妹라 하니라 進則必有所至라 故漸有歸義하니 歸妹所以繼漸也라 歸妹者는 女之歸也니 妹는 少女之稱이라 爲卦 震上兌下하니 以少女從長男也라 男動而女說하고 又以說而動하니 皆男說女, 女從男之義라 卦有男女配合之義者四하니 咸, 恒, 漸, 歸妹也라 咸은 男女之相感也니 男下女하여 二氣感應하고 止而說하니 男女之情相感之象이요 恒은 常也니 男上女下하고 巽順而動하며 陰陽皆相應하니 是男女居室夫婦唱隨之常道요 漸은 女歸之得其正也니 男下女而各得正位하고 止靜而巽順하여 其進有漸하니 男女配合이 得其道也요 歸妹는 女之嫁歸也니 男上女下하여 女[一无女字]從男也而有說少之義라 以說而動하니 動以說이면 則不得其正矣라 故位皆不當이라.
귀매괘(歸妹卦)는 〈서괘전(序卦傳)〉에 “점(漸)은 나아감이니, 나아가면 반드시 돌아오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귀매괘(歸妹卦)로 받았다.” 하였다. 나아가면 반드시 이르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점(漸)에 돌아가는 뜻이 있으니, 귀매괘(歸妹卦)가 이 때문에 점괘(漸卦)를 이은 것이다. 귀매(歸妹)는 여자(女子)가 시집감이니, 매(妹)는 소녀(少女)의 칭호이다. 괘(卦)됨이 진(震)이 위에 있고 태(兌)가 아래에 있으니, 소녀(少女)로서 장남(長男)을 따르는 것이다. 남자(男子)는 동하고 여자(女子)는 기뻐하며 또 기뻐함으로써 동하니, 모두 남자(男子)가 여자(女子)를 기뻐하고 여자(女子)가 남자(男子)를 따르는 뜻이다. 괘(卦)에 남녀배합(男女配合)의 뜻이 있는 것이 넷이니, 함(咸)·항(恒)·점(漸)·귀매괘(歸妹卦)이다. 함(咸)은 남녀(男女)가 서로 감동된 것이니, 남자(男子)가 여자(女子)에게 낮추어 음(陰)·양(陽) 두 기운이 감응(感應)하며 그치고 기뻐하니, 남녀(男女)의 정(情)이 서로 감동되는 상(象)이다. 항(恒)은 떳떳함이니, 남자(男子)가 위에 있고 여자(女子)가 아래에 있으며 손순(巽順)하고 동하며 음양(陰陽)이 다 서로 응(應)하니, 이는 남녀(男女)가 집에 거처하고 남편이 선창하면 아내가 따르는 떳떳한 도(道)이다. 점(漸)은 여자(女子)가 시집감에 그 바름을 얻은 것이니, 남자(男子)가 여자(女子)에게 낮추어 각각 정위(正位)를 얻었으며, 그쳐 고요하고 손순(巽順)하여 그 나아감이 점점함이 있으니, 남녀(男女)의 배합(配合)이 도(道)를 얻은 것이다. 귀매(歸妹)는 여자(女子)가 시집가는 것이니, 남자(男子)가 위에 있고 여자(女子)가 아래에 있어 여자(女子)가 남자(男子)를 따르고 소녀(少女)를 기뻐하는 뜻이 있다. 기뻐함으로써 동하니, 동하기를 기뻐함으로써 하면 바름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리가 모두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初與上은 雖當陰陽之位하나 而陽在下하고 陰在上하니 亦不當位也니 與漸正相對라 咸, 恒은 夫婦之道요 漸, 歸妹는 女歸之義라 咸與歸妹는 男女之情也니 咸은 止而說하고 歸妹는 動於說하니 皆以說也요 恒與漸은 夫婦之義也니 恒은 巽而動하고 漸은 止而巽하니 皆以巽順也니 男女之道와 夫婦之義가 備於是矣라 歸妹는 爲卦澤上有雷하니 雷震而澤動은 從之象也니 物之隨動이 莫如水라 男動於上而女從之는 嫁歸從男之象이며 震은 長男이요 兌는 少女니 少女從長男은 以說而動이니 動而相說也라 人之所說者少女라 故云妹하니 爲女歸之象이요 又有長男說少女之義라 故爲歸妹也라.
