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소리> 참석한다고 소정 선생이 2박 3일 머물고는 오늘 아침 9시반차로 한양으로 떠났다. 여러 날 만에 봤던 얼굴이 눈 앞에 선하다. 소정은 내게 세차를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그것도 손세차로 실내 청소를 당부하고 떠났다. 먼지가 입 속으로 들어가는 거 같단다. 사실 말이지 나는 그저 차가 움직이면 그냥 타고 다닌다. 대충 흙이나 털고 밖에서 솔로 먼지나 털고 그러고 다닌다. 차에게도, 소정에게도 이 차를 타시는 이들에게도 미안하다. 그래서 소정을 보내고는 마음 먹고 세차장엘 갔더니 어제 밤 기온이 낮았던지 세차도구가 모두 얼어서 금방 세차를 해 준다던 아저씨가 물이 안 나와 애를 먹는다. 나는 그들 가족(아마 중학생 남자아이, 고등학교 여자아이)이 불평 한 마디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기특하다 못해 놀라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꽤 시간이 되어도 될 기미가 안 보여, 어디 갔다온다고 하고서는 미사에 참여하러 부지런히 걸었다. 오늘 따라 부활 특강 덕으로 미사 시간이 100분.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러 성당엘 오면 살아계신 주님과 만나고, 죽은 주님을 만나러 성당엘 오면 마음에 아무 감동도 없는 법'이라는 말씀을 새겨듣는다.
말끔해진 차에 올라 소정에게 전화를 건다.
"나 지금 때 뱃긴 차에 앉아 전화하는 거요."
집에 오니 열두시 반. 찰칵을 들고 삼각대까지 챙겨들고는 오늘은 버들개지 4차 촬영. 찰칵 찰칵 또 찰칵. 볼수록 신기하다. 이제까지 몰랐던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경이 놀라움 신비.
궁금해서 또 그 산에 오른다.
여기저기 무더기무더기 모여 웃고 있는 새끼노루귀. 그들은 분홍이었다. 혹시나 새로운 것이 있을까 하고는 땅에 들어붙는다. 곱게도 새빨간 녀석들이 가족을 이루고 있다. 한 켠을 더듬다 새로운 걸 보고는 눈이 동그래진다. 지난 해에는 보지 못했던 백노루귀란 놈이 하나 삐죽이 올라와 외롭게도 웃고 있지를 않은가.
흰 새끼노루귀
잡풀 속 흰노루귀 너 혼자 외따로만
새 누리 보고파서 꿈이라 그리워서
엄마도 누나 아빠도 두고 홀로 왔느뇨
그 자태도 어여쁘다.
돌아서는 내 눈길에 들어오는 숨어드는 산자고! 설마 벌써 피었으랴 했더니 꿀벌까지 대동하고는 웃고 있었다.
늦봄이면 어디간들 없으리마는 이른 봄 까치옷 입고서는 반갑게 웃어주는 저 산자고!
저만치서 한 무더기 새끼노루귀가 시샘을 하는 양 세 가족이 다정하게도 몸을 비비고 있다.
산등성이를 오르니 지난해에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곳에 분홍노루귀가 두 무더기나 활짝 웃고 있다. 저들이 바로 자연이 아닌가! 곁에서는 보춘화가 이제 막 꽃대를 내밀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저 녀석들은 황화일지도 모른다.
소나무 숲속에 행여나 뭐 하나 있을까 하고는 두리번거리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없다. 나무들 지들끼리 햇빛 전쟁을 하느라고 말라 죽어 쓰러진 소나무들이 지천이다. 지게를 지고 와서 나무 한 짐 해 가야겠다. 그래야 마른 나무 쏘시개가 있을 거 아니겠는가!
소나무 숲을 돌아 서북쪽으로 나오니 그곳에는 매화가 이제 막 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네 그루. 몇 송이씩이나마 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저 동그란 새하얀 자태를 무슨 말로 중얼거릴 수가 있단 말인가!
매화 숲을 벗어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다 내려서면 그곳에는 야생차가 두 줄로 자라고 있다. 세 해 전에 내가 승주 선암사에서 씨앗을 구해다가 심어논 것들이다. 금년에는 바지런만 떨면 내집에서 덕군 야생차를 맛볼 수 있으리라. 근데 그게 될까 모르겠다.
차나무 아래에는 내 어머니 유택이 자리잡고 있다. 나이가 팔십이면 부부가 모두 산에서 잔다고? 내 어머니께서는 일흔여섯에 산으로 가셨다. 아버지께서는 지금 아흔셋. 아직은 정정하시다. 그 어머니 무덤가 띠 속에 여기저기 산자고가 들앉아 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 셋만 찰칵. 나머지 녀석들이 시샘은 아니했을까?
