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가 흐리다. 마당에 널어 놓은 갈옷을 오늘 입고 갈까, 말까 망설인다. 부주의로 물감들이기에 실패한 옷으로 생각하니 속이 상한다. 어쨌든 날씨가 쨍해야 입던지 말던지 할 것인데 날씨가 영 아니다. 지금 같아서는 가능성이 전무다. 생각을 지우며 그래도 대문을 나선다.
황룡강가에 이르니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釣翁 곁에 소천이 보인다. 소천도 낚시광이다. 인사를 크게 하니 돌아보더니 하직을 하고는 곧장 내 뒤를 따라온다. 오늘도 입담 좋게 여러 얘기를 들을 것 같다. 소천과 같이 하면 나는 거의 듣는 축이다. 가끔 가다 맞장구나 쳐주면 족하다. 소천은 장성농고 한 해 후배다. 고등학교 졸업후, 5급공무원 지금의 9급에 합격하여 면서기로 시작해서 줄곧 41년을 장성 지역사회에서 봉사하다가 41년만에 면장으로 지난해에 퇴직한 이다. 그야말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의 입담은 뛰어나다 못해 경탄을 자아내게 할 정도다.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홍길도전>보다 먼저 있었다는 소설이야기를 꺼낸다. 이름하여 <三士黃泉記.>란다. 내용인즉, 세 선비가 거나하게 취해서 놀다가 숲속에서 잠이 들었는데 저승사자가 이 셋을 잘못 잡아가서 일어나나는 얘기다. 실수한 저승사자 때문에 염왕이 이들의 협박에 못이겨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게 되는데, 한 선비는 문관이 되어 옷갖 벼슬을 다 거치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달라니 그래라 그러고 환생을 시키고, 두 번째 선비는 무관이 되어 나라에 충성하고 영웅호걸의 삶을 누리게 해달라니 그래라 하고 내려보내고, 마지막 선비는 이런 소원을 들었단다.
건강하게 2남1녀 자식을 두고 형제 우애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강호에서 낚시나 하면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거였단다. 그랬더니 염왕 왈, 이 정신나간 선비야, 그런 게 있으면 내가 가지 왜 내가 이러고 있겠냐 했단다.
그런데 소천 왈, 그 삶이 곧 지금의 자신의 삶이란다. 소천의 말이 맞기라도 한 듯, 그때 따르릉이 울려 소천이 전화를 받고는 하는 말,
"진우형, 이거 보소. 이렇게 8시반이 넘었다고 밥먹으러 아니오냐고 안에서 야단입니다. 이게 바로 나를 걱정해 주는 아내가 있다는 것도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비가 바라는, 염왕이 바라는 삶이 아니겠소이까?" 한다. 소천의 삶에 욕심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우리 인간이 욕심을 버리면 인간도 아니겠지만,그 욕심 때문에 청문회에 나와서 그 온갖 수모를 당하는 현실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만큼 욕심을 부려 못된 짓을 했으면 그만둘 일이지 않은가! 더 뭘 바라고 그짓들인고, 쯧쯧쯧.
<왜개연과 자라풀>
우재
- 2009.09.27
- 22:21:03
- (*.143.142.44)
슬슬이가 며칠째 빠집니다.
좋은 글이 기다려지는데.
1999년 11월 7일경 혼자 내장산에 갔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두어번 갔었지만.
장성 저수지는 1998년도에 갔습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남도는 아직 가을이 빠르겠지요.
염랑이 다 때가 있겠지요.
남도에서 거리가 먼 동해안의 하조대가 갔었습니다. 9월 5일

잘읽었습니다.
빈 낚시대를 그리우고 있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생각을 비운다는 생각마저 없다면 좋겠지요.
千尺絲綸直下垂 一波纔動萬波隨
夜靜水寒漁不食 滿船空載月明皎
- 冶父道川 禪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