초(初)와 상(上)은 비록 음양(陰陽)의 자리에 마땅하나 양(陽)이 아래에 있고 음(陰)이 위에 있으니, 또한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것이니, 점괘(漸卦)와 정반대이다. 함괘(咸卦)와 항괘(恒卦)는 부부(夫婦)의 도(道)이고, 점괘(漸卦)와 귀매괘(歸妹卦)는 여자(女子)가 시집가는 뜻이다. 함괘(咸卦)와 귀매괘(歸妹卦)는 남녀(男女)의 정(情)이니, 함(咸)은 그치고 기뻐하며 귀매(歸妹)는 기뻐함에 동하니, 모두 기뻐함으로써 한 것이다. 항괘(恒卦)와 점괘(漸卦)는 부부(夫婦)의 의(義)이니, 항(恒)은 공손하고 동하며 점(漸)은 그치고 공손하니, 모두 손순(巽順)함으로써 한 것이니, 남녀(男女)의 도(道)와 부부(夫婦)의 의(義)가 여기에 구비되었다. 귀매(歸妹)는 괘(卦)됨이 못 위에 우레가 있으니, 우레가 진동함에 못물이 따라 움직임은 따르는 상(象)이니, 사물 중에 따라 움직임은 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 남자(男子)가 위에서 동함에 여자(女子)가 따름은 여자(女子)가 시집가 남자를 따르는 상(象)이며, 진(震)은 장남(長男)이고 태(兌)는 소녀(少女)이니, 소녀(少女)가 장남(長男)을 따름은 기뻐함으로써 동함이니, 동하여 서로 기뻐하는 것이다. 사람이 기뻐하는 것은 소녀(少女)이므로 매(妹)라고 말했으니, 여자(女子)가 시집가는 상(象)이 되고, 또 장남(長男)이 소녀(少女)를 좋아하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귀매(歸妹)라 한 것이다.
歸妹는 征하면 凶하니 无攸利하니라.
귀매(歸妹)는 가면 흉하니, 이로운 바가 없다.
【傳】 以說而動이면 動而不當이라 故凶이니 不當은 位不當也라 征凶은 動則凶也라 如卦之義면 不獨女歸요 无所往而利也리라.
기뻐함으로써 동하면 동함에 마땅하지 않다. 그러므로 흉하니, 마땅하지 않음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정흉(征凶)’은 동하면 흉한 것이다. 괘(卦)의 뜻과 같으면 다만 여자(女子)가 시집가는 것뿐만이 아니요, 가는 곳마다 이로움이 없으리라.
【本義】 婦人謂嫁曰歸요 妹는 少女也라 兌以少女而從震之長男하고 而其情이 又爲以說而動하니 皆非正也라 故卦爲歸妹요 而卦之諸爻 自二至五에 皆不得正하고 三五又皆以柔乘剛이라 故其占이 征凶而无所利也라.
부인(婦人)이 시집감을 귀(歸)라 하고 매(妹)는 소녀(少女)이다. 태(兌)가 소녀(少女)로서 진(震)의 장남(長男)을 따르고 그 정(情)이 또 기뻐함으로써 동함이 되니, 모두 정도(正道)가 아니다. 그러므로 괘(卦)가 귀매(歸妹)가 되었고, 괘(卦)의 여러 효(爻)가 이효(二爻)로부터 오효(五爻)에 이르기까지 다 바름을 얻지 못하였으며, 삼효(三爻)와 오효(五爻)가 또 모두 유(柔)로서 강(剛)을 타고 있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가면 흉하여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
彖曰 歸妹는 天地之大義也니,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귀매(歸妹)는 천지(天地)의 대의(大義)이니,
【傳】 一陰一陽之謂道니 陰陽交感하고 男女配合은 天地之常理也라 歸妹는 女歸於男也라 故云天地之大義也라 男在女上하고 陰從陽動이라 故爲女歸之象이라.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함을 도(道)라 이르니, 음양(陰陽)이 서로 감동하고 남녀(男女)가 배합(配合)함은 천지(天地)의 떳떳한 이치이다. 귀매(歸妹)는 여자(女子)가 남자(男子)에게 시집감이다. 그러므로 천지(天地)의 대의(大義)라고 말한 것이다. 남자(男子)가 여자(女子)의 위에 있고 음(陰)이 양(陽)을 따라 동한다. 그러므로 여귀(女歸)의 상(象)이 된 것이다.
天地不交而萬物이 不興하나니 歸妹는 人之終始也라.
천지(天地)가 사귀지 않으면 만물이 일어나지 못하니, 귀매(歸妹)는 사람의 종(終)과 시(始)이다.
【傳】 天地不交면 則萬物何從而生이리오 女之歸男은 乃生生相續之道라 男女交而後에 有生息이요 有生息而後에 其終不窮이라 前者有終而後者有始하여 相續不窮은 是人之終始也라
천지(天地)가 사귀지 않으면 만물이 어디로부터 생기겠는가. 여자(女子)가 남자(男子)에게 시집감은 바로 낳고 낳아 서로 잇는 도(道)이다. 남녀(男女)가 사귄 뒤에 생식(生息)이 있고 생식(生息)이 있은 뒤에 그 끝이 무궁한 것이다. 앞에 있는 자가 끝남에 뒤에 있는 이가 시작하여 서로 이어서 다하지 않음은 이는 사람의 종(終)과 시(始)이다.
【本義】 釋卦名義也라 歸者는 女之終이요 生育者는 人之始라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시집감은 처녀의 끝이요, 생육(生育)은 사람의 시작이다.