돌아서 내려오면서 그래도 뭐가 아쉽다고 다시 새끼노루귀를 찾아간다. 더듬고 더듬어도 그 판이 그 판이다. 혹시나 현호색이?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아니 왜현호색이 이파리를 내밀고 끝에는 꽃망울까지 달고 있었다. 거기다 유심히 살피니 덤으로 무늬현호색까지 보인다.
이 녀석이 꽃을 피우면 얼마나 멋있을까? 벌서부터 기대가 된다. 꽃이나 피울까 몰라.
돌아와 자리엘랑 누구랑 앉을랑가
내 임은 가고 없어 쓸쓸한 마음 한 켠
눈 번쩍 무늬 현호색 다사롭게 안기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러 성당엘 오면 살아계신 주님과 만나고, 죽은 주님을 만나러 성당엘 오면 마음에 아무 감동도 없는 법'이라는 말씀을 새겨듣는다.
말끔해진 차에 올라 소정에게 전화를 건다.
"나 지금 때 뱃긴 차에 앉아 전화하는 거요."
집에 오니 열두시 반. 찰칵을 들고 삼각대까지 챙겨들고는 오늘은 버들개지 4차 촬영. 찰칵 찰칵 또 찰칵. 볼수록 신기하다. 이제까지 몰랐던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경이 놀라움 신비.
궁금해서 또 그 산에 오른다.
여기저기 무더기무더기 모여 웃고 있는 새끼노루귀. 그들은 분홍이었다. 혹시나 새로운 것이 있을까 하고는 땅에 들어붙는다. 곱게도 새빨간 녀석들이 가족을 이루고 있다. 한 켠을 더듬다 새로운 걸 보고는 눈이 동그래진다. 지난 해에는 보지 못했던 백노루귀란 놈이 하나 삐죽이 올라와 외롭게도 웃고 있지를 않은가.
흰 새끼노루귀
잡풀 속 흰노루귀 너 혼자 외따로만
새 누리 보고파서 꿈이라 그리워서
엄마도 누나 아빠도 두고 홀로 왔느뇨
그 자태도 어여쁘다.
돌아서는 내 눈길에 들어오는 숨어드는 산자고! 설마 벌써 피었으랴 했더니 꿀벌까지 대동하고는 웃고 있었다.
늦봄이면 어디간들 없으리마는 이른 봄 까치옷 입고서는 반갑게 웃어주는 저 산자고!
저만치서 한 무더기 새끼노루귀가 시샘을 하는 양 세 가족이 다정하게도 몸을 비비고 있다.
산등성이를 오르니 지난해에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곳에 분홍노루귀가 두 무더기나 활짝 웃고 있다. 저들이 바로 자연이 아닌가! 곁에서는 보춘화가 이제 막 꽃대를 내밀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저 녀석들은 황화일지도 모른다.
소나무 숲속에 행여나 뭐 하나 있을까 하고는 두리번거리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없다. 나무들 지들끼리 햇빛 전쟁을 하느라고 말라 죽어 쓰러진 소나무들이 지천이다. 지게를 지고 와서 나무 한 짐 해 가야겠다. 그래야 마른 나무 쏘시개가 있을 거 아니겠는가!
소나무 숲을 돌아 서북쪽으로 나오니 그곳에는 매화가 이제 막 봉오리를 터뜨리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네 그루. 몇 송이씩이나마 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저 동그란 새하얀 자태를 무슨 말로 중얼거릴 수가 있단 말인가!
매화 숲을 벗어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다 내려서면 그곳에는 야생차가 두 줄로 자라고 있다. 세 해 전에 내가 승주 선암사에서 씨앗을 구해다가 심어논 것들이다. 금년에는 바지런만 떨면 내집에서 덕군 야생차를 맛볼 수 있으리라. 근데 그게 될까 모르겠다.
차나무 아래에는 내 어머니 유택이 자리잡고 있다. 나이가 팔십이면 부부가 모두 산에서 잔다고? 내 어머니께서는 일흔여섯에 산으로 가셨다. 아버지께서는 지금 아흔셋. 아직은 정정하시다. 그 어머니 무덤가 띠 속에 여기저기 산자고가 들앉아 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 셋만 찰칵. 나머지 녀석들이 시샘은 아니했을까?
돌아서 내려오면서 그래도 뭐가 아쉽다고 다시 새끼노루귀를 찾아간다. 더듬고 더듬어도 그 판이 그 판이다. 혹시나 현호색이?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아니 왜현호색이 이파리를 내밀고 끝에는 꽃망울까지 달고 있었다. 거기다 유심히 살피니 덤으로 무늬현호색까지 보인다.
이 녀석이 꽃을 피우면 얼마나 멋있을까? 벌서부터 기대가 된다. 꽃이나 피울까 몰라.
돌아와 자리엘랑 누구랑 앉을랑가
내 임은 가고 없어 쓸쓸한 마음 한 켠
눈 번쩍 무늬 현호색 다사롭게 안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