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부터 줄곧 찔레가시덩굴과 씨름하다가 지쳐서는 흐느적거리며 내려오는 발길이 영 그랬다. 손들이며 얼굴이며 다리며 온통 긁혀 지금도 상처가 눈앞에 있다. 행여나 하고는 또 노루귀 밭으로 어기적거리며 걷는다. 그런데 웬걸 눈이 다 번쩍 뜨인다. 피로 따위는 저만큼 달아나 버렸다. 아! 그곳에 청노루귀란 놈이 쫑긋거리고 있지를 않은가! 부리나케 달려가 그만 찰칵을 들고 나온다. 날이 따스하니 이 녀석들도 활짝 날개를 펴나보다.
아래 언덕부터 더듬어 간다. 서두를 거 뭐가 있다고?
두 녀석이 사이가 참 좋아 보인다.
꽃술들이 참으로 자랑홉다.
얼마나 귀엽고 깜찍한 화판인가!
곁길로 돌아드니 그곳에 산자고란 녀석이 자기도 봐 달란다.
드뎌 문제의 그 청노루귀. 때깔도 곱다.
청노루귀송
이제나 나오려나 저제나 보이려나
그렇게 눈속을 다 빠지게 헤맸더니
다사론 햇볕 먹고는 청노루귀 기지개
오늘 하루 행복을 가져다준 고마운 녀석.
백노루귀도 옆에서 시샘을 한다.
화판에 오밀조밀 꽃술이여!
세상에나!
지도 질세라, 홍노루귀
꽃술의 섬세함이여!
저걸 어쩐다냐?
어디에 저런 백학이 있을꼬?
어느 여인이 저런 자태를 보이랴?
노루귀에 취해서 서성이다 눈을 들어 여기저기를 살피니 아니 보일손가, 현호색이여!

이 녀석은 별난 녀석 같다. 이름하여 무늬현호색?
오른 쪽으로 돌아드니 그곳에도 한 무더기 홍노루귀가 가족을 이루고 산다.
아! 곱다.
찔레가시덩굴 아래 비탈길에는 산자고가 지천이다.
저 꽃술이여!
삼형제
벌꿀을 친구 삼아!
봄은 산자고와 함께 왔다가는 또 어느새 여름으로 갈 테고.

산에서 내려와 마당에 돌아드니 그곳에는 별꽃이 그만이다.
냉이꽃도 이쁘다.
복수초가 이제는 성숙한 여인네 같다.
열매로 남고.
청노루귀가 피곤을 가져가 버린 오후에 봄볕이 다사롭다. 반달화단에도 봄빛이 유여하다. 저 홍매도 망울을 터뜨릴 거라고 벼르고, 수선도 벼른다. 그들이 터지는 날 나는 또 행복하리.
굳은 대지를 뚫고 나오는 저 여린 새 대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