說以動하여 所歸妹也니,
기뻐함으로써 동하여 시집가는 것이 소녀(少女)이니,
【本義】 又以卦德言之라.
또 괘덕(卦德)으로 말하였다.
征凶은 位不當也요,
가면 흉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요,
【傳】 以二體로 釋歸妹之義라 男女相感하여 說而動者는 少女之事라 故以說而動하여 所歸者妹也라 所以征則凶者는 以諸爻皆不當位也니 所處皆不正이면 何動而不凶이리오 大率以說而動이면 安有不失正者리오.
두 체(體)로 귀매(歸妹)의 뜻을 해석하였다. 남녀(男女)가 서로 감동하여 기뻐하여 동함은 소녀(少女)의 일이다. 그러므로 기뻐함으로써 동하여 시집가는 것이 소녀(少女)인 것이다. 가면 흉한 까닭은 여러 효(爻)가 모두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니, 처한 바가 다 바르지 않으면 어떠한 동(動)인들 흉하지 않겠는가. 대체로 기뻐함으로써 동한다면 어찌 바름을 잃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无攸利는 柔乘剛也일새라.
이로운 바가 없음은 유(柔)가 강(剛)을 탔기 때문이다.
【傳】 不唯位不當也라 又有乘剛之過하니 三五皆乘剛이라 男女有尊卑之序하고 夫婦有唱隨之禮하니 此[一无此字]常理也니 如恒이 是也라 苟不由常正之道하고 徇情肆欲하여 唯說是動이면 則夫婦瀆亂하여 男牽欲而失其剛하고 婦狃說而忘其順하리니 如歸妹之乘剛이 是也라 所以凶이니 无所往而利也라 夫陰陽之配合과 男女之交媾는 理之常也나 然從欲而流放하여 不由義理면 則淫邪無所不至하여 傷身敗德하리니 豈人理哉리오 歸妹之所以[一有征字]凶也라.
비단 자리가 마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강(剛)을 탄 잘못이 있으니, 삼효(三爻)와 오효(五爻)가 모두 강(剛)을 타고 있다. 남녀(男女)는 존비(尊卑)의 차례가 있고 부부(夫婦)는 창수(唱隨)의 예(禮)가 있으니, 이것이 떳떳한 도리이니, 항괘(恒卦)와 같음이 이것이다. 만일 떳떳하고 바른 도(道)를 따르지 않고서 정(情)을 따르고 욕심에 방자하여 오직 기뻐함에 동한다면 부부간(夫婦間)이 문란해져서 남자(男子)는 욕심에 끌려 강(剛)함을 잃고 여자(女子)는 기쁨에 빠져 순함을 잊을 것이니, 귀매(歸妹)가 강(剛)을 탄 것과 같음이 이것이다. 이 때문에 흉(凶)한 것이니, 가는 곳마다 이로움이 없다. 음양(陰陽)의 배합(配合)과 남녀(男女)의 교구(交媾)는 떳떳한 이치이나 욕심을 따라 방탕한 데로 흘러서 의리(義理)를 따르지 않으면 음사(淫邪)가 이르지 않음이 없어 몸을 상(傷)하고 덕(德)을 해치리니, 어찌 사람의 도리이겠는가. 귀매(歸妹)가 이 때문에 흉한 것이다.
【本義】 又以卦體로 釋卦辭라 男女之交는 本皆正理로되 唯若此卦면 則不得其正也라.
또 괘체(卦體)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남녀(男女)의 사귐은 본래 모두 정리(正理)이나 오직 이 괘(卦)와 같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象曰 澤上有雷歸妹니 君子以하여 永終하여 知敝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못 위에 우레가 있음이 귀매(歸妹)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종(終)을 영구하게 하여 폐괴(弊壞)함을 안다.”
【傳】 雷震於上에 澤隨而動하고 陽動於上에 陰說而從은 女從男之象也라 故爲歸妹라 君子觀男女配合하여 生息相續之象하여 而以永其終하여 知有敝也하나니라 永終은 謂生息嗣續하여 永久其傳也요 知敝는 謂知物有敝壞而爲相繼之道也라 女歸則有生息이라 故有永終之義요 又夫婦之道는 當常永有終이니 必知其有敝壞之理而戒愼之니 敝壞는 謂離隙이라 歸妹는 說以動者也니 異乎恒之巽而動과 漸之止而巽也라 少女之說은 情之感動이니 動則失正이라 非夫婦正而可常之道니 久必敝壞리니 知其必敝면 則當思永其終也라 天下之反目者는 皆不能永終者也니 不獨夫婦之道라 天下之事 莫不有終有敝요 莫不有可繼可久之道하니 觀歸妹면 則當思永終之戒也니라.
