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뎌 팔십 번째 주행이다. 아침에 자전거포에 들러 바퀴에 바람을 채우고 출발. 훨씬 주행감이 부드럽다. 속도더 더 난다. 자주 바퀴의 바람을 살펴야 하나 보다. 유념해야 할 사항. 띠풀이 있는 곳은 왠지는 모르겠으나 어디나 하루살이 같은 작은 날파리가 기승이다. 콧속으로 혹은 눈속으로 파고 든다. 아니 슬슬이 속도 때문에 부딪치는 건가 보다. 어느날인가는 고추잠자리와 키스를 한 적도 있으니까.
새들은 접근 거리가 20미터 정도면 예외없이 날아오른다. 그게 경계 거린가 보다. 학은 80미터라던가? 그런데 곤충에게는 그 거리가 얼마일까? 잠자리는 그 거리가 없나 보다. 길바닥에 붙어 있다가 바퀴가 지나갈 즈음에야 겨우 날아오른다. 곤충학자는 그걸 알까?
황룡강에는 목교가 두 군데 있다. 아니 내 주행로에는 그렇다. 오늘 벼르다 그 한군데를 건너가 보았다. 혹시나 필암으롤 통하는 길이 있을까 해서다. 그런데 자전거 도로에서 남쪽으로는 둑에 올라서는 길이 없다.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잡아 끝까지 가보니 웬걸 거기는 막다른 골목이다. 되돌아오면서 아쉬움이 남는다. 더 주행로를 만들들 수도 있을 지형인데 하는 생각.
되돌아 목교를 건너다. 훌륭한 목교다.
소천 집을 바라보며 그에게 전화. 반갑게 받는다. 소정 선생이 왔다고 점심 때 추어탕집에서 만나기로 약속.
토끼뜰을 돌아오면서 늘상 눈에 거슬리는 비를 오늘도 지난다. 이름하여 <下賜記念碑>란다. 유탕마을이 무슨 새마을 운동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두어 독재자 박정희가 준 땅이라나? 그 땅 말미에 이 비가 서 있다. 이건 무슨 왕조시대나 쓰던 용어를 자랑이라고 떡 비까지 세워서 오가는 이 속을 긁어 놓는지 모르겠다. 어떤 곡학아세를 출세의 수단으로 삼았던 공무원이 세운 건지, 유탕마을에서 말 그대로 감읍하여 세운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이건 분명 노예근성. 왕조시대의 신민근성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짓들이다.
그러니 아직도 법 따로 인간 따로 그렇게 이현령비현령, 녹비에 가로왈 하고들 있어 억울한 이들이 저렇게 울부짖고 있는 게 아닌가! 결국은 그렇다. 남이 가져다준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노력해서 내가 싸워서 얻은 거라야 진정 의미를 갖는 거다.
꿀꿀하게 속터지는 이야기다. 단 한 번도 정당한 國人의 권리가 펼쳐져 본 적이 없는 이 국토.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 했다. 이 땅을 결국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의 것이니 그들의 의식 속에는 그게 옳은가 보다. 아! 약육강식의 잔혹한 역사여! 사마천은 사기 백이열전에서 벌써 2천 년전에 천도가 과연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고 한탄을 했다지 않은가!
과연 이천 년 후의 오늘날 이 땅에 정의가 있기는 한 것인가? 자연과학은 몰라보게 발전(?)을 했다지만, 인문과학은 그 때나 이제나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게 맞다. 제 권리 제가 찾지 못하면 누가 그걸 가져다준다는 말인가! 누군가 백성은 어리석을수록 통치하기가 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민정책을 편다고.

황룡강 목교 하나가 더 없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박정희가 지 돈으로 땅을 사서 부락에 주었나?
저도 비가 거슬립니다.