우레가 위에서 진동함에 못물이 따라 움직이고, 양(陽)이 위에서 움직임에 음(陰)이 기뻐하여 따름은 여자(女子)가 남자(男子)를 따르는 상(象)이다. 그러므로 귀매(歸妹)라 하였다. 군자(君子)는 남녀(男女)가 배합(配合)해서 생식(生息)하여 서로 이어가는 상(象)을 보고서 그 종(終)을 영구하게 하여 폐괴(弊壞)가 있음을 안다. ‘영종(永終)’은 생식(生息)하여 이어가서 그 전함을 영구히 하는 것이요, ‘지폐(知敝)’는 물건에 폐괴(弊壞)가 있음을 알아 서로 이어갈 방도를 만드는 것이다. 여자(女子)가 시집가면 생식(生息)이 있으므로 영종(永終)의 뜻이 있고 또 부부(夫婦)의 도(道)는 마땅히 항상하고 영구하게 하여 종(終)이 있어야 하니, 반드시 폐괴(弊壞)의 이치가 있음을 알아 경계하고 삼가야 하니, 폐괴(弊壞)는 정(情)이 떨어지고 틈이 벌어짐을 이른다. 귀매(歸妹)는 기뻐함으로써 동한 것이니, 항괘(恒卦)의 손순(巽順)하고 동함과 점괘(漸卦)의 그치고 겸손함과는 다르다. 소녀(少女)가 기뻐함은 정(情)에 감동된 것이니, 동하면 바름을 잃는다. 부부(夫婦)가 바르게 하여 항상할 수 있는 도(道)가 아니니, 오래면 반드시 폐괴(弊壞)가 될 것이니, 반드시 폐괴(弊壞)될 줄을 알면 마땅히 종(終)을 영구하게 할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천하에 반목(反目)하는 이들은 모두 영종(永終)하지 못하는 이이니, 다만 부부(夫婦)의 도(道)만이 아니다. 천하의 일은 종(終)이 있고 폐괴(弊壞)가 있지 않음이 없고, 계속하여 오래할 수 있는 방도가 있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귀매(歸妹)를 보면 마땅히 영종(永終)의 경계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本義】 雷動澤隨는 歸妹之象이니 君子觀其合之不正하여 知其終之有敝也하나니 推之事物에 莫不皆然이니라.
우레가 움직임에 못물이 따름은 귀매(歸妹)의 상(象)이니, 군자(君子)가 합함이 바르지 않음을 보고서 종말(終末)에 폐괴(弊壞)가 있을 줄을 아니, 사물에 미루어 봄에 모두 그러하지 않음이 없다.
初九는 歸妹以娣니 跛能履라 征이면 吉하리라.
초구(初九)는 매(妹)를 시집보내되 잉첩(媵妾)으로 함이니, 절름발이가 걸어가는 격이다. 그대로 나아가면 길하리라.
【傳】 女之歸에 居下而无正應하니 娣之象也라 剛陽은 在婦人엔 爲賢[一作堅]貞之德而處卑順하니 娣之賢正者也라 處說居下는 爲順義라 娣之卑下로 雖賢이나 何所能爲리오 不過自善其身하여 以承助其君而已라 如跛之能履하니 言不能及遠也라 然在其分에 爲善이라 故以是而行則吉也라.
여자(女子)가 시집감에 아래에 거하고 정응(正應)이 없으니, 잉첩(媵妾)의 상(象)이다. 강양(剛陽)은 부인(婦人)에게 있어서는 현정(賢正)한 덕(德)이 되는데 비순(卑順)함에 처했으니, 잉첩의 어질고 바른 이이다. 기쁨에 처하고 아래에 거함은 순한 뜻이 된다. 잉첩의 낮은 신분으로 비록 어지나 무엇을 하겠는가. 스스로 자기 몸을 선(善)하게 하여 적처(嫡妻)를 받들어 도움에 불과할 뿐이다. 이는 마치 절름발이가 걸어가는 것과 같으니, 먼 곳에 미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분수에는 선(善)함이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도로 나아가면 길한 것이다.
【本義】 初九居下而无正應이라 故爲娣象이라 然陽剛은 在女子엔 爲賢正之德이로되 但爲娣之賤하여 僅能承助其君而已라 故又爲跛能履之象이요 而其占則征吉也라.
초구(初九)는 아래에 거하였고 정응(正應)이 없다. 그러므로 잉첩의 상(象)이 된 것이다. 그러나 양강(陽剛)은 여자(女子)에게 있어서는 현정(賢正)한 덕(德)이 되는데 다만 잉첩의 천한 신분이어서 겨우 군(君)을 받들어 도울 뿐이다. 그러므로 또 절름발이가 걸어가는 상(象)이 되며, 그 점(占)은 그대로 나아가면 길한 것이다.
象曰 歸妹以娣나 以恒也요 跛能履吉은 相承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귀매(歸妹)를 천한 잉첩으로 하였으나 떳떳한 덕(德)을 간직하였고, 절름발이가 걸어가는 것이나 길함은 서로 받들기 때문이다.”
【傳】 歸妹之義는 以說而動하니 非夫婦能常之道로되 九乃剛陽이라 有賢[一作堅]貞之德하니 雖娣之微나 乃能以常者也라 雖在下하여 不能有所爲하여 如跛者之能履나 然征而吉者는 以其能相承助也일새라 能助其君은 娣之吉也라.
귀매(歸妹)의 뜻은 기쁨으로써 동하니, 부부(夫婦)의 항상할 수 있는 도(道)가 아니나 구(九)는 바로 강양(剛陽)이라서 현정(賢正)한 덕(德)이 있으니, 비록 잉첩의 미천한 신분이나 바로 떳떳함으로써 하는 이이다. 비록 아랫자리에 있어서 하는 바가 있지 못하여 절름발이가 걸어가는 것과 같으나 나아가 길함은 서로 받들어 도와주기 때문이다. 군(君)을 돕는 것은 잉첩의 길함이다.
【本義】 恒은 謂有常久之德이라.
항(恒)은 상구(常久)한 덕(德)이 있음을 이른다.
九二는 眇能視니 利幽人之貞하니라.
구이(九二)는 애꾸눈이 보는 것이니, 유인(幽人)의 정(貞)함이 이롭다.
【傳】 九二陽剛而得中하니 女之賢正者也로되 上有正應而反陰柔之質이라 動於說者也니 乃女賢而配不良이라 故二雖[一作之]賢이나 不能自遂以成其內助之功이요 適可以善其身而小施之니 如眇者之能視而已니 言不能及遠也라 男女之際는 當以正禮니 五雖不正이나 二自守其幽靜貞正이면 乃所利也라 二有剛正之德하니 幽靜之人也라 二之才如是로되 而言利貞者[一无此五字]는 利는 言宜於如是之貞[一无之貞字]이요 非不足而爲之戒也니라.
구이(九二)는 양강(陽剛)으로 중(中)을 얻었으니, 여자(女子)의 현정(賢正)한 이인데 위에 정응(正應)이 있으나 도리어 음유(陰柔)의 자질이라서 기쁨에 동하는 이이니, 이는 바로 여자(女子)는 어지나 배필(配匹)이 어질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二)가 비록 어지나 스스로 이루어 내조(內助)의 공(功)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자기 몸을 선(善)하게 하여 조금 베풀 수 있을 뿐이어서 마치 애꾸눈이 보는 것과 같을 뿐이니, 먼 곳에 미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남녀(男女)의 교제는 마땅히 정례(正禮)로써 하여야 하니, 오(五)가 비록 바르지 않으나 이(二)가 스스로 유정(幽靜)과 정정(貞正)을 지키면 이는 이로운 것이다. 이(二)는 강정(剛正)의 덕(德)이 있으니, 유정(幽靜)한 사람이다. 이(二)의 재질이 이와 같으나 이정(利貞)이라고 말한 것은 이로움은 이와 같이 바름이 마땅함을 말한 것이요, 부족(不足)하여 경계한 것은 아니다.
【本義】 眇能視는 承上爻而言이라 九二陽剛得中하니 女之賢也로되 上有正應而反陰柔不正하니 乃女賢而配不良이니 不能大成內助之功이라 故爲眇能視之象이요 而其占則利幽人之貞也라 幽人은 亦抱道守正而不偶者也라.
‘묘능시(眇能視)’는 위의 효(爻)를 이어 말한 것이다. 구이(九二)가 양강(陽剛)으로 중(中)을 얻었으니, 여자(女子)가 어지되 위에 정응(正應)이 있는데 도리어 음유(陰柔)로 바르지 못하니, 이는 여자(女子)는 어지나 배필이 어질지 못한 것이니, 내조(內助)의 공(功)을 크게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묘능시(眇能視)’의 상(象)이 되고, 그 점(占)은 유인(幽人)의 정(貞)함이 이로운 것이다. 유인(幽人)은 또한 도(道)를 간직하고 정도(正道)를 지키나 불우(不偶)한 이이다.
象曰 利幽人之貞은 未變常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유인(幽人)의 정(貞)함이 이로움은 상도(常道)를 변치 않은 것이다.”
【傳】 守其幽貞하니 未失夫婦常正之道也라 世人은 以媟狎爲常이라 故以貞靜爲變常하나니 不知乃常久之道也라.
유정(幽貞)함을 지키니, 부부(夫婦)의 떳떳하고 바른 도(道)를 잃지 않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친압함을 떳떳하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정정(貞靜)함을 떳떳함을 변한 것이라고 여기니, 이것이 바로 항상하고 오래하는 도(道)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六三은 歸妹以須니 反歸以娣니라.
육삼(六三)은 매(妹)를 시집보냄에 기다리는 것이니, 다시 돌아와 제(娣)가 되어야 한다.
【傳】 三居下之上하니 本非賤者로되 以失德而无正應이라 故爲欲有歸而未得其歸라 須는 待也니 待者는 未有所適也라 六居三은 不當位니 德不正也요 柔而尙[一作上]剛은 行不順也요 爲說之主하여 以說求歸는 動非禮也요 上无應은 无受之者也니 无所適이라 故須也라 女子之處如是면 人誰取之리오 不可以爲人配矣라 當反歸而求爲 娣媵이면 則可也니 以不正而失其所也일새라.
삼(三)은 하괘(下卦)의 위에 거하였으니 본래 천한 이가 아니나 덕(德)을 잃고 정응(正應)이 없기 때문에 시집가고자 하여도 시집가지 못하는 것이다. 수(須)는 기다림이니, 기다림은 갈 곳이 없어서이다. 육(六)이 삼(三)에 거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니 덕(德)이 바르지 않은 것이요, 유(柔)로서 강(剛)을 숭상함은 행실이 순하지 않은 것이요, 열(說)의 주체가 되어 기뻐함으로써 시집감을 구함은 동함이 예(禮)가 아닌 것이요, 위에 응(應)이 없음은 받아주는 이가 없는 것이니 갈 곳이 없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다. 여자(女子)의 처신이 이와 같으면 사람이 누가 취하겠는가. 남의 배필이 될 수 없다. 마땅히 돌아와 잉첩이 되기를 구하면 가할 것이니, 부정(不正)하여 제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本義】 六三이 陰柔而不中正하고 又爲說之主하니 女之不正은 人莫之取者也라 故爲未得所適而反歸爲娣之象이라 或曰 須는 女之賤者라.
육삼(六三)은 음유(陰柔)로서 중정(中正)하지 못하고 또 열(說)의 주체가 되었으니, 여자(女子)가 바르지 않으면 사람이 취하는 자가 없다. 그러므로 갈 곳을 얻지 못하여 돌아와 잉첩이 되는 상(象)이 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수(須)는 천한 여자(女子)이다.” 라고 한다.
象曰 歸妹以須는 未當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귀매이수(歸妹以須)’는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傳】 未當者는 其處, 其德, 其求歸之道 皆不當이라 故无取之者하니 所以須也라.
마땅하지 않다는 것은 처지와 덕(德)과 시집감을 구하는 방법이 모두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취하는 자가 없으니, 이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다.
九四는 歸妹愆期니 遲歸有時니라.
구사(九四)는 귀매(歸妹)에 혼기(婚期)가 지남이니, 지체하여 돌아감이 때가 있어서이다.
【본의】 돌아갈 곳을 지체함이,
【傳】 九以陽居四하니 四는 上體니 地之高也요 陽剛은 在女子엔 爲正德하니 賢明者也로되 无正應하여 未得其歸也라 過時未歸라 故云愆期라 女子居貴高之地하고 有賢明之資하면 人情所願娶라 故其愆期는 乃爲有時니 蓋自有待요 非不售也니 待得佳配而後行也라 九居四는 雖不當位나 而處柔는 乃婦人之道[一有也字]라 以无應故로 爲愆期之義어늘 而聖人推理하사 以女賢而愆期는 蓋有待也라 하시니라.
구(九)가 양(陽)으로서 사(四)에 거하였으니, 사(四)는 상체(上體)이니 지위가 높고 양강(陽剛)은 여자(女子)에 있어 정덕(正德)이 되니 현명(賢明)한 이이나 정응(正應)이 없어 시집갈 곳을 얻지 못하였다. 때가 지났으나 시집가지 못하므로 건기(愆期)라 하였다. 여자(女子)가 고귀(高貴)한 지위에 거하고 현명(賢明)한 자질이 있으면 인정(人情)에 장가들기를 원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혼기(婚期)가 지난 것은 바로 때가 있어서이니, 스스로 기다림이 있어서요 팔리지 않은 것이 아니니, 아름다운 배필을 얻기를 기다린 뒤에 시집가려는 것이다. 구(九)가 사(四)에 거함은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나 유(柔)에 처함은 부인(婦人)의 도(道)이다. 응(應)이 없기 때문에 건기(愆期)의 뜻이 되었는데 성인(聖人)이 이치를 미루어 ‘여자(女子)가 어진데도 혼기(婚期)가 지난 것은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한 것이다.
【本義】 九四以陽居上體而无正應하니 賢女不輕從人而愆期以待所歸之象이니 正與六三相反이라.
구사(九四)는 양(陽)으로서 상체(上體)에 거하고 정응(正應)이 없으니, 현녀(賢女)가 가벼이 사람을 따르지 아니하여 혼기(婚期)가 지나 시집가기를 기다리는 상(象)이니, 육삼효(六三爻)와 정반대이다.
象曰 愆期之志는 有待而行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건기(愆期)의 뜻은 기다렸다가 가려고 해서이다.”
【傳】 所以愆期者는 由己而不由彼라 賢女는 人所願娶니 所以愆期는 乃其志欲有所待하여 待得佳配而後行也라.
혼기(婚期)가 지난 까닭은 자기에게 말미암은 것이요 저에게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현녀(賢女)는 사람들이 장가들기를 원하는 바이니, 혼기(婚期)가 지난 까닭은 그 뜻에 기다리는 바가 있어서 아름다운 배필을 얻기를 기다린 뒤에 시집가고자 해서이다.
六五는 帝乙歸妹니 其君之袂가 不如其娣之袂良하니 月幾望이면 吉하리라.
육오(六五)는 제을(帝乙)이 귀매(歸妹)한 것이니, 적처(嫡妻)의 소매가 제(娣)의 소매의 아름다움만 못하니, 달이 거의 보름이 된 듯이 하면 길(吉)하리라
【本義】 帝乙歸妹에 其君之袂가 不如其娣之袂良이요 月幾望이니,
【본의】 제을(帝乙)이 매(妹)를 시집보냄에 군(君)의 소매가 제(娣)의 소매가 좋음만 못하고 달이 거의 보름이 되었으니,
【傳】 六五居尊位하니 妹之貴高者也요 下應於二하니 爲下嫁之象이라 王姬下嫁는 自古而然이로되 至帝乙而後에 正婚姻之禮하고 明男女之分하여 雖至貴之女라도 不得失柔巽之道하여 有貴驕之志라 故易中에 陰尊而謙降者는 則曰帝乙歸妹라 하니 泰六五是也라 貴女之歸는 唯謙降以從禮가 乃尊高之德也니 不事容飾以說於人也라 娣媵者는 以容飾爲事者也니 衣袂는 所以爲容飾也라 六五는 尊貴之女니 尙禮而不尙飾이라 故其袂不及其娣之袂良也니 良은 美好也라 月望은 陰之盈也니 盈則敵陽矣로되 幾望은 未至於盈也라 五之貴高로 常不至於盈極이면 則不亢其夫하니 乃爲吉也니 女之處尊貴之道也라.
육오(六五)가 존위(尊位)에 거하였으니 소녀(少女) 중에 귀하고 높은 이이고, 아래로 이(二)와 응(應)하니 하가(下嫁)의 상(象)이 된다. 왕희(王姬)를 하가(下嫁)함은 예로부터 그러하였으나 제을(帝乙)에 이른 뒤에 혼인(婚姻)의 예(禮)를 바로잡고 남녀(男女)의 분별을 밝혀서 비록 지극히 귀한 여자(女子)라도 유순하고 공손한 도(道)를 잃어 귀하고 교만한 뜻이 있지 않게 하였다. 이 때문에 역(易) 가운데 음(陰)이 높으면서 겸손하고 낮추는 것은 ‘제을귀매(帝乙歸妹)’라고 말하였으니, 태괘(泰卦)의 육오(六五)가 이것이다. 귀녀(貴女)의 시집감은 오직 겸손하고 낮추어 예(禮)를 따르는 것이 바로 존고(尊高)한 덕(德)이니, 용식(容飾)을 하여 남에게 기쁘게 함을 일삼지 않는다. 잉첩은 용식(容飾)을 일삼는 이이니, 의몌(衣袂)는 용식(容飾)을 하는 것이다. 육오(六五)는 존귀(尊貴)한 여자(女子)이니, 예(禮)를 숭상하고 꾸밈을 숭상하지 않으므로 그의 소매가 잉첩의 아름다운 소매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 양(良)은 아름다움이다. 보름달은 음(陰)이 가득찬 것이니, 가득차면 양(陽)을 대적하나 기망(幾望)은 가득참에 이르지 않았다. 오(五)의 귀하고 높음으로 항상 가득차고 지극함에 이르지 않으면 남편에게 대항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길(吉)함이 되니, 여자(女子)가 존귀함에 처하는 도리이다.
【本義】 六五柔中居尊하고 下應九二하여 尙德而不貴飾이라 故爲帝女下嫁而服不盛之象이라 然女德之盛이 无以加此라 故又爲月幾望之象이요 而占者如之則吉也라.
육오(六五)가 유중(柔中)으로 존위(尊位)에 거하고 아래로 구이(九二)에 응(應)하여 덕(德)을 숭상하고 꾸밈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녀(帝女)를 하가(下嫁)하는데 의복이 성대하지 않은 상(象)이 된 것이다. 그러나 여덕(女德)의 성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으므로 또 달이 거의 보름이 된 상(象)이 되니,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길할 것이다.
象曰 帝乙歸妹不如其娣之袂良也는 其位在中하여 以貴行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제을귀매불여기제지몌량야(帝乙歸妹不如其娣之袂良也)’는 그 자리가 중(中)에 있어 귀함으로 행하는 것이다.”
【傳】 以帝乙歸妹之道言이라 其袂不如其娣之袂良은 尙禮而不尙飾也라 五以柔中으로 在尊高之位하니 以尊貴而行中道也라 柔順降屈하여 尙禮而不尙飾은 乃中道也라.
‘제을귀매(帝乙歸妹)’의 도리로써 말하였다. 군(君)의 소매가 잉첩의 소매의 아름다움만 못한 것은 예(禮)를 숭상하고 꾸밈을 숭상하지 않은 것이다. 오(五)가 유중(柔中)으로 존고(尊高)한 지위에 있으니, 존귀(尊貴)함으로 중도(中道)를 행하는 것이다. 유순(柔順)하고 몸을 굽혀 예(禮)를 숭상하고 꾸밈을 숭상하지 않음이 바로 중도(中道)이다.
【本義】 以其有中德之貴而行이라 故不尙飾이라.
중덕(中德)의 귀함을 가지고 행하기 때문에 꾸밈을 숭상하지 않은 것이다.
上六은 女承筐无實이라 士刲羊无血이니 无攸利하니라.
상육(上六)은 여자(女子)가 광주리를 받드나 담겨진 것이 없다. 남자(男子)가 양(羊)을 베나 피가 없으니, 이로운 바가 없다.
【本義】 女承筐无實하며 士刲羊无血이니 无攸利리라.
【본의】여자(女子)는 광주리를 받드나 담겨진 것이 없으며 남자(男子)는 양(羊)을 벰에 피가 없음이니, 이로울 것이 없으리라.
【傳】 上六은 女歸之終而无應하니 女歸之无終者也라 婦者는 所以承先祖, 奉祭祀니 不能奉祭祀면 則不可以爲婦矣니 筐篚之實은 婦職所供也라 古者에 房中之俎葅歜[一作醯]之類를 后夫人職之하니라 諸侯之祭에 親割牲하고 卿大夫皆然하여 割取血以祭하니 禮云 血祭는 盛氣也라 하니라 女當承事筐篚而无實하니 无實則无以祭하니 謂不能奉祭祀也라 夫婦共承宗廟하나니 婦不能奉祭祀하면 乃夫不能承祭祀也라 故刲羊而无血하여 亦无以祭也니 謂不可以承祭祀也라 婦不能奉祭祀하면 則當離絶矣[一无矣字]니 是夫婦之无終者也니 何所往而利哉리오.
상육(上六)은 여귀(女歸)의 끝인데 응(應)이 없으니, 여자(女子)가 시집감에 종(終)이 없는 이이다. 부인(婦人)은 선조(先祖)를 받들고 제사(祭祀)를 받드는 것이니, 제사(祭祀)를 받들지 못하면 부인(婦人)이 될 수 없는 바, 광주리에 물건을 담는 것은 부인(婦人)의 직분에 하는 것이다. 옛날에 방안의 도마와 김치 따위를 후부인(后夫人)이 맡았다. 제후(諸侯)의 제사(祭祀)에 제후(諸侯)가 직접 희생(犧牲)을 베며 경대부(卿大夫)도 모두 그러하여, 베어 피를 취해서 제사(祭祀)하였으니, 예(禮)에 이르기를 “피로 제사함은 기(氣)를 성(盛)하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여자(女子)는 마땅히 광주리를 받들어 일삼아야 하는데 담겨진 것이 없으니, 담겨진 것이 없으면 제사(祭祀)할 수 없으니, 제사(祭祀)를 받들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부부(夫婦)가 함께 종묘(宗廟)의 제사(祭祀)를 받드니, 부인(婦人)이 제사(祭祀)를 받들지 못하면 이는 바로 남편이 제사(祭祀)를 받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羊)을 베나 피가 없어 또한 제사(祭祀)할 수 없는 것이니, 제사(祭祀)를 받들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부인(婦人)이 제사(祭祀)를 받들지 못하면 마땅히 헤어지고 끊어야 하니, 이는 부부간(夫婦間)에 종(終)이 없는 것이니, 어느 곳에 간들 이롭겠는가.
【本義】 上六이 以陰柔로 居歸妹之終而无應하니 約婚而不終者也라 故其象如此요 而於占에 爲无所利也라.
상육(上六)이 음유(陰柔)로서 귀매(歸妹)의 종(終)에 거하여 응(應)이 없으니, 약혼(約婚)을 하였으나 끝이 없는 이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고, 그 점(占)은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
象曰 上六无實은 承虛筐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상육(上六)이 광주리에 담겨진 것이 없는 것은 빈 광주리를 받든 것이다.”
【傳】 筐无實이면 是空筐也니 空筐可以祭乎아 言不可以奉祭祀也라 女不可以承祭祀면 則離絶而已니 是女歸之无終者也라.
광주리에 담겨진 것이 없다면 이는 빈 광주리이니, 빈 광주리로 제사(祭祀)할 수 있겠는가. 이는 제사(祭祀)를 받들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여자(女子)가 제사(祭祀)를 받들 수 없다면 헤어지고 끊어야 할 뿐이니, 이는 여자(女子)가 시집감에 종(終)이 없는 것이다.

54. 귀매(歸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